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月 22日

어리석은 나방은 불이 아니라 빛을 갈망한다.

슬기로운 나방은 빛이신 그분을 얻고자 불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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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2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만 쫓다가 그 분을 얻지 못하는 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다가
정작 달은 바라보지 못하는 우매자이다.

오롯이 그분을 보고, 그분과 하나가 되어라!
 

9月 21日

고(苦)는, 그 안에

자비가 담겨 있는 선물 상자다.

 

껍질 벗기면 곧,

싱싱한 속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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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2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고통은 희망을 낳는다고 한다.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인간은 성숙하고,
더 나은 일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인도된다.

불의는 저항을 낳지만,
고통은 희망을 낳는다.
 

9월 20일

파산 신고를 할 때까지

우리는 세상에 갇혀 있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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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22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산 신고하겠습니다. 손들고, 나는 모두 버리고, 그렇게 당신께 가겠습니다.
 

 22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24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24 모세가 주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25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26 그들이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 그들은 그 곳 물가에 진을 쳤다.

....................................................

 매몰차게 내리치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허천난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려 교회로 향했다. 평소 너무나도 존경하던 김기석 목사님의 말씀은 여전히 절절했고, 나직한 기도의 시간이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전해주신 하늘뜻은 마치 '치유'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나를 위해 들려주시는 그 분의 음성처럼 느껴졌다.

"나의 영이 치유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몸이 치유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어떻게 해야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2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행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바로 그 때가 우리가 치유받는 때이지요. (......) 지금 당신의 인생이 마라('쓰다'라는 뜻의 샘)에 있을 때, 쓴 맛에 처해있을 때, 그리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이 마라에 있다고 하는 것은 곧 엘림('달다'라는 뜻의 샘)이 멀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며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 명령대로', '하나님 뜻대로'를 읊조리고 있었다. 하고보면 한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상이었다. 오롯이 존재의 근원이신 그 분께 내려놓음을 통해서 상처는 아물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었다. 기도가 막 하고 싶어졌다. 나를, 내 자아를 자꾸만 내려놓고 싶어졌다. 어느틈엔가 마음은 아릿하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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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명상
고진하 지음 / KMC(기독교대한감리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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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등굣길에 차창 밖을 바라보니 거리의 풍경이 여간 복잡하고, 분주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달리기에 가까운 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비오는 거리는 그네들의 발걸음에 질퍽거리고 있었습니다.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영혼의 무게에 대하여 잠깐 생각하였습니다. 얼마나 가볍기에 저토록 빠르게들 떠나시는가? 사실 이러한 생각을 해본 것이 처음은 아니라서 저는 또 속수무책으로 우울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저토록 날래게 움직거리는 것은 기실 그 영혼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마음 탓인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저 무거운 바위를, 그야말로- 오로지 ‘살기 위해’ 밀어 올려야만 했던 시지포스가 중첩되어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비루함은, 인간의 비루함은 거리 도처에 잔상처럼 남아서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주하게 살아가는 ‘날랜 인생’들에게 일상의 틈은, 마음의 여백은, 창조의 포란(抱卵)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비움의 시간, 즉 참된 쉼이 없고서는 일쑤 팍팍한 인생이 되고 말지요. 그래서 지친 영혼들은 제 삶이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안도현)일 때, 어디론가 떠나서 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작은 바람도 현실의 분주 속에서 유야무야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렇게 세상의 불행한 인생들은 틈을 잊은 채 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마음이 산란할 때, 제 마음 속에 일체의 여백이 존재할만한 틈이란 없습니다. 그저 일상의 순간들을 ‘닥치는 대로’ 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그러던 중에 <나무명상>이라는 책이 문득 눈에 띄어 손에 들었습니다. 

 

 이 책은 시인 고진하 목사가 숲을 거닐며, 나무와 속삭이며 마음을 주고받았던 교감의 기록입니다. 그는 숲을 이루고 있는 그 수많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고요 속에 찾아오는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모든 피조물은 안식을 주는 것에 끌린다’는 중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진언(眞言)처럼 그는 나무에 끌려, 더불어 교감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나뭇잎마다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지문과 말씀에 오롯이 마주하며, 묵묵히 적어내려 간 이 명상록에는 그가 체험한 안식의 산문들이 정직하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산문들이 증언하는 것은 속도와 효율을 정점에 두는 시대정신에 있지 않고, 나무의 너른 품에 기대어 쉬는, ‘시간보다 더 느슨한’ 여유와 관조였습니다. 

 

 시인은 “나무와 생명의 교감과 신비를 나누는 마음은 곧 신성한 공간으로 변합니다. 이런 신성한 공간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158쪽)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나무는 단순한 미물(微物)에 그치지 않고 함께 더부는 벗이며, 동시에 교사(敎師)이기도 합니다. 시인에게 저 묵묵하고, 고요한 나무는 마치 ‘나+無’, 즉 ‘나’가 없는, 에고가 사라진, 완전한 비움에 이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사람인 나보다 한참은 더 높고, 숭고하게 느껴지게 되지요. 그래서 나무는 마치 하나님께 잇댄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 앞에서 시인은 하릴없이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이 나무 같은 분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습니다.”(181쪽)라는 고백처럼. 

 

 온통 바쁘고 분주한 세상.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누는 말들이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소통의 도구로써 작용하지 못할 때, 그 숱한 말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신령과 진정을 담아야 할 기도의 언어조차 내적인 절제와 정화를 거치지 않은 채 저잣거리의 소음처럼 드릴 때, 그런 말들 역시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게 할 뿐입니다.”(81쪽) 그래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말은 없고, 떠도는 말들만 가득하다’고 하였나 봅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한 번 더 곱씹고 되 뇌일 시간도 없이 내뱉고 마는 것이 인간의 말이기 때문이지요. 정말이지 갈수록 소통은 없고, 불통만 가득한 세상처럼 여겨집니다. 때문에 메마른 영혼의 갈증은 억수 같은 빗방울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단할 때, 자신의 허상(虛像)같은 현실을 내려놓고, 나무와 정직하게 마주하기 시작할 때, 그 고요와 침묵의 시간들은 우리의 영혼을 진정한 ‘안식’의 성소(聖所)로 인도할 것입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이여, 지금 당장 나무의 품에 기대어 생명의 숨결을 나누고, 참된 평안과 안식의 거처로 들어가십시오. 그곳에서 당신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보화들이 빛을 발하고, 생수의 강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마태복음11장 28절과 요한복음 7장 38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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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며칠간 마음의 폭풍이 조금 가라앉아가고 있는데, 어제 저녁 제 스터디 관련 카페에서 또 '떠도는 말들'을 읽었습니다. 전 꾹 참았습니다. 거기에 제가 또 더할 필요가 없다,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만 갖고 있자,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님의 리뷰가 제겐 한 그루의 나무처럼 읽혔습니다. 시간보다 느슨한,, 그 안에서 무한한 사랑을 깨닫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라, 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바람결 2007-09-19 12:41   좋아요 0 | URL
음...그러셨군요, 혜경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만 갖고 있자'는 님의 다짐,
참말로 맞습니다. 말, 말, 말...

그나저나 늘 좋은 댓글로 깨우쳐주시니 감사,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