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음미하기 전에 사진을 하나씩 길게 바라보았다.
흑백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사연이 담겨 있고, 즐거움이 있고, 애달픔이 있고,
그렇게 추억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노트에 적혀 있는 시.
그의 노트가 탐난다.
하지만 이 책이 있기에......

시집을 읽으며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 했다.
옛 추억이 묻어나는 정겨움이 있다.
시는 물론이고 안도현 시인의 해설에서까지 따스함이 느껴진다.

내 어린 시절에
대문 앞에 신문지 깔아 놓고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칠하고,
국민학교 다니던 15년 전에 길에서 파는 떡볶이를 오십 원어치씩 사먹고,
가족들과 봄소풍 가서 돗자리 펴고 김밥먹던,
그러던 때가 갑자기 울컥하며 그리워진다.

표지의 물이 묻어 번진 듯한 제목과
표지의 더없이 맑은 아이들 표정에서
그리움 혹은 행복함이 밀려 온다.

다시 한번 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행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중학교 때였나.

어디선가 들었었다. 우리나라에서 정약용 선생이 머리가 제일 좋다고.

그때부터 아이들 대다수가 존경하는 인물은 부모님이라고 할 때,

난 멋도 모르고 정약용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었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더욱 탐났는지도 모르겠다.

 

오세영 역사추리소설. 園幸.

遠行 ? 園行 ?

조선 개혁을 꿈꾼 정조와 개혁 의지로 정조 시해 음모를 막아내려는 정약용의 목숨을 건 사투.

조선 왕, 정조의 재위기간은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시파와 벽파 간의 대결이 첨예하게 드러났던 시기.

정조는 한양의 뿌리깊은 수구세력의 제압과 왕권 강화를 위해 화성으로 천도를 결심한다.

그리고 8일간의 을묘원행을 단행한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능행이었지만 을묘원행을 달랐다.

혜경궁의 회갑연과 겹쳐 있었고 사상최대의 인원 동원.

많은 인원을 동원하다보니 허점이 많았고 수구세력은 그것을 노렸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정약용과 최기수의 활약 덕에 흥미진진하고,

장인형의 역할도 멋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비롯한 김진명의 소설들,

노가원의 장편역사소설 '태양인 이제마',

김탁환의 역사추리소설 '방각본 살인사건'을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에는 무지하지만 역사관련 소설과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원행'은 더운 여름날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에는 조금 어려웠다.

학교다닐 적에 국사 성적이 형편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문장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어렵기만 한 인물들을 천천히 읽어 나갔고 사건이 전개되면서 내용에 빠져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말 부분에서 약간 느슨했다고 해야 할까?

짧은 시간을 길게 늘여 쓴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엄마'라는 단어가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사랑에 빠져 있었고, 자유로웠고, 혼자가 아니었을 때,

사랑에 이끌려, 욕망에 이끌려, 마음이 약해져 아기를 갖기로 했다.

'바르바라 드레'

그녀는 아이를 낳으면서 자괴감에 빠진다.

머리카락은 마구 빠지고, 눈동자는 절망에 빠져있다.

집구석에 틀어박힌 주부이고, 아내이며, 엄마가 된 것이다.

남편 니콜라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애인이 아니었다.

딸, '레아'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똘똘 뭉친 괴물.

제멋대로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이 새로운 등장인물이 바르바라의 인생을 차지하게 된다.

시어머니와 의견충돌, 니콜라와 갈등.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진 니콜라에게 경멸감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혼자였고, 남은 것은 바로 인생이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하면서 모성애를 인정한다.

하지만, 엄마가 되는 과정은 더없이 힘들고 어렵고 아프다.

임신, 출산의 경험과 여성의 심리 묘사를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주인공의 심정에 빠져들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책을 손에 잡았을 때, 표지의 붉은 꽃이 왠지 슬픈 느낌을 주었다.
안쪽에 얌전히 접힌 풀빛 종이(草紙)의 '원이 엄마의 편지'는 너무도 애절하여
부부의 사랑이 어느 것에도 비할 데 없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하늘정원에 있던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꽃, 소화를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난 여늬.
사냥을 갔다가 붉고 큰 소화꽃을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응태.
만나서는 안 되는 운명이지만 둘은 끈질긴 인연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이요신은 아들 응태의 짝으로 박색이고 성질 사나운 며느리감을 찾는다.
홍생원은 딸 여늬가 어릴 적에, 한 스님으로부터
여늬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인연을 맺을 수 없다고,
아이가 앞으로 맺을 인연은 재로 꼰 새끼줄이라는 말을 듣는다.
겨울에 천에 빠져 죽을 뻔한 여늬를 구한 종니가 죽었다는 소식에
여늬는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낸다.
여늬 대신 집 밖으로 소문이 퍼졌다. 흉측하고 박복한 여자아이가 있다고.
그렇게 응태와 여늬의 인연은 시작된다.

여늬의 꿈에 팔목(八目)수라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사냥을 다녀 온 응태는 앓아 눕는다.

이야기는 슬프게 끝난다.
눈물로 썼을 여늬의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남편 응태와 큰 아들 원이까지 잃은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연초에 장편소설『도모유키』를 읽으면서 조두진 작가를 알게 되었다.
도모유키와 명외의 사랑을 그려낸 작품.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슬프지만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잠들기 전에 생각하곤 했다.

  오늘밤 꿈에는 어디에서 누굴 만나면 좋겠다고.

  무서운 꿈을 꾸면 그 상황이 너무 무섭지만

  난 으스스한 공포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어린 아이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도와 야시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어렸다. 

  만약 어른이 주인공이라면 왠지 호러소설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자연스럽게 반대쪽 세상인 고도와 야시로 연결된다.

 

< 바람의 도시 >에서 고도는 귀신의 길, 죽은 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그림자의 길, 신의 통행로이다.

  베란다에서 한밤의 고도를 내려다보면 가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지나간다. 

  만화처럼 장난스럽고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총에 맞아 고도에서 사체(死體)가 된 가즈키는 고도의 소유물이기에 결국 슬픔도 공존한다.

  렌의 혼자 하는 여행이 부럽기도 하다.

  커다란 종이에 내가 지나는 길을 지도처럼 표시해가며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디딜 때의 느낌은 어떨까?

  렌과 그의 어머니, 렌과 고모리의 관계를 반전이라고 해야하나?

  책을 읽다보면 그 반전을 눈치챌 수 있다.

  당황스럽지 않으면서 놀라운 이야기.

 

< 야시 夜市 >는 바닷가 곶에 있는 숲에서 선다.

  길을 잃으면 물건을 사기 전에는 나갈 수가 없다.

  유지는 어릴 적에 야시에서 동생을 팔아 야구를 잘하게 되는 재능을 산다.

  야시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의 기억에서 동생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다.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끔찍하다.

  '뭐든지 베는 검'을 산 노신사와 유지의 관계가 밝혀질 때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렌이나 노신사나 그들의 운명은 참으로 슬프다.

  오랜시간을 혈육과 떨어져서 지내야 했던 그 시간들이. 

  이 책은 꿈을 꾸는 듯 신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아플 수도 있다.

 

 

  내가 야시에서 길을 잃었다면 과연 무엇을 샀을까?

  아마도 과거 4개월의 시간?

  6월 말로 돌아가고 싶다.

  하루에 두 곳에서 면접이 있었는데 한 곳은 포기해야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포기한 그곳으로 가보고 싶다.

  물질적인 것을 사야한다면 책 한 권을 사고 싶다.

  300페이지 이내의 제목이 없는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나면 다시 다른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책.

  펼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