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신예 스릴러 작가 제프 린제이의 첫번째 작품. 경찰이면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악당들만), 덱스터 모건이 주인공인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덱스터 모건 시리즈 제1작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의 원제는 'Dakly Dreaming Dexter'이고, 작년에 나온 덱스터 2탄의 제목은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Dearly Devoted Dexter>. 내년에 나올 3탄의 제목은 <Dear Daddy Dexter>이다. 보시다시피 앞자가 모두 D로 시작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DDD 시리즈. 작가가 제목 코디에도 꽤 공을 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명이다.



읽어보니 미국에서 꽤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물의 익숙한 설정들을 차용하거나 패러디했기 때문이었다. 슈퍼 히어로의 익숙한 공식.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능력을 보이던 소년이 커 가면서 자신의 성장 배경을 깨닫는다. 한동안 자신의 힘에 도취하던 소년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조력자(<슈퍼맨>에서는 아버지, <스파이더맨>에서는 삼촌)에게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데, 이 과정에서 조력자는 대부분 죽어가면서 그런 충고를 한다. 이제 진정한 슈퍼히어로로써의 사명감에 눈뜬 소년은 제2차 각성을 하고 정의를 위해 싸운다.



덱스터는 영락없는 슈퍼히어로이다. 남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각종 동물을 죽이는 걸 좋아했다. 보름달이 뜨면 살해 본능에 허덕이는 덱스터의 비밀을 깨달은 양아버지이자 경찰인 해리는 그의 본성을 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기왕 죽이는 거 앞으로는 악인들만 죽이라고 충고한다. 충실한 아들인 그는 양아버지 해리에게 각종 경찰의 수사 비법, 미행을 피하거나, 수사의 요령 등을 배워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배트맨>이 배트카나 배트랑 등의 무기 사용법을 연마하는 것과 비슷한 설정이려나. 이제 무적이 된 덱스터는 아예 경찰계에 투신해 수사에 참여하면서 동료경찰을 쏙쏙 피해, 악인만 골라 죽이는 '호미사이드맨 덱스터'가 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덱스터는 마이애미 일대에서 자행되는 창녀 연쇄살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마이애미에서 자신 말고 또다른 연쇄살인 예술가가 있다는 걸 알고는 흥분하는 덱스터. 그런데 신기한 것은 번번이 자기가 꾸는 꿈에 등장하는 장소가 살인이 벌어진 곳이었다는 것.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죽인 거 아닐까 하고 번민하는 덱스터. 몽유병 같은 걸로 말이다. 계속되는 덱스터의 꿈, 계속되는 살인, 계속되는 번민...덱스터의 '음흉한 꿈'의 정체는 무엇일지 추측해보기 바란다.



전체적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왜 미국에서는 TV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떠보고,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대강 어떻게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지 않나. 그런 것처럼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도 덱스터 시리즈의 파일럿 역할을 한다. 경찰 연쇄살인범 덱스터와 인간의 감정이 없는 그를 흔들리게 만드는 의붓동생 데보라, 동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맘에도 없는 데이트를 했지만 어느결에 약간 가까워진 리타, 덱스터에게 본능적인 적개심과 의심을 품고 있는 독스 경사 등을 소개해 다음 편부터 이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것임을 암시한다. 이번 작품도 볼만 하지만 앞으로가 더욱 재미있어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드라마화도 된단다. <덱스터>라는 이름으로 11월에 방송 예정이니, 요즘 미국 드라마 애호가들도 많은 터라 국내에서도 곧 화제가 될 것 같다.



