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가 스크랩해놓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화가들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신문에서 오려붙인 흑백
그림들이 기억속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엄마 덕분인지 난 미술작품 보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의 작품인지 무슨 기법으로 그렸는지 알지 못해도 마음에
와닿는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엄마와 딸의 그림 대화다. 화가의 길을 가다가 큐레이터가 된 딸이 엄마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수많은 그림 중에서 저는 19세기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을 선택했어요. 그 작품들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일상이 담겨 엄마에게 보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엄마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6p)
딸은 가장 먼저 그림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가와 작품 배경을 알기 전에 말을 거는 그림을 찾고, 그림의 소리 듣기, 감상 소감을 말로
표현하기, 감상 후 하고 싶은 행동을 떠올려보고, 그림 속 인물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한다.「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읽기 전에 영국
BBC 3부작 드라마 '빛을 그린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겠다. 인상주의의 시초가 되었던 마네, 인상주의를 이끈 모네, 인상주의를 풍요롭게 한
르누아르, 인상주의를 새로운 스타일로 해석한 드가, 인상주의를 넘어선 세잔 등이 주인공이다. 영화 '르누아르'와 '마네의 제비꽃 여인',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은「반 고흐, 영혼의 편지」도「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엄마가 주인공이 되어 오랫동안 그림 전문가로 일해온 딸에게 익숙했던 인상파, 후기 인상파인 7명의 화가를
각각의 스타일로 색다르게 만나며 그들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디지털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에게
SNS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마네 그림을 설명한 것이다. 꽃 그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7명의 화가들 작품에서 어김없이 꽃
그림을 찾아내는 딸의 마음도 예뻤다.
모네의 <점심>,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 <정원의 여인들>, <화가의 지베르니
정원> 등 꽃이나 정원이 그려진 마음 포근해지는 그림들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여행 전에「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읽었더라면 모네의 작품들이 더욱 눈에 띄었을텐데 아쉽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모네의 수련 연작도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었다. 난 르누아르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인물 그림을 좋아한다. 전에는 그저 그림만 훑어보는 게 전부였는데, 르누아르의 <선상 파티의 점심>,
<그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우산> 등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며,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풀어주니 그림에 대한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
독창적인 구도로 생동감을 표현한 드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발레 그림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림질하는 여인의 모습도 드가의 관심을
끈 주제였다.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했던 드가의 그림들을 미술관에서 다시 보게 된다면 음악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에서 '우연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음악을 작곡하듯 사람의 표정과 몸짓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렸다고 합니다. 삶에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 음표, 긴장과 이완을 이용한 박자, 조명이 만들어내는 강약을 사용해 피아노로 꽃 달린 모자를,
첼로로 다림질하는 모습을, 바이올린으로 카페의 풍경을, 오보에로
압생트의 술맛을 작곡하듯 그림으로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185p)
세잔의 그림은 사실적이지 않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대상의 빠른 변화를 포착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 품고 있는 영원한 구조를 표현하려 했다.
3차원 구성의 입체감이 아니라 2차원적인 평면으로 자연을 새롭게 구성했다.
"이 그림(<에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을 보니 세잔이 좀 촌스러운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어. 색감이 단순하고 풍경도 평범하게 다가오거든." (200p)
세잔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색채를 표현하려고 사과에만 매달려 지냈다. 정물을 그릴 때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대상이 지닌 색감을 다양한
시점을 통해 표현했다.
진짜 사과를 그리기 위해 평생 관찰했던 세잔은 후기
인상파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따라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현대미술의 길을 후배들에게 안내해 준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칭송 받았습니다. (206p)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화가는 잘 몰라도 고흐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고흐의 대표작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과
<해바라기>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서 고흐의 <해바라기>도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다. 고흐는 아를의
작업실에 오기로 했던 고갱이 오지 않자 자신의 집이 초라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화사하게 장식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한다. 그림이 그려지게 된 이유,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처럼 고흐가 스스로 귓불을 자르게 된 이야기, 동생 테오와의
관계 등 고흐에 대해 듣다보니 그의 삶이 애잔하고 안쓰러웠다.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기 위해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일부러 프랑스 남부지방 아를도 루트에 포함시켰었다. 그림 속 실제
장소에 도착했을 때,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는 황홀함과 유명세를 타서 그런 건지 친절하지 않은 카페 직원에 대한 실망감이 공존했다. 10년
전, 한젬마의「화가의 집을 찾아서」를 읽고, 책에 나온 충남 공주의 '임립미술관'에 갔었다. 책을 읽고 책에 소개된 장소에 갔던 것처럼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장소를 여행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었던 김민철의「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고흐의 방>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두 곳에 있다는 말이 나왔다.「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있다.
<고흐의 방> 그림은 같은 구성으로 총
3점의 연작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고흐의 방>은 귀를 자르고 잠시 병원에 있는 동안 홍수가 나서 그림이 약간
훼손되었어요. 현재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고흐는
그림을 더 이상 야외에서 그리지 못해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을
다시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린 두 번째 <고흐의
방>은 색이 더 풍성하게 표현됐는데,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세 번째 <고흐의 방>은 밝고 화사한 하늘색의 벽과 단조로운 마룻바닥이 표현됐어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248-249p)
마지막으로 고갱은 상징적이고 내면적인 스타일로 20세기 회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후기 인상파 화가다. 고갱의 <언제 결혼할
거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위로 카타르 왕실이 구입했다고 한다.
엄마와 저는 고갱의 그림을 따라 그가 거주했던 지역에
가서 1800년대 후반의 고갱이 되어 봅니다. 르누아르를 만났을 때는 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갱의 그림은 약간 거리를 두고 그가 현실을 바라보고
상상했을 그의 욕망을 탐구해야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95p)
아를에서 두 달 동안 함께 지낸 고흐와 고갱은 같은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면, 고갱은 고흐의 <밤의 카페>와
<아를 여인>을 참고하여 <아를의 밤 카페>를 그렸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엄마의 말을 빌리면, 고흐의 그림은 "힘도
희망도 없어 보이고, 고흐의 고독한 마음이 텅 빈 카페처럼 느껴진다." 그에 반해 고갱의 그림은 "색이 강렬하고, 그의 성격처럼 똑부러지는
느낌이 들어서 깔끔해 보인다." 고갱은 고흐의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언젠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이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처럼 다른
화가들은 작품의 제목을 있는 그대로 정하거나 모델 이름으로 붙인다. 그런데 고갱은 <저승사자가 지켜본다>, <즐거움>,
<언제 결혼할 거니?>,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처럼 추상적이거나 재미있는 제목을 붙였다.
고갱이 추구하던 예술은 몇 사람만의 취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주제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원시적인 자연에서 찾아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로 표현했습니다. 보고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생각
속에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던 고갱은 "자연에서 작품을 훔쳐!
그리고 스스로 자연을 재창조해!"라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믿었습니다. (329p)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한 권으로 19세기 인상파 화가 일곱 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모네부터 르누아르, 마네,
드가, 세잔, 고흐, 고갱까지 화가들의 삶과 가족 이야기,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의 대화로 풀어가는 방식도 좋았고, 무엇보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와
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201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