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에 내 리뷰 제목이 떠있었다.

기쁘지만, 참 신기한 일이다.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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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이벨스의 섬김 - 평신도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빌 하이벨스 지음, 서원희 옮김 / 두란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섬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실제로 교회에서 섬김의 미덕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교회에서는 사회적 나눔 등의 교회 외적 섬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의 섬김의 지표는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한국갤럽의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회가 평균적으로 전체 재정 가운데 3.88%만을 불우 이웃돕기 등 교회 밖의 사회봉사비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한국 개신교회가 오직 성장제일주의에만 몰두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섬기는 자로 사셨고 스스로 자신을 사랑의 법으로 얽어매셨다.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시며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섬기셨다. 그것은 어떠한 대가가 요구된 것이 아니었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섬김의 본은 오늘날 우리가 믿고, 따라야할 정면교사이며, 다른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거저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섬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증명하는 제자도의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섬김’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통해 섬김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대접 받기 좋아하고 올라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섬기 줄 아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인가? 섬길 줄 모르는 건강치 못한 그리스도인인가? 진정으로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처럼 섬김이 그 설자리를 잃어버린 시대에 빌 하이벨스는 이 책『섬김』에서 섬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명령임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이루는 각 지체들을 통해서 ‘섬김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권면은 본 책의 전면에서 성경적 근거와 더불어 자신의 목회 사역을 통해 경험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쉽지만 깊이 있게 기술되고 있다. 

 

 그는 먼저 주체의 문제, 즉 섬김을 행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섬김을 행하는 주체란 목사나 전도사 등의 전문적인 사역자로 한정될 수 없으며, 교회를 이루는 모든 지체들, 즉 평신도들이 섬김을 실천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13절 말씀-‘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 나타난 것처럼 봉사의 일, 곧 섬김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에게 평신도 사역자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셨고, 평신도 사역자들은 그 준비에 순종하는 대상”이다.

 

 구약 종교체제에서는 제사장과 같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에게 사역의 몫이 전적으로 할당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제 모든 이들에게 사역의 몫이 확대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곧 제사장이 되는, 이른바 만인 제사장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에 쓰이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려는 바람의 씨(소망의 씨)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심겨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25쪽)

 이제 평신도는 더 이상 관람석에 앉아 있는 구경꾼이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 함께 뛰는 선수가 되도록 요청받았다. 이는 곧 갖고 있는 은사에 따라 기쁨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때문에 목회자는 평신도가 필요한 곳에, 적절한 일에 쓰임 받도록 섬김을 권면해야만 한다. 하나님과 평신도를 연결하는 일종의 중개인으로써 말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들을 섬김에 초대해야 한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실험’이다. 자신의 은사에 합당한 사역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실험하는 자세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게 되면 무엇보다 ‘기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실험’이 결여되어 있다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지 못할뿐더러 믿음의 체계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무수히 다양한 일들에서 상처입고 좌초하게 되는 경우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 책에서 소개되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네트워크 사역’은 주목할 만하다. 책에선 다양한 임상 사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목적에 합당한 부르심의 자리를 찾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교회와 그들을 이끄는 전문 사역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병행될 때에만 가능한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봉사의 영역들을 창출해내고, 평신도들이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그들을 권면하고 격려해야한다고 빌 하이벨스 목사는 말하고 있다. 그러할 때 비로소 교회 내적 봉사든 외적 봉사든 모든 섬김의 사역들이 활성화되고, 주님께서 주신 목적이 달성되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섬김의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빌 하이벨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봐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영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이고, 그리스도께서는 궁극적으로 종의 삶을 사셨다. 우리가 남을 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안에 종의 영이 거하기 때문이다. 남을 섬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다.”(101쪽)


 곧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이다. 팔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주님의 본처럼, 우리의 마음가짐은 스스로 낮아지는 종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정직하고, 아름다운 섬김이 가능한 것이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고 권면하면서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섬김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섬김이 전적인 희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섬김은 놀라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봉사의 길은 항상 보답이 있기 마련인 ‘쌍방향 도로’라고 빌 하이벨스 목사는 말한다. 여기에서 그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어떤 사람은 섬김을 통해 부부관계가 원만하게 되는 치유를, 어떤 사람은 나른한 삶에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게 되어 적극적인 삶으로 변화하게 된 치유를, 어떤 사람은 내면의 아픔에서 회복되고, 어떤 이는 노숙자로서의 삶에서 해방되어 치유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섬김을 통하여 자신도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하며, 이른바 ‘봉사자 황홀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의 삶은 한 순간의 황홀 경험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되어야만 한다. 종으로서의 삶은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령 충만이 요구된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사랑을 날마다 경험해야만 진실하고 활기찬 종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이처럼 책 전편을 통해서 ‘섬김’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우리가 섬김을 삶을 살아야함으로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섬김의 혁명이 지금-여기에서 성취되기 위해서 우리가 ‘과감하게 공동의 목표를 위해 봉사하는’ 그 길의 동참자가 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섬김에 굉장히 인색한 것처럼 보인다. 낮은 자리에 처하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처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나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이 습관처럼 우리의 마음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고,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심정으로 돕고, 봉사해야한다. 섬김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 명령이 성취될 때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책의 말미에 적혀있는 빌 하이벨스 목사의 비전을 옮기며 마친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모든 교회와 모든 자선단체가 의욕 넘치고, 사랑 가득한 재능 있는 봉사자들로 넘쳐난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땅에 하늘나라를 실현하려는 봉사자들이 서로 줄을 서서 봉사하려고 달려드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아,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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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숙 2007-10-2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의 열방을섬기는 사역에 대해
CBS TV '수호천사' 프로그램이 방영됩니다.

방영은 10월 30일(화) 낮12시, 31일(수) 밤 12시, 11월4일(주일) 오후4시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열방을섬기는 선교센터가 세워지고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귀한 출발점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 드립니다.

http://town.nate.com/iyonsei

바람결 2007-10-27 19:15   좋아요 0 | URL
네,,기억하고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하나님 은혜로'라면 못할 것 없겠습니다.
늘 가시는 길에 주님 축복 함께 하시길 빕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_ '낭독의 발견'을 보다 눈 앞이 흐려졌습니다. 도종환 시인이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간 이 시는 가슴 깊숙히 저며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때는 바로 이러한 사람이길 원합니다.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될 줄 아는, 한 방울 눈물이 될 만한 그러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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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는 않았다.

길을 걷다 문득 뒤를 보았을 때,

그곳엔 다른 누구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걸었고

정처없이 걸었다.

쉽지는 않았다, 지금의 선택은.

피 철철 흘러내리던 가슴이

여전히 그대로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또 하늘을 보았고,

하늘엔 여전히 네가 있었다.

쉽지는 않았다.

저기 머언 길 끝 바라보는 일은.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이제는 나는 눈 뜨고,

손비비며 걸음을 뗀다.

하늘은 높푸르고,

땅 디디고 나는 나는,

되돌아간다.

지나왔던, 또는 오래 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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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간만이다.

밤 샜다.

자연의 죽음때문에

나도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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