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생 그녀, 우리 또래의 사랑과 성장
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를 하다보면 깜짝 깜짝 놀란다.

아 나란 인간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상처가 있었구나.

나의 인간관계의 약점들이 가장 적나라 하게 드러나는게 연애가 아닌가 싶다.
 

여기 두 남녀가 있다.

오죽하면 '남들 안볼때 내다버리고 싶은게 가족'이라고 말하겠냐만,

이 소설의 두주인공인 77년생 스물일곱 화가였던 청소부 여자와 70년생 요리사인 남자의 가족사도 만만치 않다.

이혼, 우울증, 자살, 방임, 조손가정, 미혼모 등등 

현대사회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이고, 또 그만큼 흔한 상처이기도 하다.
 

두권짜리 책의 한권이 다 지나도록 두사람은 서로를 모른다.

그냥 이 두 젊음이 어떻게 마음의 창을 꽝하고 닫고 달팽이집 속에 작은 점만하게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여준다. 
 

나머지 한권은 

사회부적응자인 세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영향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내 삶을 너무 쉽게 던져버리던 어린 나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나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것이 관계지만,

그 관계안에서 희망을 찾고야마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고, 또 한인간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
 

참 좋다. 
 

질척이지도 너무 쿨하지도 않은 딱 내 또래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건 참 기쁜 일이다.

이 봄 어떻게 외로움의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고민 되시는 모든 분들이 읽어보시면 참 좋으리라.
 

[책 1권 속 몇구절] 

곧 스물일곱 살이 될텐데. 이제껏 좋은 거라곤 아무것도 모아놓은 것이 없어. 친구도 추억도 없고, 스스로를 좋게 여길 만한 근거도 전혀 없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나는 소중한 것 두세 가지쯤을 두손으로 꽉 움켜쥐지 못했을까? 왜? – 199쪽
 

상페의 작품집을 볼 때면 늘 그랬듯이 그녀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꿈꾸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그 작은 세계, 인물과 사물의 특성을 정확히 포착한 선, 얼굴 표정, 파리 교외에 있는 작은 빌라들의 차양, 노파들의 우산, 시적인 정취가 넘치는 상황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했다. 상페는 어떻게 이런 것을 그리는 것일까? 이 모든 소재를 어디에서 찾아내는 걸까? – 265쪽
 

라디오에서 어떤 콘트랄토 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팔뚝에 난 털이 하나씩 모두 뽑혀 나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 성모 승천 대축일 저녁 기도중에서... – 269쪽
 

그냥... 나에겐 전압 조절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어서 그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겟는데.... 나는 종종 나에게 버튼 하나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볼륨을 조절하는 버튼 같은 거 말이야. 나는 언제나 이쪽이나 저쪽으로 너무 멀리가.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해 언제나 일이 나쁘게 끝나. 내 성향이 그래... – 282쪽
 

외로워 죽겠어, 외로워 죽겠어 하고 그녀는 나직하게 되뇌었다.
영화관에나 갈까? 쳇, 그러고 나서 누구랑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지? 감동이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녀는 지쳐서 쓰러지듯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중략)
책으로 위로할 수 없는 괴로움은 없다고 어느 위인이 말했다. 어디 정말 그런가 보자.... – 291~292쪽
 

자아.. 사람들을 만나는게 너한테 득이 될 거야. 넌 죽은 사람들하고만 살고 있어. 이제 여기에 없어서 네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넌 줄곧 혼자 있어. 그러면 사람이 이상해져. – 318쪽
 

"(중략)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은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이야. 생각해봐,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평생 쇠비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하겠어?"
"그걸 알아봤자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것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야. 왜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지? 왜 언제나 그런 이익의 관점을 들이대는 거야? 나에게 도움이 되건 안되건 난 상관 안해. 나를 기쁘게 하는 건 쇠비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359쪽
 [책 2권 속 몇구절]
 

서양식 순대는 창자 속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뉜다. 창자 속에 다진 고기를 넣은 것은 소시지, 다진 내장을 넣은 것은 내장 순대(프랑스 말로는 앙두이유), 선지와 비계를 넣은 것은 선지 순대(프랑스말로는 부댕) 또는 검은 순대(부댕 누아르), 닭고기 따위의 흰 고기를 넣은 것은 흰순대(부댕 블랑)이다. 파테는 잘게 썬 고기에 양념을 한 다음 질그릇에 담아 익힌 것이고, 리예트는 돼지고기나 거위고기 따위를 잘게 다져 비계를 넣고 볶은 것이다. – 77쪽

'크로크므시외' 토스트에 햄을 올리고 거기에 치즈를 얹어 녹인 샌드위치. '깨물다'라는 뜻의 동사 '크로케'와 '남자'를 가르키는 '므시외'를 합쳐서 만든 말. 이 크로크므시외에 계란 프라이를 엊은 것은 '크로크담(숙녀 깨물기)'이라고 부른다. – 151쪽

아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건 그게 아니에요. 내가 읽은 건, 사람들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한테서 기대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면 고통을 받는다는 거예요. 지독하게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안 되죠. 난 그렇게 죽지 않을 거예요. 고흐에 대한 우정과 형제애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죽지 않을 거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 183쪽

내장의 짐을 덜고 가려는 그대,
어둑하고 아늑한 해우소에 왔으니,
노래도 하고 파이프도 빠시게.
벽을 짚고 용쓰려 하지 말고. – 225쪽

나는 여섯 살 무렵부터 사물의 형상을 그림에 담아 왔다.

50세 무렵부터는 아주 많은 그림과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70세까지 그린 것들 중에는 변변한 것이 없다.

73세가 되어서야 겨우 새나 짐승, 벌레나 물고기의 참다운 형상이 라든가 초목의 살아 있는 자태를 이해하고 되었다.

따라서 80세가 되면 나는 훨씬 나아질 것이고, 90세가 되면 한층 더 깊은 곳까지 뀌뚫어볼 수 있을 것이며, 100세가 되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리게 될 것이고, 110세가 되면 무엇을 그리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그릴 수 있게 되리라.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내가 하는 이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

75세에 화광노인 호쿠사이 쓰다. – 308쪽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아랫사람들과 평민들의 정당한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자랑이다. –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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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4-2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예감각을 리프레시(F5) 하셨을것으로 짐작해도 되겠죠?

무해한모리군 2009-04-21 10:08   좋아요 0 | URL
음허허
아직도 전에 말한 사람을 잡을 계획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으로 어떻게 몰아올까 ㅎㅎ

꿈꾸는섬 2009-04-2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ㅎㅎ 저 이런 연애소설 좋아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4-21 10:36   좋아요 0 | URL
전 모처럼 읽는 연애소설이라 아주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