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을 읽는다. 첫번째 단편이 환상의 빛이다. 화자인 여자는 초등학교때부터 알던 이웃 청년과 결혼한다. 첫아이를 낳고 삼개월이 되었을때, 남자는 자전거를 도둑맞고 집에서 제법 떨어진 회사에 출퇴근할 길이 없어지자 자신도 자전거를 훔친다. 이들은 가난했다. 자전거를 살 돈이 없을만큼. 그러다 남편이 돌연 자살한다. 여자는 남자의 자살이유를 칠년이 지난 후에도 내내 궁금해한다.
낙담. 나는 사람이 낙담해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갈 길이 없다기보다 헤쳐나갈 기운이 없을 때가 있다. 고개가 꺼지고 무릎이 꺽인다. 그런데 또 사소한 이유로 의지를 갖기도 한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김연수의 단편에 주인공에겐 우연히 들은 노래 한소절 이었고,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동 한그릇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의 살아야할 사소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거나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걸 발견할 힘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상황도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비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반민주적인가
통합진보당을 해산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하는 헌재가 반민주적인가
해체되어야할 반민주적 세력은 누구인가
2004년 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수십일을 몇천이 굶어도
전국을 돌아다녀도
다른 형법으로 다 처벌할 수 있다고 온갖 논리로 설명을 해도
없어진 것과 다름이 없으니 폐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던 법이 살아나
몇만의 목을 조여올 것이다.
노조들, 언론인들, 참선생들, 정당인들,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겐
사회반역 비호세력이였다는 딱지를 붙이고,
언제든 쳐넣을 수 있는 손쉬운 카드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있어 낙담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보이는 모든 곳에 의지로 낙관하자고 써붙여 두었지만 꺽이는 무릎에 속수무책이다.
사라진 민주노동당 당가는 이랬다.
우리의 꿈조차 범법이 될것인가.
새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세상에 주인이 된다.
자유로운 민중의 나라 노동자 해방을 위해
오늘의 절망을 넘어 희망의 역사를 열어라
아아아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되게
평등과 통일의 길에 어떠한 시련도 마다않겠다.
아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