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원숭이 - 전2권 세트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미로같이 복잡하게 꼬인 플롯과 결말의 놀라운 반전이 트레이드 마크인 미국 스릴러 작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제4작. 혹시 링컨 라임과 제프리 디버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도 영화 <본 컬렉터>는 보았으리라. 바로 그 <본 컬렉터>가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였다. 미국에서도 대단하지만 국내에서의 인기도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는 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시리즈 이름이 '링컨 라임 시리즈'일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주인공 링컨 라임을 들 수 있다. 장님 탐정부터 유령 탐정까지 별의별 탐정이 다 나온 이 마당에 무엇이 독특하냐고? 링컨 라임은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겪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 약손가락뿐. 물론 머리는 누구보다도 팽팽 잘 돌아간다. 전미 최고의 법과학자였던 그는 뉴욕 시 전역의 먼지 하나하나를 현미경으로 쓱 한번만 보면 그 출처를 밝혀낸다. 이성과 지성의 화신인 링컨 라임이 침대에 누워 오로지 두뇌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함이 돋보인다.

 

그리고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역시 특유의 ‘팀 수사’일 것이다. 아무래도 라임의 운신이 부자유스럽다보니 몇 명의 조력자가 매 권 등장해 그를 돕는다. 그런데 이 조력자들이 또 전부 개성 만점이다. 스피드광에 명사수인 모델 출신 미모의 경관 아멜리아 색스는 순찰 도중 우연히 연쇄살인 현장을 접하고 라임의 현장감식 조수로 일하게 된다(<본 컬렉터>). 다들 짐작하다시피 두 사람은 여러 제약을 뛰어넘어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멋진 콤비를 이룬다. 라임과 더불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잠입과 언더커버의 명수 프레드 델레이, 라임의 친구이자 사람 좋은 론 셀리토 형사, 미량증거물 분석조수 멜 쿠퍼, 신경질적인 라임을 유일하게 어르고달래며 갖고 노는 귀여운 간호사 톰 등이 환상적인 ‘링컨 라임 팀’이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프리 디버의 진짜 장기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반전’이다. 이 작가는 무슨 반전강박증에라도 걸린 사람마냥 작품 말미의 반전에 집중하고 집착한다. 마치 독자와 한판 승부라도 벌이자는 것처럼 난이도 높은 반전을 제시하고, 여기에 홀딱 속아넘어가는 독자를 바라보며 껄껄 웃는 모양이다. 얄밉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수법으로 우리를 속여줄까, 하고 속아 넘어가는 짜릿한 순간만 기대하게 되니 제프리 디버의 열성팬들은 모두 메조키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볼 때는 절대 방심하지 말길.

 

라임 시리즈의 인기 요인은 대충 이 정도일 것이다. 시리즈 제4작인 <돌원숭이>도 이런 라임 시리즈 고유의 맛을 충분히 갖고 있다. 뉴욕 시를 향해 접근하는 한 척의 배. 중국의 밀항선이다. 스네이크헤드(蛇頭)라 불리는 중국 인신매매업자는 불법 밀입국을 통해 떼돈을 번다. 이번 밀입국을 주도한 스네이크헤드의 별명은 ‘고스트(鬼)’로 악명높은 범죄자이다. 그러나 링컨 라임은 고스트의 침투 경로를 미리 파악한 후 해상 경찰을 배치한다. 궁지에 몰린 고스트는 배를 폭파시키고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중국 밀입국자 일가족을 놓친다. 고스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밀입국자들을 찾아 제거하려 하고, 드러내놓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밀입국자 일가족은 살기 위해 자구책을 세운다. 고스트의 광란과 폭주를 막기 위한 라임 팀의 수사가 시작될 것은 물론이다.

 

비평적으로나, 판매로나 가장 평이 좋았던 제2편 <코핀 댄서>의 성공을 재현하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살인 청부업자, ‘코핀 댄서’와 ‘고스트’가 등장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고스트는 코핀 댄서만큼 매력적인 킬러는 아니다. 계략의 귀재, 코핀 댄서의 치밀함에 비하면 무자비하기만 한 고스트는 한 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장기인 반전도 디버의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면 무리없이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웬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에 집중하라. 라임 못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온 링컨 라임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못하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만족스럽게 읽은 건 새로 라임 팀에 가세한 중국 형사 소니 리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한 전형적인 이 동양 남자는 고스트를 좇아 지구 반바퀴를 넘어올 정도로 집념이 강한 진짜 형사지만, 유머스럽고 귀여운 면모가 있다. 초반부 과학만을 신봉하는 라임과 동양적 미신에 집착하는 소니 리가 대립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재미있게도 소니 리의 말이 매번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우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따뜻함이야말로 <돌원숭이>의 백미가 아닐까. 다른 세계를 살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우정 말이다. 전반적으로 미국 작가 특유의 동양 문화에 대한 폄하가 걸리지만 두 사람의 관계만은 멋지게 그려냈다고 본다.

 

뒤표지 홍보 문구에 이런 말이 있다. “<돌원숭이> 이전에 디버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책장에 빈 자리를 마련해 둘 것. 다른 작품도 들여놓게 될 테니”.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감히 말해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절정이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부족한 점도 눈에 띄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재미는 보장한다. 요즘같이 재미없는 세상에 그거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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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jedai2000 2006-08-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디버의 진가를 알아주시는 물만두님! ^^

야클 2006-08-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링컨라임 시리즈 최고네요. 역시나 멀쩡한 한권짜리 두권으로 쪼개놔서 얄미웠지만 재미만은 부인할 수 없네요. 참, 님 리뷰도 굿입니다. ^^

jedai2000 2006-08-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도 링컨 라임 시리즈 팬이셨군요. ^^ 분권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만큼 재미있는 책도 또 별로 없으니까요. 리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