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서두르던 아침,

문자 하나에 마음 하나 환해진다.

'출근 길에 번뜩 생각나서 그리운 마음에 안부 전한다는'

애라 씨의 문자.

그리운 만남들,

그리운 시간들,

왜 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을,,,

그녀는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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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개강 전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코모다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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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께서 싸주신 보따리,

가만히 펼쳐보니 김치, 열무김치, 동치미, 삼겹살이

꽉꽉 담겨져있다.

얼른 썰고, 담고, 구워서 밥상을 하나 차렸다.

눈물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이 밥상이

내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고,

더 바랄 것 없는 삶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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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자꾸만 마음이 시려

창 밖 바라보는 일조차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저, 십자가 아래서 기대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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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_마가복음 9장 22-24절

_ 지난 구정 연휴를 지나고 그 주 수요일, 수요예배 시간에는 저희 가족의 특별찬송 시간이 있었습니다. 며칠 간 특송을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 어머니와 저는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으로 찬양의 곡목을 정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그 찬양의 가사가 어머니와 저에게는 퍽 와 닿았나 봅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네"

 이 찬양의 가사는 아무래도 요즈음 우리 가족의 형편을, 그 형편 속에서 바라 본 주님을, 주님의 응답과 일하심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싶었습니다. 지난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위로하는 듯한 찬양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이 찬양을 듣는 순간에 꽂혀(?)버렸지요.

 오늘의 말씀에서 주님은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아비의 간청을 듣고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어쩌면 간질병 환자인 아들을 둔 아비의 마음이란 그 병의 나음을 위해 간청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미안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진정 아들의 나음을 바란다면, 그렇게 믿어라! 그게 주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는 곧 "내가 믿나이다"라고 소리 지릅니다.

 이처럼 주님의 생각과 한낱 인간의 생각은 판이합니다. 그렇게 되리라 믿는 마음과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는 그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후자가 인간의 그 알량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서도 주님의 다그침은, 인간에게 있어서 또 한 번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그저, "믿나이다"라고 시정의 응답을 감행하면 될 노릇이지만, 본문에 나타난 그 '아비'처럼 바로 시정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그 다그침을 듣고서도 쭈뼛쭈뼛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그 음성에 옹글게 응답하는 우리, 언제쯤에야 가능할까요? 그 언제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여기가 되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다고, 이미 이루어졌다고 외치는 내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럴 때에야 진정으로 내 삶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이, 그 문제들 속의 내가 온전한 자유에 이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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