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사랑이 나를 좀먹어 지금의 내가 있게했으니 나는 독한 사랑을 해 본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사랑안에 있다. 흔적들 그 흔적을 껴안고 산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전혀 내 취향이 아닌 누군가를 가지고 싶은 열망에 휩싸일 수 있다. 그 정도 사고야 인생에서 흔히 일어난다. 상대의 비참한 육체와 체취조차 열망의 대상이 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접촉의 순간, 서로 원한다는 각성은 빛처럼 빠르게 공유될지라도 나는 힘껏 도망가겠다.
나는 인생이란 먼지날리는 결승점을 향해 나이들도록 함께 달려줄 누군가를 원한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그녀처럼 한평생 그 열망에 가슴앓이를 하더라도 나는 멀리 도망갈 것이다.
그
러나 내 달리기 솜씨가 형편없다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비데를 함께 쓰는, 아직 정말 하나가 되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왠지 초라하게 하는 지금의 파트너가 아닌, 누군가 어린시절 상처 받은 형편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선택한다면 이 책의 주인공보다는 재빨리 그 선택을 해치우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욕 먹을 짓을 했으면 욕을 먹어야 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머랭쿠키를 씹기보다는 담담히 내가 한 짓의 결과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양 손에 떡을 들고 갈 수는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힘과 행동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어떤 말을 하다보면 믿게된다. 지속적으로 믿는 바를 실천하다보면 그 의지로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열망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나의 친근한 관계들 사이에 나자신을 더 단단히 동여매겠다. 가족들 친구들 모임 속에 휙 하고 나를 던지겠다. (틀림없이 지루하겠지만) 일을 미친듯이 하는 것도 좋겠다. (손에 안잡히더라도) 요즘 읽고 있는 '나는 몇살까지 살까'라는 책에 보면 나의 수명에 큰 영향을 주는 '신랑의 결혼 만족도'를 높이는데 매진하는 것도 좋겠다. (다행스런 점은 독신 여성도 아주 오래살고, 이혼한 여성도 비슷한 정도 오래 살며, 사별한 여성도 결혼생활을 오랜기간 잘 유지한 여성과 비슷하게 오래 산단다.) 어쨌든 행동으로 신념으로 남은 삶을 한번 돌파해보자고 결심해 본다.
여하간 그대로 있어줘는 모처럼 읽은 참 슬픈 사랑이야기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과연 소문만큼 단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청소년 소설이어서 어서 조카에게 건네주고 싶다.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읽고 나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마음에 남는 만화였다. 종교는 인간의 의지로 만든 것인가? 기적은 어떤가? 등. 나는 몇살까지 살까?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오래산다는 훌륭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하나 유감인 점은 내게 수명 짧은 사람들의 특징이 자꾸만 보인다는 것이다. 오래 못산다는 것보다 오래사는 사람들이 삶 전반을 더 행복하게 더 건강하게 산다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그래서 위에 건전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훌륭한 선택을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의 결심을 밝히게 되었다 --;; 굵고 짧게는 드물다 하니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