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하루다. 

늦잠 자고 일어나서, 

별다방 커피 한잔 들고 1984를 읽으며 명동으로 나선다.   

아, 왜 전철을 삼십분만 타야할까?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리기 싫다. 

새로운 사람과의 약간의 어색함이 있는 만남 

이 선해 보이는 아가씨는 영리한 눈빛과 단호한 말투를 가졌다. 

정체된 삶에 낯선 매력을 접하는 기쁨이란.  

그녀를 보내고, 남자친구 손을 잡고 느릿느릿 1시간을 걸어, 

이대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책을 읽는다. 

지겨워져 슬슬 나와 걸으며 간단히 포장마차에서 군것질도 하고,  

가고자 했던 스페인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터무니 없이 비싼 덮밥을 먹고, 

또 느릿느릿 산책하다  

아무렇게나 5평 남짓한 허름한 작은 바를 잡아들어간다. 

나는 위스키 한잔을 들이키고, 

늘 수줍기만한 오이지군은 왠일인지 갑자기 살짝 입맞추더니 모르는척 맥주를 홀짝인다. 

대화는 돌고돌아 진중권에 대한 그의 뜨거운 애정과 나의 지식인 전반에 대한 뜨뜨미지근한 감정을 확인하고, 조금은 덜 고통스러운 종으로 살고 싶은 그의 소망과 당연히 실패하고 언젠가 1984에 나오는 그처럼 뿌리까지 변절할지라도 퍼덕거려보고 싶은 나의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 게으르고 행복한 하루에도 미래는 늘 두렵고, 이틀후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불만스럽다.  

어쨌거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하루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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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9-10-03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워라..)

무해한모리군 2009-10-03 09:32   좋아요 0 | URL
히 신난다 ^^;;

바밤바 2009-10-03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때 지하철 타고 있었구나..ㅎ

무해한모리군 2009-10-03 11:16   좋아요 0 | URL
아니요. 그땐 커피를 막 사서 나오려던 참~

마늘빵 2009-10-0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명동에 있었는데 흣.

무해한모리군 2009-10-03 09:33   좋아요 0 | URL
오... 알았으면 살짝 보는건데 아쉬워랑~

순오기 2009-10-0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입맞춤~~~ 부러워라!^^

무해한모리군 2009-10-04 23:47   좋아요 0 | URL
아하하 낭군님이 있으시면서~~~

머큐리 2009-10-0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염장질이구먼요..ㅎㅎ
그래도 느릿느릿 한가로워 보이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걸 보니 보기 좋아요~
오이지 힘내라~~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0-04 23:47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오이지님 힘이 넘치는게 문제예요..
더 힘내면 큰일 납니다 으하하

무스탕 2009-10-0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쁘십니다요.
오이지군이요...

=3=3=3

무해한모리군 2009-10-05 14:02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늘근 소년입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