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하루다.
늦잠 자고 일어나서,
별다방 커피 한잔 들고 1984를 읽으며 명동으로 나선다.
아, 왜 전철을 삼십분만 타야할까?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리기 싫다.
새로운 사람과의 약간의 어색함이 있는 만남
이 선해 보이는 아가씨는 영리한 눈빛과 단호한 말투를 가졌다.
정체된 삶에 낯선 매력을 접하는 기쁨이란.
그녀를 보내고, 남자친구 손을 잡고 느릿느릿 1시간을 걸어,
이대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책을 읽는다.
지겨워져 슬슬 나와 걸으며 간단히 포장마차에서 군것질도 하고,
가고자 했던 스페인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터무니 없이 비싼 덮밥을 먹고,
또 느릿느릿 산책하다
아무렇게나 5평 남짓한 허름한 작은 바를 잡아들어간다.
나는 위스키 한잔을 들이키고,
늘 수줍기만한 오이지군은 왠일인지 갑자기 살짝 입맞추더니 모르는척 맥주를 홀짝인다.
대화는 돌고돌아 진중권에 대한 그의 뜨거운 애정과 나의 지식인 전반에 대한 뜨뜨미지근한 감정을 확인하고, 조금은 덜 고통스러운 종으로 살고 싶은 그의 소망과 당연히 실패하고 언젠가 1984에 나오는 그처럼 뿌리까지 변절할지라도 퍼덕거려보고 싶은 나의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 게으르고 행복한 하루에도 미래는 늘 두렵고, 이틀후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불만스럽다.
어쨌거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하루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