로렌스 샌더스의 '맥널리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쾌한 탐정 아치 맥널리를 보는 듯한 덱스터의 유머 감각이 경쾌해, 끔찍한 살인 현장도 그리 부담스레 다가오지 않는다. 한 방의 반전이나 치밀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덱스터라는 매력있는 주인공이 읽기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안에서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상쾌한 독서가 된다. 만약 이 작품을 읽은 분들이라면 다음 편을 몹시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속편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도 출간 예정이라니 안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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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편을 봐야 이 시리즈의 진가가 판단될 듯 싶어요^^

한솔로 2006-08-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과 물만두님이 보는 눈이 어쩜 이렇게 비슷하실까. 역시 고수란!

jedai2000 2006-08-1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동감입니다. 1편 결말은 사실 좀 심심하죠. ^^

한솔로님...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저는 원래 제 리뷰를 쓰기 전에는 다른 분 것을 보지 않는데, 다 쓰고 읽어보니 거의 비슷해 놀랐습니다. 이거 알라딘 절대강자 물만두님 글 베낀 거로 오해 받으면 서재 생활 끝장일 것 같네요 -_-;; 글구 고수는 물만두님이시죠. ^^
 

근무중입니다. 그러나 지금 잡고 있는 책이 상상초월의 지루함으로 뭉쳐 있어 잠시 딴 짓을 합니다. ^^ 생각나는 작가를 닥치는 대로 쓴 다음, 한 두 단어로 떠오르는 느낌을 적는 거죠. 자세는 반쯤 누웠어요.ㅋㅋ

다카무라 카오루 - 바위

히가시노 게이고 - 스토리텔러

기리노 나쓰오 - 면도날

이사카 고타로 - 천재

심포 유이치 - 오또코(남자)

하세 세이슈 - 용광로

이시다 이라 - 평범함

텐도 아라타 - 타고난 작가

아카가와 지로 - 행운아

교고쿠 나츠히코 - 정신감정 요망 ^^

에도가와 람포 - 변태노인 -_-;;

미야베 미유키 - 따뜻함

시마다 소지 - 트릭메이커

아야쓰지 유키토 - 과대포장

우타노 쇼고 - 반칙왕 ^^

요코야마 히데오 - 페이지터너

모리무라 세이이치 - 증명하는 사람

하라 료 - 미스터 하드보일드

다카노 가즈아키 - 재주꾼

오사와 아리마사 - 마이다스의 손

마쓰모토 세이초 - 중후하다

요코미조 세이시 - 존 딕슨 카 워너비

기시 유스케 - 베스트 엔터테이너

니시무라 교따로 - 돈독 오름

오츠 이치 - 귀여운 자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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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08-1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도가와 란포=변태노인....(-_-)乃

하이드 2006-08-1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 - 심퍼시 (동정심)
기리노 나쓰오 - 토, 화장실, 트레인스포팅
심포 유이치 - 번쩍 (스트로보 하나 봤다고 이러는거 아닙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 꽃미남
다카노 가즈아키 - 직사각형, 서류, 반듯함,
기시 유스케 - 무덤
아카가와 지로 - 농담, 만담꾼(썰렁한)
우타노 쇼고 - 벚꽃 ( 아,,, 단순해라;;)
에도가와 란포 - 검은 고양이 ( 역시 단순 -_-a)
교고쿠 나츠히코 - 다다미방, 먼지쌓인 폐허, 요괴, 반딧불

저는 요정도 ^^ 워낙 일본추리소설 읽은지 얼마 안되는지라




oldhand 2006-08-1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작품 뿐이었지만 다카기 아키미쓰가 존 딕슨카 워너비라고 느꼈었어요... ^^

물만두 2006-08-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도가와 람포 - 변태노인 무척 공감합니다 ㅡㅡ;;;

jedai2000 2006-08-1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플님...그렇죠. 그런데 변태노인이라도 그립습니다. 저, 변태성 충만한 그의 작품 좋아하는데..영 소개가 안 되네요...^^

jedai2000 2006-08-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오,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모에 푹 빠지셨군요. 굉장히 남자답게 잘 생긴 작가죠. ^^ 기리노 나쓰오는 영 취향에 안 맞으셨나 봅니다. 불쾌감이 꽤 강하셨던 것 같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올드핸드님...그러셨군요. 저도 <문신살인사건>을 봤습니다. 사실 괴기 취향이나 밀실 트릭 등에서 딕슨 카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요. ^^

물만두님...그래도 변태노인 원츄~입니다. ^^

베쯔 2009-05-0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이 연상놀이, 참, 재미있어 보여서요. 저도 그렇게 한번 놀아볼까 합니다. ^^

jedai2000 2009-05-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쯔님...지금 보니 참 유치한데요 ㅎㅎ 베쯔님이 하신 거 꼭 보러 가겠습니다 ^^
 
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열대야로 전국민이 신음하는 요즘, 체온을 떨어트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하다. 필요하면 얻게 된다고 마침 출간된 <이프>가 꽤 무섭고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무더운 밤에 펼쳐보았다. 약 50쪽을 읽고, 바로 덮어버렸다. 밤에 읽기 무서웠기 때문이다(사실 본인이 겁이 좀 많다).

