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자체를 느끼는 자는 없다.  

무엇이 일어난다.  

이것이 전부이다.  

지금 당신에게는 느낌을 느끼는 자,  

“나”가 있어야만 할 것 같지만  

당신이 계속 수행을 해 간다면  

당신은 자아가 사라지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 때 당신의 의문은 사라진다.            -고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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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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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 그릇 찾기,
철가방 이씨의 하루
                                                           -이창훈

 

나는 대구 한복판에 있는 중국집 배달부로 일하고 있다. 반점 뒤쪽으로는 작은 전자상가들이 있고, 한일로를 건너면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상가들이 모여 있는 동성로다. 이곳 사람들은 이 지역을 통틀어 그냥 ‘시내’라고 한다.


중국집 주방은 그 규모에 따라서 구성이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반점은 주방에는 주방장과 면장 두 명이 일하고, 홀과 배달은 네 명이 있다. 배달부 가운데 두 명은 월급을 받는 직원이고, 나머지 두 명은 아르바이트생이다. 한 명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고, 한 명은 애견미용학원을 다니고 있다.

나는 보통 8시 반에 출근을 한다. 출근하면 주방의 식구들이 먼저 와 있다. 아침부터 바쁘게 주방장은 그날에 쓸 야채를 썰고, 면장은 그날에 필요한 면을 반죽한다. 홀과 배달을 맡고 있는 우리들은 단무지와 양파를 담아 비닐 랩으로 싸 놓는다. 공기밥도 미리 담아 놓고, 일회용 통에 고춧가루도 넣어 둔다. 마지막으로 홀에 있는 식탁 위 식초와 간장을 채우면 바쁜 아침 준비가 끝난다. 10시 반이다. 아침을 먹는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다. 커피도 한 잔 먹고, 배달 전화를 기다린다.

11시가 조금 넘으면 배달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대부분 아침을 챙겨먹지 못한 사람들이 아침 겸 점심으로 먹기 위해서다. 매운 짬뽕 국물로 해장을 하려는 손님들도 있다. 12시가 넘기 시작하면서, 하루 중 가장 바쁜 배달 전쟁이 시작된다. 시내 지리에 밝고 경험이 많은 홀장이 배달 통에 젓가락, 숟가락을 담고 고춧가루, 공기밥을 주문한 메뉴에 따라 먼저 챙겨 놓는다. 경험이 없는 초보자는 바쁘면 당황하기 때문에 꼼꼼히 챙겨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짬뽕밥 둘, 간자장 하나, 볶음밥 둘, 짬뽕 둘이라고 치자. 그러면 면 세 개에 밥이 네 개다. 젓가락 일곱 개, 숟가락은 세 개, 볶음밥 국물 두 개에 단무지와 깍두기를 넉넉하게 챙겨야 배달 가서도 손님들이 불만이 없다. 만약 숟가락을 빠뜨리고 가거나 국물을 안 가져가고, 어처구니없이 간자장 소스를 빠뜨리고 가면, 배달 간 곳을 두 번 가야 한다. 바쁜 시간에 배달 간 곳을 두 번 가려면 ‘꼭지’가 돈다.

대구 시내는 낡은 건물이 많다. 대부분 계단을 오르는데 3층, 4층 심지어 5층까지 철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한다. 전화가 오는 순서대로 배달을 가지만, 5층에서 주문이 오는 경우에는 서로 가기 싫어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중식은 그래도 그릇이 가볍지만 한식의 경우에는 돌솥 비빔밥 한 통 들고 5층을 오를 때면 중간 4층에서 한 번은 쉰다. 경험이 많은 배달의 고수들은 같은 방향에 배달처를 묶어 한 번에 간다. 배달 통 한 통은 뒤에 싣고, 한 통은 손에 들고 오토바이를 몰 줄 알아야 베테랑 배달부로 인정을 받는다. 바쁜 마음에 오토바이를 몰다 보면 초보자들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주문이 오는 곳에서 전화가 오기 때문에 경력이 늘어 가면서 가장 빨리 가는 길에 대한 요령이 생긴다. 가장 빠른 길이란 신호 무시, 중앙선 무시, 사람 다니는 길도 무시다. 경적을 울리며 인도에서 사람 사이를 빠져 나갈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배달 통 안에서 불고 있는 자장면을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바빠진다. 다른 음식은 몰라도 자장면 싣고 배달을 갈 때면 마음이 더 바쁘다. 배달처를 잘못 찾거나 교통 신호를 몇 번 놓치는 경우 난감한 일이 생긴다. 음식이 도착해서 손님이 자장면을 젓가락으로 찔러 면을 들면 자장면이 통째로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다시 배달 가야 한다. 따라서 배달을 하든, 주방에서 일을 하든, 중국집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성질이 급하다. 일하는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배달이 이렇게 바쁘면 주방도 전쟁이다. 바쁜 시간에 주방 보조가 일을 잘못하거나, 손이 뜨면 주방장 국자에 머리가 쪼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맑은 날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 배달이 많다. 밖에 나가서 사 먹기 귀찮기 때문이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짬뽕 주문이 폭주한다. 간혹 짬뽕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 한 병 사 달라는 놈도 있다. 손님의 요구라 안 들어줄 수도 없고, 바쁜데 슈퍼 들러 소주 한 병 사고, 중앙선 넘어서 불법 유턴해서 배달처에 도착하면 욕이 절로 나온다. 담배 사 달라는 놈이 없나, 심지어 머리가 아프다며 진통제 사 달라는 여자손님들도 있다. 똑같은 곳에 서너 번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미용실 같은 경우 손님이 있을 때는 식사를 못하고, 미리 시켜 놓으면 면이 퍼지기 때문에 자기 시간 빌 때에 차례로 음식을 시키기 때문이다.

