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에 살면서도 지역민이 될 수 없는 오늘날의 도시민에게 발품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대중교통을 타고 늘 다니던 길만 다시 밟는 나에게 익숙한 인간과 풍경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얼씨구나~하며 휘모리님과 함께 걸었다. (게다가 참가비까지 내주셨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화평동 냉면'을 대접해야 겠다 ㅋㅋㅋㅋㅋㅋㅋ)
특히 인천의 중구와 동구는 식민지 시대 때의 문물의 유입, 경인선의 생성 함께 발전하여 옛 인천의 중심지였으나, 서울을 생활권으로 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남북을 잇는 인천지하철과 송도, 청라라는 거대한 인구밀집지역을 '구축'하는 등의 이유로 인구도 많이 줄고, 발전 동력을 잃은 바, 그 지역 경제는 대단히 침체되어 있다. 고로 그 지역은 20대 초반에 가 본 이후로 처음이고 그 동네를 걸어다녀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흡사 우리 일행은 외국인 관광객 단체마냥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빨간 티에 검은 선글라스를 썼다면 영락없는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이자 통솔자인 '장한섬'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정사가 아닌 야사 중심의 설명까지 곁들여주셨다. 사실 야사라고 부르지만, 지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마당에 정사라고 불릴 만한 것도 없다. 인천은 근대화에 있어 식민지 지배체제가 첫 발을 디딘 곳이 많다. 교회,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생산지를 둘러보며 휘모리님은 "참 튼튼하게 지었다. 백년 만년 지배하려고.." 라고 촌평을 날리셨다. 과거 외국인들이 살았던 지역의 특색있는 건축양식은 볼거리 중의 볼거리였다. 차이나타운 지역인데, 중국식과 일본식 건물이 높은 계단을 중심으로 양갈래 갈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역사는 흐르고 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허름해져 버린 역사를 접하게 된다. 재개발이랍시고 밀어버릴 곳, 이미 밀어버리고 세워진 아파트들, 전쟁의 포화에 없어져 버린 곳, 거의 죽어버린 상가지역에 거대한 쇼핑센터가 들어서는 현장까지... 우리가 목격한 것은 도시의 죽음이었고 서민의 빼앗긴 삶의 현장이었다. 수도국산에 지어진 '달동네 박물관'은 현재의 가난을 과거의 가난으로 박제화 시킨 대표적인 전시관이었으며 그들에게서 약탈한 전리품을 홍보하는 상징물처럼 보였다 .
사람이 사는 공간, 사람이 죽으면 죽는 공간. 생활은 공간과 밀접한 관게를 맺고 있다. 건물과 거리의 풍경은 활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부터 시간이 멈춰진 듯한 간판과 건물은 촬영장 세트마냥 전시적이다. 밀랍인형에게서 사람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듯이, 사람의 냄새는 맡아볼 수 없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기약없는 기다림, 아니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분이 하고 있는 '배다리 생활문화공동체'는 야만적인 개발주의에 맞서 생활공간을 지켜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와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 서울과 인천의 '개발사'는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자유공원에 있는 '청계천 미니어쳐'는 경악스러웠다. 산 위에서 쏟아지듯 흐르는 수돗물의 속도를 보고 있으면 인간을 흘려보내는 속도처럼 느껴진다.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다른 생물을 밀어내고, 확장된 땅 위에 인간을 심고, 그 인간들 위를 불도저가 지나가버리며 '이것이 발전이다'라고 부동산 가격에 환호하는 무리들 틈에서 서로의 공간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司命)처럼 모두의 목에 걸려 있다.

8월의 더위, 아스팔드의 열기...
시민들은 몸부림도 뜨거웠다.
발이 닿아야 더 느낄 수 있다.
오늘은 그것을 배운 날이었다.  

"움직이는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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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천을 걷다. 바스러지는 근대의 흔적들.
    from 세상에 분투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2009-08-03 21:05 
    땡볕 밑을 걷고 또 걷고.  인천의 후미진 뒷골목을 거닙니다.  아현동 뒷골목에서, 충무로 뒷골목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근대를 마주봅니다.   손만되면 바스라질 것 같은 좁디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재래시장들.. 우리의 삶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삶을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합니다.  이 곳에 가난, 이런 구질구질한 삶의 방식은
 
 
무해한모리군 2009-08-0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님 왜 야성적으로 풀어헤친 앞가슴이 나온 사진은 안올리신거예요 ㅎㅎㅎ

라주미힌 2009-08-02 17:16   좋아요 0 | URL
장한섬님이 안 찍어주셨네요... 아쉽당...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8-03 10:05   좋아요 0 | URL
한번더 풀어헤치고 나오시면 제가 찍어드릴게요 응?

머큐리 2009-08-0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다 가셨구나..ㅎㅎ 난 어제 오늘 출근해서 열쉬미 노가다 중..에고

라주미힌 2009-08-02 17:40   좋아요 0 | URL
엄청 더워서 공공기관만 보이면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 쐬고 -_-;;; 막 그랬다지용..

무해한모리군 2009-08-02 17:42   좋아요 0 | URL
안가시길 정말 잘하셨습니다.
솔직히 라님 참가비라도 제가 냈기 망정이지, 한대 맞는거 아닐까 조마조마했습니다 --;;

라주미힌 2009-08-02 17:50   좋아요 0 | URL
아녜요 아녜요.. 기억에 남는 행사였어요.. 꼭 다음에 해보세용 ㅋㅋ
저는 한번이면 만족하기 때문에 다음에는 다른거 할려고요..(있으면)

릴케 현상 2009-08-0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혼시절에 인천 차이나타운 구경간 적은 있는데 다 둘러보려면 꽤 힘들겠어요^^ 인천은 지역에 대한 연구 같은 게 참 많나 봐요. 모르지만 그냥 눈에 걸리는 게 많더라구요... 부산이나 김해 같은 곳에 대해서 저도 좀 알아보고 싶긴 한데ㅋ 타향살이 몇해던가~

라주미힌 2009-08-02 21:28   좋아요 0 | URL
자세한 것은 모르겠는데.. 연구하거나 공부하시는 분들이 있다는걸 확인했다는 정도.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용.. 인천도 나름 볼거리 있던데용 ㅋ

Arch 2009-08-0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성적 앞가슴, 앞가슴... 바야흐로 신체 노출의 계절인가요. 좋으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