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하지 않은 젊음이 있겠는가. 사실 나의 스물도 만만치 않았기에 나는 성장영화 성장소설 뭐 이런 이름이 커다랗게 붙은건 거의 읽지 않는다. 왜냐면 혼자 읽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럽고, 때론 아픈 상처를 누가 다시 건드리는듯 가슴이 저미기도 하는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꽤나 치기어리고 어리석은 스물이었던, 내가 했던 호언 장담이나 술먹고 지껄였던 감상들을 남들은 어찌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술자리에서 남들이 회고해 주는 것만 해도 너무 부끄러운데 굳이 책을 읽겠는가..

그래도 발레교습소는 늘 봐도 좋다.  일 없는 주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만나곤 한다.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겨우 십년전에 나도 저랬다는게 너무 이상하다.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히는지 이제 그만큼 설레지도 두렵지도 않게 세상을 보고, 작은 일에 그만큼 화낼지도 모르고, 누군가와 한순간 그렇게 몰입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머리가 이따만해져서 뭔가 하고 싶은게 생겨도 자꾸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주저하게 되고, 좋아하는게 생기면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 처럼 마구 몸을 흔들며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부담스러워할까봐 망설여지고.. 나도 일단 시작하고 부딪혀서 배우고 싶다.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늙어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달리면 안되는 걸까.  

지금 반쯤 읽은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는 감성적인 단편 모음이다. 언제나 소녀이고, 여자이고, 많은 수는 어머니인 우리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가족에 상처받지 않은 십대는 없다. 동네에서 자식을 금지옥엽으로 여긴다고 소문났던 우리어머니는 사실 꽤나 냉정한데다, 칭찬에 인색한 인간형이다. 책속에 그녀처럼 나도 어머니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남들이 우리둘을 닮았다고 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어머니는 일흔에도 나랑 키가 비슷하신 서구형 미인이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섬머스마다 -.-)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그래 엄마도 여전히 소녀이고 여자이니, 소탈하게 살아가는 얘기를 친구처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막상 만나면 서른 한살 나이에도 반항하는 십대같은 뽀로통한 표정을 짓고만다 음.. 왜 독서의 성과는 나라는 인간을 깊어지게 하거나 실생활의 기술로 응용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a

뜬금없지만 두작품을 보면서 여성의 작품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감성코드를 온전히 이해 받는 느낌. 부끄럽고 틀렸다고 말해졌던 많은 것들이 우린 다그래 속닥속닥 비밀 얘기를 하는 듯한 친근함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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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1-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레교습소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예요. 전 성장소설을 읽으면 옛 생각도 나고 그래서 좋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09-01-14 08:05   좋아요 0 | URL
왠지 모르겠는데 마음이 아려서요.. 잘 못보겠어요.
전쟁영화도 못보겠고, 점점 겁쟁이가 되나봐요.

진주 2009-01-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됨이 깊어지지 못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실생활의 기술로도 응용도 하지 못하는 것은..
제 생각엔, 책을 너무 많이 읽으셔서 그래요ㅎㅎ
책 한 권을 백만번쯤 마르고닳도록 읽다보믄..=3=33=33

무해한모리군 2009-01-14 08:03   좋아요 0 | URL
득도를 해야하는군요..
실생활에 응용은 어렵고 집에 와서 후회하는데는 도움을 주는 듯 합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9-01-1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에는 술자리에서 벌인 횡설수설이나 기행을 다음날 누가 얘기해도 뭐 그러려니 싶더니 이제는 정말 싫더만요. 그래서 술을 안먹게 된다는... 나이들어가는거예요. ^^

무해한모리군 2009-01-14 08: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나이들어가는 증상이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