오후 2시다. 이때부터 배달부들은 그릇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크게 세 군데로 나뉘어서 두 사람이 먼저 그릇을 찾기 시작하고, 둘은 남아서 한두 그릇 주문 오는 배달을 한다. 배달하는 것보다 그릇 찾는 것이 더 힘들다. 배달 갈 때는 손님들이 참 반갑게 우릴 반긴다. 배고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먹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그릇은 벌써 애물단지가 되었다. 종이 커피 잔에 휴지가 잔뜩 담긴 빈 그릇은 대부분 가장 구석지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 신문지나 비닐봉지에 돌돌 감겨 감춰져 있다. 그릇을 찾기 위해 몇 번 헤매다 보면, 어디를 가더라도 빈 그릇 두는 곳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그릇 빨리 찾아가라고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여자들이고 깨끗한 옷 파는 가게에서 전화 오는 경우가 많다. 가끔 그릇을 찾아 나오다가 국물이 흘러 가게 바닥에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벌건 국물을 본 주인 인상이 구겨진다. 그러면 바닥에 흘린 짬뽕 국물을 다 닦고 나온다. 빌딩에서는 음식 국물을 흘리면, 청소 하는 아줌마들이 제일 싫어한다.

오후 4시가 되면 대충 그릇을 다 찾아오고 겨우 점심을 먹는다. 밥 먹을 때도 전화는 울린다. 밥 먹는 시간에 주문하는 사람들은 정말 밉다. 그런데 꼭 그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들이 전화한다. 생활 사이클이 그렇게 맞춰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점심은 대부분 자장면이나 짬뽕으로 한다. 다른 음식도 많지만, 주방장 입장에서는 음식 하기가 귀찮고, 주인 입장에서는 비싼 음식 재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나이 든 주방장이 하나 같이 하는 이야기가 자기가 기술 배울 때 중국사람 밑에서 새로 만든 음식은 먹지 못했다고 한다. 잘못 배달 갔거나, 손님에게 퇴짜 맞은 음식을 데워 먹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주방장이라면 기술을 가진 기능인으로 대접을 받지만, 옛날에는 대부분 학교 가기 싫어서 가출해서 먹고 잘 데가 해결되는 중국집에서 배달부터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 학력이 짧다. 주방장이 못 나올 때는 중식 재료상에서 소개하는 일용직 주방장이 급히 투입되기도 한다.

저녁시간 음식 주문은 오후 6시에서 8시까지가 절정이다. 그래도 점심시간처럼 전쟁을 치르지는 않는다. 그 시간쯤 되면 전화 받고 배달 가는 것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주문에 따라 젓가락 챙기고, 숟가락 챙기는 것이 손 따로 머리 따로 자동이다. 배달 가면서 지나가는 곳 근처에 있는 빈 그릇을 한두 개씩 찾아 들인다. 장사는 9시까지 하지만 빨리 그릇을 찾지 않으면 10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9시 넘어 음식 주문이 오면, 주인이 아무리 돈 더 벌고 싶어도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한두 그릇 팔겠다고 그 시간에 주문 받는다면 손님이 그 음식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릇까지 찾으면 10시가 넘기 때문이다. 보통 9시 30분이 넘으면 그릇 다 찾고 그날 정산을 한다. 아침에 사장이 준 시재금을 제외한 그날 매상을 장부에 맞춰서 계산을 한다. 만약 정산을 해서 틀리면 장부를 보고 계산이 왜 틀린지를 찾아야 한다. 정산이 많이 모자라는 경우 배달하는 사람이 메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더 심한 경우는 가게 그릇 숫자를 세어놓고 마감한 뒤 그릇 숫자가 모자라는 경우 찾지 못한 그릇을 장부를 보고 찾아내라는 주인도 있다.