 

영화화된 <분신사바>로 유명한 작가 이종호 님은 몇 편의 공포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계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 <이프>는 어떤 작품일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상당히 괜찮아 만족했다.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호러의 본고장, 일본에 내놓아도 부족한 점이 없을 듯하다.

 

원인불명의 연쇄자살사건을 조사하는 기자 도엽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되고 있는데, 뭐에 홀린 듯이 원치 않는 자살을 감행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병행되어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쓸데없이 길기만 하지도 않아,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독자를 공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불필요한 잔가지는 일체 배제하고, 불길한 분위기, 기묘한 사건, 사건의 조사 과정에만 집중해 만족스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떨게 만든 전설의 공포소설 <링>에서는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다. <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던 다른 일본 공포소설 <베이비메일>에서는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이프>는? 이메일이다.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이메일을 본 사람은 모두 자살하게 된다. 도대체 이메일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하는 독자의 호기심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풀린다. 

 

공포소설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무언가인데, 이를테면 귀신이나 좀비, 흡혈귀 등의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엇 말이다. 그렇지만 <이프>에서는 나름대로 이 기묘한 사건의 비밀을 현실적으로 말이 되게끔 해명하려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공포 코드를 사용한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 혹은 미스터리 기법을 차용한 공포소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첨단화되다 보니 공포작가들에겐 일종의 시련이 온 셈이다. 이제 우리를 떨게 만들었던 예전의 괴담들은 그 시효를 다한 듯 하다. 산 속 공동묘지에서 머리 푼 귀신? 온 사방이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고, 개발로 인해 묘지터는 점점 사라져가는데 귀신이 발 붙일 곳이 어딨나. 필연적으로 공포소설가들은 우리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첨단기기들을 이용해 공포소설을 전개해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핸드폰, 이메일 등으로 말이다. 더구나 이것들의 확산 속도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정도다.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발빠른 작가라고 할 수 없겠다. 위에서 <링>과 <이프>의 소재 상의 유사점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공포소설을 두고 <링>의 영향을 빼고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워낙 공포소설 장르의 마스터피스였기 때문이다. <대부> 이후에 나온 모든 갱스터영화가 <대부>에 빚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스벵가리의 선물’을 조사하던 기자 도엽이 너무 느닷없이 사건의 본질을 깨닫는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외 거의 부족한 것이 없는 한국 공포소설의 수작이다. 

 

 

- 읽은 분만

 

p.s1/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에서 못 내리고 종점에서 내렸다. 낯선 동네에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중국집 '신기루'. 좀 오싹했다. ^^

 

p.s2/ 자신이 공포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선우. 이 사람, 최면에 제대로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 시장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니. 하고보니 이건 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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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8-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함 읽어봐야겠는걸요. 요즘 날이 너무 더워서요 -_-;;

jedai2000 2006-08-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나마 무더위를 싹 잊으실 겁니다. ^^

 
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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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오쿠다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전작에서 다양한 강박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 신작 <남쪽으로 튀어>도 아주 유쾌하고 훈훈한 가족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네요. <공중그네>와 <인 더 풀>의 이라부 시리즈가 나오키상 수상작 치고는 좀 가볍고 허무맹랑했다는 불만이 있으신 분들도 이번 작품에서는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그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인 성장소설+가족소설+풍자소설이거든요.

