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주말 결혼식이 있어 완도에 다녀왔다. 

26살 어린 신부는 떡기술을 배워 고향 완도에 떡집을 낸 신랑을 따라 내려 가느라 급히 결혼을 하게 됐다. 

토요일 첫기차를 타고 광주에 내려 
터미널 앞에서 그닥 남도스럽지 않은 백반을 먹고, 
스무분 정도의 어르신들과 열명 남짓한 순천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화순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신랑은 담양버스투어를 하고 싶어했는데
내가 운주사가 가보고 싶어서 화순으로 정했다. 

쌍봉사는 문이 열려있지 않아 쪽문으로 겨우 구경을 했고,
점심으로 먹은 청국장은 그저그랬으며,
온천은 목욕 싫어하는 신랑이 가기 싫어해서 멍하니 1시간을 기다려야했지만 
대체로 괜찮은 공짜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뛰고,
노인분들은 심드렁해하는 가운데
열성적으로 해설하시는 해설자분이 대단했고, 

운주사는 꼭 한번 다시 들러보고 싶은 독특한 사찰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터에 쭉 하니 늘어선 투박한 돌탑과 돌부처님들
불국사에 약수뜨러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낸 내눈에도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참 고인돌은 내 생각보다 훨씬 큰 돌이었다. 

 

 

 

 

쌍봉사와 운주사 벽엔 모두 지옥도가 그려져 있는데
운주사 쪽이 훨씬 무서웠다. 
설설 끓는 가마솥에 죄인들을 다리를 잡고 마구 던져넣고 있었다.  
죽림욕이 무산되어 입이 튀어나온 신랑에게 잘 보라고 말해줬다. 
마누라 불신 지옥인 법.  

광주역으로 돌아오니 저녁무렵인데 남들이 온천욕 하는 사이
이것저것 주워먹으며 온천주위를 다녔던 터라 배고프지 않았지만
이대로 광주를 떠날 수는 없어서 오리탕을 먹었다. 조금도 배부르지 않은 것처럼 게걸스럽게 ㅎ 

광주역앞에 모텔에 숙소를 잡았는데,
일박에 5만원이나 하는 것치고는 뭔가 부실한데다
마리가연주하는음악 2권을 어서 읽고 싶은데 너무 어두웠다. 
어쩔 수 없이 커피숍을 찾아 나왔다.
2권을 다 읽고, 먼저 읽은 신랑과 종교에 대한 수다를 좀 떨고,
몹시 어두운 여관으로 돌아와 골아떨어졌다. 

그 여관의 딱 하나 장점은 아침으로 토스트와 우유를 주고,
과자와 라면을 무한대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라면 토스트 우유를 몽땅 아침에 먹어주고
터미널에서 완도행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기아자동차 공장 정문에 적힌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 우리는 빛고을의 희망'이라는
문구를 읽는데 왠지 마음이 아렸다.

광주에서 완도는 생각보다 참 멀었다.
화순도 그렇더니 광주에서 완도 사이의 길 주변도 곳곳이 공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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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멸치잡이를 하시는 시댁 어른들도 좋아보이시고,
어린 신부도 참 이쁘고, 
신랑친구들이 장식한 트럭 웨딩카도 귀여웠고,
이런저런 이벤트도 사랑스러운 결혼식이었다.
많이 혼내키며 일시키던 부하직원이었는데,
성공한 떡집 사장님이 될듯하다. 

피로연 음식으로 전복을 세개나 먹어주고,
같이 앉은 서울내기들이 잘못먹는 틈을 타서 홍어회, 회무침, 우럭포구이, 자연산굴무침까지
배부르게 먹어줬다.
촌놈들 ㅎㅎㅎ

서울 올라가는 차시간이 세시간 남아서
8년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서점을 찾았다.
읽던 책을 다 읽었으니 3시간 정도 부담없이 읽을 책을 고르려했다. 