쓰레기 치우고, 단무지 그릇 정리하고, 주방 청소하고, 오토바이를 가게 안으로 다 들이면 길고 바쁜 하루가 끝난다.

사람들은 중국집 배달부를 ‘짱깨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나 개그 프로에서도 중국집 배달부는 코믹한 인물의 전형이다. 그러나 ‘짱깨이’를 우습게 보지 마라! 그대들의 주린 배를 가장 신속하고 값싸게 채워주는 이들이 ‘짱깨이’들이다. 바람 불고 비가 와도 철가방은 달려가야만 한다, 한 그릇 자장면이 배달되기 위해 수많은 배달부들이 그렇게 철가방을 들고 운다.

중국집에 음식 주문하기 전에 주위를 한 번만 둘러보세요. 그리고 한 박자 천천히 주문하세요. 저희들이 출발한 뒤 전화해서 ‘자장면 한 개 추가해 주세요!’ 이런 소리는 제발 그만 듣고 싶거든요.

출처: 삶이 보이는 창(http://www.samchang.or.kr/bbs/view.php?id=talk&no=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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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3-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그림 찾으러 들어왔더니,,,,숨은 그릇이네요....ㅎㅎ

icaru 2007-03-28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집에 주문할 때는 한 박자 천천히! 잊지말자@@@!

이누아 2007-03-2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영혼의 관한 글 읽고 오는 길입니다. 숙연해지네요.
이카루님, 아이는 정말 몰라보게 빨리 자라는군요. 사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근데 잉크냄새님 서재에서 옹기종기 이야기하다 여기로 옮겨 온 것 같네요.^^ 두분 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於坐中에 最易得力하리니 初坐時에 抖擻精神하야 放敎身體로 端正이언정 不可背曲이니라 頭腦를 卓竪하고 眼皮를 不動하야 平常開眼호리니 眼睛이 不動하면 則身心이 俱靜하리니 靜而然後에사 定이리라.


좌중(坐中)에 득력(得力)하기가 가장 쉬우리니, 처음 앉을 때에 정신을 차려 몸을 쭉 펴고 단정히 할지언정 등을 굽히지 말지니라. 머리를 우뚝이 세우고 눈시울을 움직이지 아니하야 눈을 보통으로 뜨리니, 눈동자가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해지리니 고요한 뒤에사 정(定)에 들게 되리라.

                                                                                       -몽산법어(선학간행회 역)*, pp.34-35.

 

 

일전에 "당신의 스트레스 조절능력"이라는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님께서 무슨 원리가 이 그림에 숨어 있을까 하셨는데 그때 제가 "眼靜이면 心靜"이라는 글을 몽산법어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몽산법어를 꺼내 읽다 보니 아마도 위 구절을 보고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뜻이야 통하지만은 기왕에 읽다가 눈에 띈 것이라 여기에 옮겨 적어 전의 잘못을 바로 잡습니다.

 

오직 모를 뿐인 공부에 일념정진하시길,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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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몽산법어가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저는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인천 용화사 용화선원(ww.yonghwasunwon.or.kr)에서 나온 것입니다.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실참자가 읽기 쉽게 된 것으로, 시중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용화사에서 전화주문해서 구입가능합니다.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선가귀감 역시 실참자가 보기에 무척 유익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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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1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마음 더욱 밝아져 부처님 전에 복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원장 스님(송담 스님)께서는 공부를 통해 뭔가 얻어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삿된 외도의 길이라 하셨습니다.                     

          -용화선원 신행상담에서 상담스님의 글(www.yonghwasun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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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일을 수행삼아 조금씩 하는 거다.

한꺼번에 일처럼 해서야 되겠느냐?"

  -서암 스님(달팽이님 리뷰에서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3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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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2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달팽이님 리뷰 보면 이누아님 덕택에 읽었다 하시고,
이누아님 뻬빠 보면 달팽님 리뷰에서 퍼왔다 하시고...
돌고 도네요. 맞아요. 한꺼번에 일처럼 해선 안 되죠. 뭐든.

이누아 2007-01-2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달팽이님 리뷰에서 퍼왔어요. 일 아닌 것도 자꾸만 일로 만드는 제게 직접 하신 말씀처럼 들려요. 뜨끔했어요.^^

2007-01-23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