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그 어원을 짚어 보면 라틴어로 '정리하다'라는 말이다. 사물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모든 사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세상에는 '정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디자인의 일감도 무한한 셈이다. 그래서 이것도 디자인 해야한다 아니 저것도 해야 한다 하며 다양한 대상이 잇달아 나타나는 통에 내 머릿속은 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는 것은 그런 모순을 숙명적으로 안고 사는 딱한 직업이다.
- 205쪽
내 전문분야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물건'을 만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건'을 만든다. 즉 사람 머릿속에 사건을 만든다. 잠재성이나 가능성을 알기 쉬운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내 일에 포함된다.
- 272쪽

요즘 앞으로 무엇을 해 먹고 살아야하나 고민이 많다. 디자인에 디 자도 모르는 나도 무한히 널린 것을 일감으로, 사물과 사람간의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만들 이 디자이너의 글을 읽자니 샘이 난다. 자신의 직업에 이렇게 몰두해 이만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복인가.
이 책의 마지막 글 세편을 제외하고는 저자가 15년 전에 쓴 글들이다. 자신의 영역을 의욕적으로 넓히는 저자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이 사람은 달리기도 호흡곤란이 올만큼 몰두해서 해버리는 사람이다) 디자인에 대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 속에 독자들도 디자인이라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 세편에서는 세월이 흘러 저자는 확고히 자리를 잡고 더 큰 프로젝트들을 준비한다. 인생은 예순다섯이 절정이라며 여전히 의욕적으로 말이다. (그래도 이때쯤엔 운동도 몸에 무리한 부담이 가지 않게 그러나 바다표범처럼 우아하게 할 수 있는 경지가 된다.)
조바심이 난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이러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그처럼 '내가 놓친 뭔가'를 아쉬워만하다 백발이 되겠다. 하긴 예순다섯이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조바심 내지 말고 이것저것 찔러봐야지.. 나도 내 일에 경험치 백단의 백발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