 

 도쿄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지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한 소년입니다. 그 나이 또래에 겪는 몽정이나 스물스물 피어나는 성욕도 그렇지만,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는 악마 같은 중학교 불량배도 무시 못할 고통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자칭 과격파 운동권 출신인 그는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자의자 동맹)'의 열혈 투사였습니다. 그러나 단체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내홍에 질린 그는 탈퇴 후 좌익과 우익을 모두 거부하는 극렬 아나키스트로 자처합니다. 세금? 절대 안 내죠. 아들의 학교? 다닐 필요 없대요. 국민연금? 국민연금을 낸다면 국민 관두겠답니다. 한 마디로 국기 기관 입장에선 '공공의 적'입니다.

 

놀라운 건,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랑스런 어머니 역시 '오차노미즈 대학의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진 투사 출신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철지난 투쟁의 깃발을 여전히 높이 들고 21세기를 사는 이 부부의 아들은 지로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는 부모(특히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전2권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1권에서는 우에하라 가족의 도쿄 생활기가 펼쳐지고, 2부에서는 국가의 모든 억압을 떠나 따뜻한 남국의 섬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는 남쪽 생활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배자의 압박은 지상 낙원과도 같은 섬에까지 뻗쳐오고 맙니다. 우에하라 일가의 집터에 호텔을 짓겠다는 자본가와 관청이 연합해 그들의 집을 강제 철거하려고 합니다. 타고난 투사인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격렬했던 60년대 일본의 대학 투쟁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일종의 후일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식의 재미없고, 패배주의적이거나, 혹은 자화자찬 식의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문학이 아니죠. 이 작품의 말미에서도 결국 강력한 정부의 공권력에 아버지 이치로는 패퇴하고 맙니다. 한 인간의 의지와 열정으로는 바꿀 수 없는 세상의 비애가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최후까지 투쟁하는 굳센 아버지의 모습은 그런 비애감을 뛰어넘는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여기가 이 작품의 진짜 감동이 숨어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고보니 마치 이 소설이 화염병이나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투쟁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소년 지로의 눈에 비친 삭막한 도쿄의 현실이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자의 폭압, 어른들의 위선 등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현실이 암담할수록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진지한 주제지만 유머라는 당의정을 입혀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머는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지로와 여동생 모모코는 의절한 엄마의 부모, 그러니까 외할머니 댁을 몰래 방문합니다. 뜻밖에 어마어마한 부자인 외가집을 보고 모모코는 말하죠.

"울 엄마,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딸이었네." 모모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보다."

"야반도주만 하지 않았으면 나도 저 집 아이가 됐을 텐데."

"바보, 엄마가 아버지하고 도망치지 않았으면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초등학교 4학년은 아직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좀더 풍자적인 예를 찾아볼까요. 2권 남쪽 섬을 철거하려는 정부, 자본가 세력과 우에하라 일가의 대결을 취재하는 매스컴 관계자들의 싸움입니다.

"어이, 아이들은 끌어들이지 마!" 다른 기자가 옆에서 거칠게 소리쳤다. "아이들 코멘트는 따지 않기로 합의했잖아."

"내가 언제 코멘트를 받았다고 그래? 나는 우에하라 씨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는 것뿐이야." 즉각 사납게 대든다. 모모코가 겁에 질려 지로의 등 뒤에 숨었다.

........

"아무튼 부부 이외에는 취재하지 않는다는 게 규칙이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공동회견 떄는 뺄 거야."

"이 새끼, 총무 한 번 맡더니 이래저래 제멋대로 하고 있어."

"이봐, 말조심해." 기자가 얼굴을 붉혔다.

"제1선은 우리야. 나중에 왔으면서 무슨 잔소리냐고."

"이봐, 어지간히 해.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다시 다른 기자가 끼어들었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너희 회사지, 그 가게 삼각김밥을 몽땅 사들인 게?"

결국 기자 간의 취재 에티켓에 대한 논의는 삼각김밥으로 귀결되고 말았네요. ^^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작품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로는 우에하라 일가의 조상으로 짐작되는 아카하치에 대한 동화를 발견합니다. 아카하치는 아버지 이치로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반골에, 물러서지 않는 투사 기질을 가지고 있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카하치는 동화 속에서 서양에서 온 배의 선원과 일본의 무녀 사이에서 난 아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순수 일본인이라고 할 수 는 없는 거였죠. 그러고 보니 아버지 이치로도 눈썹이나 머리 색깔이 붉습니다. 작가는 이제 토종 일본인 중에는 이런 기백있는 인물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섬나라 일본인의 편협함, 용기없음 등을 비꼬려고 했다는 건 제 억측에 불과할 뿐일까요?

