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비가 왔고 영화관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슬펐고,

그래서 늦은 시간 영화관에 앉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라 그런지 소규모 관이었고

시설이 좋았고

채 열명이 안되는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하나 음식을 가져오지 않았고

길고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내내 자리를 지켰다.

역시 비오는 월요일 저녁 한강이남에 딱 두개 상영관에서 

상영중인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영화가 꼭 보고 싶었나보다. 


대학시절

나는 새끈한 영어동아리나 봉사동아리에 들지 못하고

(도대체 왜 그러지 못했는가)

신입부원이라고는 네명 밖에 없는 탈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남아 삼학년쯤 되자 복학생들도 슬슬 빠지고 이제 동아리는 문을 닫을 판이라

마지막 발악으로 선후배들과 딱 한번 공연을 하고 접기로 했다.

그시절 20대에 얼마나 주구장창 놀았던지

중년의 이남녀들은 아직도 제법 새끈하게 악을 뽑았고

몇몇은 어설프게 배운 우리보다 매우 볼만하게 춤을 췄다..

그리고 눈빛..

20년 넘게 지켜온 그곳을 지키고 싶다는 눈빛을 봤다.

선배의 선배의 선배의 선배가 구속되고 싸워가며 지켜낸 아주 조그마한 공동체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오사카, 일제시절 비행장 건설에 강제징용 됐던 한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

그곳에 온갖 차별과 방해에도 

내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돌 하나까지 이고 져 만든학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찍 철든 아이들.


샤워시설도 없이 물이 찬 땅바닥에서 운동하는 

심지어 우리로 치면 운동만 하는 운동부 아이들도 아니다.

이 아이들이 일본 고교 럭비리그 4강에 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때 나는 아이의 눈을 봤다. 


아이는 알고 있다. 

아이들의 아비도 대부분 조선학교 출신이며,

아비들이 학생일때는 리그 출전 자격조차 가지지 못했다.


원해서 일본에 온 것도 아니었고

긴세월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일본 사회의 일원이건만

아직도 게으르다고 깡패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재일 외국인 중에 가장 범죄율이 낮은 것이 조선인이란다)

연일 혐한시위와 인터넷, 언론을 통해 온갖 비하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의 학교는 극우 시장이 되자마자 모든 일본고교가 무상인 가운데

홀로 그남아 있던 지원금마저 끊겼고,

운동장은 시 소유니 내놓으라며 소송중이다.

학교에는 교육내용을 시찰한다며 뻔질나게 모모한 인사들이 드나든다. 


어찌보면 꿀벅지 십대들의 유쾌한 스포츠 영화일 수 있을 이 영화는

모두를 위해 달리는

그 아이들 어깨에 달린 소명이 너무나 무거워 달라 보였다. 


최근에 일베를 분석하는 글과 토론들을 듣게된다. 

그들의 글을 보다보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꼰대의 꼰대의 꼰대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를.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갈 길 또한 잃어 엉뚱한 곳으로 에너지가 쏟아진다. 

괜스레 목소리가 커보이는 곳은 다 밉다... 그 중에 만만한 곳에 마구마구 손가락을 놀려본다.


재일조선인들은 다른 역사를 가졌고, 다른 정체성을 가졌으니 다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이들에게 조국은 북도 남도 일본도 아닌 재일조선인 커큐니티며, 그들의 학교 그 자체이다. 

차이를 가진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건승하기를 응원한다. 


아이들의 어깨에 달린 짐을 조금 가볍게 하고 싶다면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을 많이 알리면 좋겠다. 

직접적으로 조선학교를 후원하는 곳으로는 권해효씨 등이 함께하는 몽당연필이 있다.

http://cafe.daum.net/mongdanglove


요약

1. 궁금한점

.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우면 저렇게 속이 드는가 놀랍다... 내 자식도 아닌데 너무 대견하다.


