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늘 쉬이 읽히지 않는다. 

다른 책들은 한호흡으로 쭉 붙여 읽는 걸 즐기는데, 시는 하루에 한권을 다 읽어내는 법이 없다. 시의 응축된 심상들이 내 마음에 더덕더덕 붙어서 이내 더 소화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점심무렵 서평이벤트 당첨으로 받게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도 결국 170쪽에서 멈춰섰다.  

죽음의 순간 체가 지녔던 가방속에는 69편의 체가 베껴써놓은 시가 적힌 녹색노트가 있었단다. 시는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나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이 네 명의 시인의 작품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시인인 바, 69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어디서 필사 되었는지 시대적 배경과 체에 대한 전기적 사실, 시에 대한 설명을 아우르고 있다. 어디까지가 저자의 주장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뒤엉켜져 있는 글이지만, 우리가 시인에게 명확성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수수밭 옆에는  
검둥이 

수수밭 위에는
양키 

수수밭 아래는
흙 

수숫대 속엔
피! 

네콜라스 기옌의 시 [사탕수수]전문 (p83~84)

체의 노트 속 시 중엔 위의 시처럼 민중들의 처참한 현실을 다룬 시도 있고, 

키스와 침대, 빵으로 된 사랑을
난 사랑하지 

영원일 수도
순간일 수도 있는 사랑 

다시 사랑하기 위해
자유로워지는 사랑 

파블로 네루다의 시 [이별] 中 (p138)


젊은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어보았을 낭만을 노래한 시들도 있다.  

마이클 젝슨의 추도식을 들으면서 체의 인생에서 단연코 가장 힘든 시기였을 이년을 함께 했던, 위대한 시인들의 절창과 함께 오늘의 독서는 일찌감치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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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09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첨되었다고 좋아하더만...드뎌 읽기시작하는군요...부럽당~~

무해한모리군 2009-07-09 08:22   좋아요 0 | URL
얇고 자그마한 책이라 금새 읽힐듯 합니다.
저자의 설명이 좀 횡설수설 하는 것이 그냥 시들만 쭉 소개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스피 2009-07-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시는 좀 어려운것 같네요.쉽게 읽을수는 있지만 그 뜻은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점이 시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9 10:53   좋아요 0 | URL
뜻이 이해가 안되도 소리나 느낌이 확 달라붙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

전 언어 자체가 주는 쾌감의 한 극에 시가 있는듯해서 자주 읽는 편입니다 ㅎ

Chelove 2009-07-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짜임새가 있던데요^^
평소 시를 좋아해서 오히려 곱씹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란 게 무엇보다 자랑스럽구요^^
지금까지 프랑스, 독일, 일본 국적의 작가들이 쓴 체 게바라에 관한 책들이 단순히 그의 행적을 사실적으로 담아놓은 것이거나 그의 일기나 서간문들을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이 책은 체의 혁명의 뿌리를 파헤치고 있는 대작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튼 강추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7-09 11:25   좋아요 0 | URL
책은 좋았습니다.
단지 시와 설명, 사실, 지은이의 추측 등이 뒤엉켜 있어서 좀 정리가 안된 느낌이랄까요?

저도 남은 독서가 즐거울 듯 합니다.

무스탕 2009-07-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탕수수라는 시에서는 왠지 '붉은 수수밭' 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7-09 13:03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의 글을 보니 그 영화의 선명한 색감과 찐득이던 느낌이 살아나네요.
지금도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게, 어린 아이들이 여전히 팔려가고 있다는게 더 마음이 아픕니다. 혁명이 끝났다고 하는데 노예는 여전히 있다는 것이요..

책을 읽으면서 시인이 혁명한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푸른바다 2009-07-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네루다의 이별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재밌네요^^ 이 시는 일포스티노(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도 인용되었지요^^ 우편 배달부 애인의 엄마가 이 시를 '같이 자고 아침도 먹자'는 노골적인 시라며 철없는(?) 딸을 나무라던 대목이 있지요^^ 칠레 사람과 네루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저항 시인이라는 이미지에 더해서 칠레인들에게 네루다는 '돈환' 같은 바람둥이로 인식되어 있더군요^^ 그의 집인 이슬라 네그라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0 17:07   좋아요 0 | URL
아 일포스티노에 그시가 이시군요~~
체의 여자관계도 좀 그런듯 하던데요 ^^

네루다는 낭만적인 시도 많이 썼나봐요.
체의 집에도 가보셨어요?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