 

<남쪽으로 튀어>를 읽다보면 정말 모든 강요된 국가의 통제를 넘어 따뜻한 남쪽섬으로 가고 싶습니다. 세금도, 교육도, 전쟁도 없는 평화롭고 경치좋은 곳으로 말예요. 국가라는 것이 결국은 지배자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은 아닐까 생각해보게도 되고요.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인간의 행복에 꼭 국가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투쟁을 보고 한뼘쯤 커버린 지로의 성장기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로 이어져 있는 가족의 사랑을 그리는 가족소설로도,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소설로도, 유쾌한 재담으로 가득찬 유머소설로도 모두 만족스런 소설입니다. 반드시 읽어보시길...

 

마지막으로 여기나 거기나 일부 운동권의 폐해는 똑같이 심각한가 봅니다. 예전의 기억에 젖어 자랑질만 일삼는, 사회에 별 도움 안 되는 쓸모없는 운동권 잔당들에게 작품에 등장하는 이 대사를 바칩니다. 지로의 남쪽섬 친구 나나에의 대사입니다.

"아니, 상관없어. 멀쩡한 어른이 제대로 일도 안 하면서 반대운동은 무슨 반대운동이야?"

"그래?"

"글쎄, 초등학생에게는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다만, 뭐랄까, 일하기 싫은 거, 돈 못 버는 거, 출세하지 못한 거를 무슨 간판처럼 내세우는 것 같아. 무조건 정의만 부르짖으면 다들 아무 말도 안할 줄 아나 봐."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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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안목이 부럽더군요. 쉽고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능력도요.

비로그인 2006-08-0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으로 가고 싶어요~!

jedai2000 2006-08-0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맞습니다. 이런 작가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까지 썼다니 빨리 보고 싶을 뿐입니다. ^^

비숍님...모든 걸 잊고 떠나보시죠. ^^

oldhand 2006-08-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

Koni 2006-08-0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재가 미묘해서 망설이던 책인데, jedai2000님 리뷰를 보고 읽기로 결정했어요.^^

jedai2000 2006-08-0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읽어보신 분들이 대체로 모두 만족하시는 분위기네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죠, ^^

냐오님...오, 영광입니다. 냐오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
 
돌원숭이 - 전2권 세트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미로같이 복잡하게 꼬인 플롯과 결말의 놀라운 반전이 트레이드 마크인 미국 스릴러 작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제4작. 혹시 링컨 라임과 제프리 디버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도 영화 <본 컬렉터>는 보았으리라. 바로 그 <본 컬렉터>가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였다. 미국에서도 대단하지만 국내에서의 인기도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는 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시리즈 이름이 '링컨 라임 시리즈'일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주인공 링컨 라임을 들 수 있다. 장님 탐정부터 유령 탐정까지 별의별 탐정이 다 나온 이 마당에 무엇이 독특하냐고? 링컨 라임은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겪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 약손가락뿐. 물론 머리는 누구보다도 팽팽 잘 돌아간다. 전미 최고의 법과학자였던 그는 뉴욕 시 전역의 먼지 하나하나를 현미경으로 쓱 한번만 보면 그 출처를 밝혀낸다. 이성과 지성의 화신인 링컨 라임이 침대에 누워 오로지 두뇌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함이 돋보인다.

 