2. 좋았던점

.꿀벅지의 젊은 청춘들

.너무 예쁘게 웃고, 분해서 엉엉 울줄하는 청춘들


3. 아쉬웠던점

.감독이 조금 건조한 시선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4. 좋았던 대사(비루한 기억력 조심)

.나를 믿고 친구를 믿자. 서로를 믿고 하나로 뭉쳐 일본 최고가 되자.

.'하자'고 해야지 '해라'는 안된다. 의도가 없었어도 상대가 기분 나빴다면 잘못된 거다.

.국제경기에서 외국인 학생이 조선학교 친구에게 'korean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옆에 우리나라 학생이 '제는 일본인이고 내가 진짜 korean'이라고 해서 같은 민족인데 마음이 상했다..고 말하는 장면 (진짜?란 무슨 뜻인가)


* 불고기 먹고 만들었다는 멋진 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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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09-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영화 봤어요. 뜨거운 심장과 열정을 가진 청춘들이 한가득이었어요. 일찍 철들 수밖에 없지만 미소는 여전히 소년의 것을 가진 씩씩한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무해한모리군 2014-09-30 10:44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정말 너무 예뻤어요. 살아서 파닥거리는 눈빛도 너무 좋았고.

무해한모리군 2014-09-3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대세 선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판결이 났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인 서경식 선생 형제의 불행이 새삼 기억난다.대한민국을 조국이라 생각하며 큰일꾼이 되려했던 영민한 젊은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네버 고 백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겹겹 소송으로 잭리처를 묶어보지만 냉철한 머리와 무적의 싸움실력을 가진 그를 막을 수 없다. 이번 편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순정마초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진다. 물론 아빠 잭리처는 상상이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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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09-2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마음속 똘똘이 스머프 이미지였던 트로츠키 오빠는 말로 잘 설득하다 안되면 상대의 머리를 바닥에 쳐박으라고 했다니... 터프한 똘똘한 스머프였구만...

다락방 2014-09-2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빠 잭 리처...라고요???

무해한모리군 2014-09-29 12: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잭리처가 아빠니 부양 하라는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과연 리처의 딸일까요?
 
무당거미의 이치 - 하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트렌스젠더에 대한 다큐를 봤다. 성전환 수술은 너무나 무서웠고, 그의 불행은 너무 커 보였다. 부드럽고 다정했던 그가 자신의 몸은 그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건 세상이 만들어둔 그 많은 선들 때문으로 보였다. 세상의 '예쁘다'는 것 '여성스러움'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는 움직일 수 없이 확고해 보인다.


매일매일 엄청나게 듣게되는 사랑이야기 하지만 남녀간의 '낭만적 사랑'은 근대적 관념이라고 한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의 좁디좁은 관념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실감을 주는지. 


가끔은 평범과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 꼰대가 된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반추하지 못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 기준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가치다. 


종교에 미쳐서, 이념에 빠져서, 권력을 쫓느라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매일 뉴스에서 듣다보니 이 책의 잔혹한 이야기가 딱히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도 시리아에서 몇 백이 죽었다하고, 지중해 앞바다에서는 칠백을 고의로 빠뜨려 죽였다하고, 아프리카는.... 그리고 세월호 아이들이.


쓰고보니 리뷰가 아니다. 어쩌겠나.

그래요. 이건 균형의 문제이고, 그중 어느 쪽의 비율이 높은지, 어느 쪽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지, 거기에서 개인차가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여성성이 강한 남성이 열등한 것도 아니고, 남자니까 남자다운 게 당연하다는 규칙도 없지요. 남자는 용감한 존재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차별이며 근거 없는 편견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어느 특정한 장소와 시간-문화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에요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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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6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6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당거미의 이치 - 하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장광설에 이리저리 휘말리다 보면, 나도 치매인지 인물관계가 자꾸만 헷갈린다. 앞으로는 인물관계도를 정리해가면서 읽어야겠다. 무척 교고쿠 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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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4 테르마이 로마이 4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그래 연애였어!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일본과 로마만 오가며 일만하던 루시우스, 돌파구는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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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re 2014-09-0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웃음을 주시네요 ^^ 읽어보고 싶은 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