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당을 볼 때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어느 꽃나무 아래 앉아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풀잎 끝에서 흔들리고 있다

 

꽃이 시들고 있다

이미 무슨 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도 너는 있다

 

빈 하늘을 볼 때마다 너는 떠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훌쩍 서 있다

 

나는 저 마당보다도 가난하고

가난보다도 가난하다

나는 저 마당가의 울타리보다도 가난하고

울타리보다도 훌쩍 가난하다

ㅡ가난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고

너는 훌쩍 없고

없고 그러나

내 곁에는 언제나 훌쩍 없는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다

ㅡ빈 마당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뿐인 심장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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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좋은 시를요! 잘 읽었습니다.^^
무욕의 빈 마당같은 심장 하나 끄러안고 그저 가난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가난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말의 참뜻을 헤아리기 저로선 어렵지만
알듯 말듯 그렇습니다.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삶으로 해석해봅니다.
무욕! 몸과 마음, 사념과 욕망의 가난을 택하면 저에게도 그분이 들어올까요.
언제나 훌쩍 없는, 팔짱 낀 사람, 그분이요...

바람결 2007-09-10 00:41   좋아요 0 | URL
'사랑'엔 언제나 상대는 없고, 절대만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김흥호 선생님께서 "사랑은 그대로 사랑이다"라고 하셨던 말씀도
결국은 모든 사랑이 그대로 '사랑'임을 일러주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3연까지 도처에 존재하던 '너'는,
내가 부지런한 가난에 처하고서는,
끝 연에서는 없어졌네요. 그런데,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이는 내 곁에서
팔짱을 끼고 있어요.
그 존재의 느낌에 심장이 뛰고,
내 손은 심장으로 간대요.

'사랑'이신 그 분은 언제나 사랑과 같아서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곳에서 보이나 봅니다. 내가 가난해져서 보이나 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존재에게 '사랑은 그대로 사랑'임이 참 적실하게 느껴집니다. 여튼,

저도 혜경님처럼 그저, 그저 가난하게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