그리고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역시 특유의 ‘팀 수사’일 것이다. 아무래도 라임의 운신이 부자유스럽다보니 몇 명의 조력자가 매 권 등장해 그를 돕는다. 그런데 이 조력자들이 또 전부 개성 만점이다. 스피드광에 명사수인 모델 출신 미모의 경관 아멜리아 색스는 순찰 도중 우연히 연쇄살인 현장을 접하고 라임의 현장감식 조수로 일하게 된다(<본 컬렉터>). 다들 짐작하다시피 두 사람은 여러 제약을 뛰어넘어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멋진 콤비를 이룬다. 라임과 더불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잠입과 언더커버의 명수 프레드 델레이, 라임의 친구이자 사람 좋은 론 셀리토 형사, 미량증거물 분석조수 멜 쿠퍼, 신경질적인 라임을 유일하게 어르고달래며 갖고 노는 귀여운 간호사 톰 등이 환상적인 ‘링컨 라임 팀’이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프리 디버의 진짜 장기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반전’이다. 이 작가는 무슨 반전강박증에라도 걸린 사람마냥 작품 말미의 반전에 집중하고 집착한다. 마치 독자와 한판 승부라도 벌이자는 것처럼 난이도 높은 반전을 제시하고, 여기에 홀딱 속아넘어가는 독자를 바라보며 껄껄 웃는 모양이다. 얄밉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수법으로 우리를 속여줄까, 하고 속아 넘어가는 짜릿한 순간만 기대하게 되니 제프리 디버의 열성팬들은 모두 메조키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볼 때는 절대 방심하지 말길.

 

라임 시리즈의 인기 요인은 대충 이 정도일 것이다. 시리즈 제4작인 <돌원숭이>도 이런 라임 시리즈 고유의 맛을 충분히 갖고 있다. 뉴욕 시를 향해 접근하는 한 척의 배. 중국의 밀항선이다. 스네이크헤드(蛇頭)라 불리는 중국 인신매매업자는 불법 밀입국을 통해 떼돈을 번다. 이번 밀입국을 주도한 스네이크헤드의 별명은 ‘고스트(鬼)’로 악명높은 범죄자이다. 그러나 링컨 라임은 고스트의 침투 경로를 미리 파악한 후 해상 경찰을 배치한다. 궁지에 몰린 고스트는 배를 폭파시키고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중국 밀입국자 일가족을 놓친다. 고스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밀입국자들을 찾아 제거하려 하고, 드러내놓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밀입국자 일가족은 살기 위해 자구책을 세운다. 고스트의 광란과 폭주를 막기 위한 라임 팀의 수사가 시작될 것은 물론이다.

 

비평적으로나, 판매로나 가장 평이 좋았던 제2편 <코핀 댄서>의 성공을 재현하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살인 청부업자, ‘코핀 댄서’와 ‘고스트’가 등장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고스트는 코핀 댄서만큼 매력적인 킬러는 아니다. 계략의 귀재, 코핀 댄서의 치밀함에 비하면 무자비하기만 한 고스트는 한 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장기인 반전도 디버의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면 무리없이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웬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에 집중하라. 라임 못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온 링컨 라임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못하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만족스럽게 읽은 건 새로 라임 팀에 가세한 중국 형사 소니 리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한 전형적인 이 동양 남자는 고스트를 좇아 지구 반바퀴를 넘어올 정도로 집념이 강한 진짜 형사지만, 유머스럽고 귀여운 면모가 있다. 초반부 과학만을 신봉하는 라임과 동양적 미신에 집착하는 소니 리가 대립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재미있게도 소니 리의 말이 매번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우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따뜻함이야말로 <돌원숭이>의 백미가 아닐까. 다른 세계를 살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우정 말이다. 전반적으로 미국 작가 특유의 동양 문화에 대한 폄하가 걸리지만 두 사람의 관계만은 멋지게 그려냈다고 본다.

 

뒤표지 홍보 문구에 이런 말이 있다. “<돌원숭이> 이전에 디버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책장에 빈 자리를 마련해 둘 것. 다른 작품도 들여놓게 될 테니”.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감히 말해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절정이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부족한 점도 눈에 띄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재미는 보장한다. 요즘같이 재미없는 세상에 그거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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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jedai2000 2006-08-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디버의 진가를 알아주시는 물만두님! ^^

야클 2006-08-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링컨라임 시리즈 최고네요. 역시나 멀쩡한 한권짜리 두권으로 쪼개놔서 얄미웠지만 재미만은 부인할 수 없네요. 참, 님 리뷰도 굿입니다. ^^

jedai2000 2006-08-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도 링컨 라임 시리즈 팬이셨군요. ^^ 분권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만큼 재미있는 책도 또 별로 없으니까요. 리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