신간및 베스트셀러 매대는 생각보다 최신간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소녀지옥]을 살까했더니 옛날 일본식 괴담은 취향을 많이 타니 신랑님께서 다른걸 고르란다.
평소엔 읽지도 않던 마리여사 타령이다. 이럴땐 마리여사라나 ^^;;
그래서 두께가 적당해보이는 김연수의 [7번국도]를 고르려고 했더니 이번엔 또 나온지 좀 됐는데 반응이 별로없어 불안하단다. 내가 읽을 책인데 자기가 왜 불안한가!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해서 책장쪽으로 옮겼다.
[삼성을 생각한다2]은 김용철변호사가 쓰지 않은 것이라 패쑤
몇몇 사회과학 서적은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두껍고 심각해서 패쑤
그리하여 우리가 고른 것은 위저드베이커리였다. 

아 신랑과는 절대 같이 책사러 가지 말아야지.
어쨌거나 완도 빵집에서 커피한잔하며 읽자니,
제법 잘 어울리는 책을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있어야 책과도 만나나 보다.
서울아가씨가 완도로 결혼해 오게 한 그 무엇 말이다. 

5월엔 무등산에 오르기로 했다.
비맞기를 즐기던 내가 오늘 출근길에 내리는 비는 나도 모르게 전속력으로 뛰어 피했다.
이제 자연도 한결같지 않은 시절이니 사라지기 전에 내눈에 많이 담아두자는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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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4-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건, 투덜거림을 빙자한 달콤한 신혼일기인 걸요! 그저, 근사할 뿐입니다. 털썩!

무해한모리군 2011-04-26 09:22   좋아요 0 | URL
그것 참 이상하네요.. 투덜거림 맞는데 ㅎㅎㅎ
마노아님도 같이 수다떨 남자인간 하나 구하세요!

양철나무꾼 2011-04-2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익힌 전복은 좋아해요.
나머지는 음~잘 못먹는 서울내기입니다.
그러니까 위저드베이커리는 저도 참 좋았어요~

근데 결혼하신지가 언젠데...아직도 깨를 볶으신단 말예요?
왕 부럽~!!!
전 5월엔 자연을 내눈에 담아두자는 건 엄두도 못내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줄줄이 포진하고 있어서 말예요~ㅠ.ㅠ

무해한모리군 2011-04-26 10:15   좋아요 0 | URL
저도 살짝 익힌 전복이 좋아요.
전... 못먹는데 별로 없어요 ㅎㅎㅎ
신선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요.
어른이 되도 약간의 동화는 늘 필요한거 같아요.

저는 우리 신랑이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과 쭉 사겨왔고, 더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자기도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인데,, --;;
우리 커플의 분위기는 여자고등학교 기숙사 같아요..

차좋아 2011-04-2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었겠다아... 저 요즘 맛있는게 자꾸 먹고 싶어져요.
제 아내는 둘만 있을 때 책읽으면 아주 삐지는데 남편님은 안 삐지나 봐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4-26 10:15   좋아요 0 | URL
신랑은 말을 걸어요 ㅎㅎㅎ
아내에게 만들어주세요~

2011-04-25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4-2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역으로 돌아오니 남들이 온천욕을 한다고 했는데 그곳에 온천이 있나요? 궁금....

무해한모리군 2011-04-26 22:28   좋아요 0 | URL
화순에 있는 온천에 갔어요 ㅎㅎㅎ

pjy 2011-04-2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촌것들 아니예요~ 매우 땡기는 음식들이네요^^
참, 사진정리하다보니 저희 엄마아빠가 남원에서 결혼하셨는데 고인돌을 배경으로 찍으신 단체사진이 있더라구요~~ 그게 어디인지 급 궁금해지네요ㅋ

무해한모리군 2011-04-28 09:02   좋아요 0 | URL
남원쪽에 고인돌공원 검색해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정말 생각보다 무척커서 어떻게 옮겼는지 신기하더라구요.
권력을 가지면 그 세를 과시하고 싶은게 인간의 본능인가봅니다.

감은빛 2011-04-28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주사, 홀로 여행길에 재밌는 인연을 만났던 곳이지요.
운주사의 와불은 여러번 보아도 큰 떨림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책을 고를 때, 옆에서 뭐라 하면 제대로 집중하기 어렵지요.
<위저드 베이커리> 저도 재밌게 읽었던 책이네요.

무해한모리군 2011-04-28 09:05   좋아요 0 | URL
그 사찰의 분위기 자체가 참 좋았어요.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였습니다.

으흐흐 오이지군은 때로 무척 수다스러워요 ㅋㄷ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