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발품

땡볕 밑을 걷고 또 걷고. 

인천의 후미진 뒷골목을 거닙니다. 

아현동 뒷골목에서, 충무로 뒷골목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근대를 마주봅니다.  

손만되면 바스라질 것 같은 좁디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재래시장들..

우리의 삶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삶을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합니다. 

이 곳에 가난, 이런 구질구질한 삶의 방식은 없었어! 라며  

부수고 지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앞에 여전히 달동네가 있는데 '달동네 박물관'을 만들어서 

마치 그런일이 구석기 시대에나 있었던 것처럼 만든 것도 우습고, 

엄연히 존재하는 나와 내 어미의 삶이 유물이라고 주장되는 것 같아  

황당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저기 자신들의 눈에 안띄는 곳 어디로든 가난을 보내고 

마을 바로 백미터 옆에 과감하게 터널을 뻥하게 뚫고  

직선으로 쭉 그어낸 듯한 도로를 만들려는 시도.  

용감한 한국의 어미 셋이 지켜내었다는 그 공간은 

아직도 그대로 비어, 

빈 공터, 판자집, 높은 주상복합이 한 눈에 잡히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천은 내게 특별한 선입견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하루 8시간의 꽉찬 도보 끝에 어렴풋이 보인 인천은 

한순간 늙어버린 곱디고운 여자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내 옆에 32년을 그곳에서 보낸 이는 그곳에 살 뿐 서울 주민이고, 

한때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지역 예술공간엔 

서울내기들과 외국내기들이 득시글거립니다. 

마을은 도로로 조각나고,  

이웃은 아파트가 가져가고, 

시장은 마트가 작살내고, 

돈이며 교육은 서울로 서울로 갑니다.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의 이층의 시로 들어찬 공간에서   

바닷바람과 온갖 이국에 색채로 뒤덮혀 있던 빛바랜 건물들이 떠오르니

말없이 함께 걸어준 인천 사내에게 시한수 읽어주고픈 날이었습니다.  

조각보 

- 안상학 

조각난 가슴을 흘리면서 걸어왔더니
누군가 따라오며 주워 들고
하나씩 꿰어 맞춰 주었습니다 

조각난 마음을 흘리면서 걸어왔더니
누군가 따라오며 주워 들고 
하나하나 꿰매어 주었습니다. 

동쪽으로 난 그리움의 상처와
서쪽으로 난 기다림의 상처와
남쪽으로 난 외로움의 상처와 
북쪽으로 난 서러움의 상처가
조각조각 수없이 많은 바늘땀을
상처보다 더 아프게 받은 후에야
비로서 사랑의 얼굴을 하고 돌아와
이 빈 가슴을 채웠습니다. 

보기 싫다 버린 상처가 아름다웠습니다.

(시집 : 아배생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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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벨서점 2층이 있던가요.몇번 드나들었지만 이층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인천도 계속 계발이 되네요.뭐 어쩔수 없지요.지역 주민의 개발욕구도 있을테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8-03 23:02   좋아요 0 | URL
이층에 여러용도로 쓸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시집이 전시되어 있고, 낭독회나 강연회 같은 행사도 해요.

2009-08-03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3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9-08-0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시도 읽게 되네용.

무해한모리군 2009-08-04 08:00   좋아요 0 | URL
^^ 저 시집을 좋아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직접 읊어드리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어요.

라주미힌 2009-08-04 10:51   좋아요 0 | URL
시집도 가셔야죵 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8-04 13:38   좋아요 0 | URL
남말할 때가 아니실 듯 한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