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카뮈



하늘이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동요에 나올 법한 풍경이다. 이 맑은 풍경 아래로 벚나무 중 몇 그루의 잎이 말라가고 있다. 계절에 맞는 풍경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게 섭리를 따라 사는 걸까. 어쩌면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 자연도 치열하고 분주할지도 모른다. 나는 겨우 쑥쑥 자라는 아이들에게 맞는 옷을 사다 주는 것으로도 분주한 마음인데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하는 나무와 벌레, 길고양이들. 


아파트 화단에 있는 백장미는 한 나무인데도 어떤 꽃은 피고 어떤 꽃은 지고 있었다. 지면서 피는 것을 보는 것, 피면서 지는 것을 보는 것. 꽃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사람도 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으면서 새삼스레 꽃의 마음이라니.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몇 년 안 돼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아무 마음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나이 들어가고 있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 마음도 아니다. 섭리라고 생각해서일까.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더울 때는 밤에 걸었는데 요즘 낮에 걸어서 그런가 보다. 꽃무릇은 잠깐 피었다가 졌다. 꽃댕강나무에게서 아카시아 나무 냄새가 난다. 교회 앞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다녀서 많아 보였던 게 아니라 정말 비둘기가 많다. 갈색 길고양이가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두 마리다. 우리 동네 캣맘은 밤에 고양이 밥을 주고 나중에 그릇까지 수거해 간다. 낮에는 그릇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쓰레기도 보인다. 하루 평균 2개의 마스크를 줍는다. 마스크 줄 때문에 새의 발이 잘린다는 뉴스가 떠올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길에 휴지통이 없어서 그걸 들고 마트 화장실까지 가서 버린다. 


독서노트를 안 쓴 지 꽤 되었다. 오늘 우연히 노트를 폈는데 카뮈의 [작가노트]와 보르헤스의 [말]을 필사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천천히 썼기 때문일까. 읽을 때도 천천히 읽게 되는 걸까. 사진을 찍어 놓거나 컴퓨터에 적혀 있는 것보다 더 가만히 읽게 된다. 다시 손으로 적어 볼까. 


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시를 읽으며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가 생각났다. 내용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짧은 산문 같은 느낌이 비슷해서. 산문이라고 해도 괜찮은 것 같은데 시라고 한다. 영어 원문에는 리듬감이 있는 걸까. 산문과 산문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유머스럽고 재미있는 시들이 많았다.  [분더카머]는 어찌 보면 지적인 자서전 같은 느낌이다. 보통 책들이 양쪽 정렬을 하는데 왼쪽 정렬이 되어 있어 약간 산만했지만 작가가 타이핑한 글 같은 느낌도 들었다. 모르는 단어들이 나와서 찾아 보며 읽었는데 그게 읽는 데 흐름을 좀 끊었다. 이건 내 무식 탓이지 책 탓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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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진/ 제임스 테이트



  나는 전생에 개였다. 아주 착한 한마리 개. 그래서, 이렇게, 승진하여 한 인간이 된 것이다. 나는 개였던 것이 좋았다. 나는 양떼들을 지키고 물고 다니며 가난한 농부를 위해 일했다. 늑대와 코요테들이 거의 매일 밤 나 몰래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러나 단 한번도, 한마리 양도 잃지 않았다. 농부는 그의 식탁에 있는 좋은 음식으로 보상해주었다. 그는 가난했지만, 그러나 먹는 것은 잘 먹었다. 그리고 그의 아이들은 학교 가지 않을 때나 들에서 일을 하지 않을 때 나와 놀아주었다. 나는 어떤 개라도 부러워할 만한 그런 모든 사랑을 받았다. 내가 늙게 되니, 그들은 새로운 개를 한마리 구했다. 그래서 나는 그 개에게 거래의 요령을 가르치며 훈련시켰다. 그는 빨리 배웠고, 농부는 나를 집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게 했다. 농부 역시 점점 늙어감에 따라 나는 아침마다 그의 슬리퍼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서서히 매번 조금씩 죽어갔다. 농부는 이걸 알고 때때로 그 신참 개를 데리고 들어와 나를 방문하게 했다. 그 개는 톡톡 치고 벌렁 뒤집혀 눕기도 하고 코를 비비대며 나를 즐겁게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내게 나무 그늘 아래 시냇가에서 훌륭한 매장식을 해주었다. 그것이 나의 개로서의 삶의 끝이었다. 때때로 나는 그때가 그리워 창가에 앉아서 운다. 나는 한 무리의 다른 고층 건물들이 내다보이는 고층에 산다. 직장에서 나는 작은 칸막이 방에서 온종일 일하고 거의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착한 개로 살았던 것에 대한 응보다. 인간 늑대들은 나를 쳐다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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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제임스 테이트

완벽한 개업 축하시-강보원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김미령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랑-김승희

혼자의 넓이-이문재

생활을 위하여-박방희

무덤을 맴도는 이유-조은


분더카머-윤경희

타인의 얼굴-아베 코보

구멍-오야마다 히로코

미생-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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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30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노트를 필사로...!

이누아 2021-09-30 14:32   좋아요 2 | URL
그럴 리가요. 제가 오해하게 글을 썼네요. 밑줄긋기 같은 거예요. 마음에 닿는 구절을 베껴 적는 거지요.^^

scott 2021-10-05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의 포스팅에 올려주신 발췌문 여러 번 읽게 되네요
잘 지내고 계셨죠
10월이라는 숫자가 의미 없이
가을에 서늘함이 없네요

까뮈의 말처럼 버티는 것, 체념 하지 않기
+플러스
투덜거리지 않귀 ㅎㅎ

10월 건강한 달, 행복한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ㅅ^

이누아 2021-10-05 21:50   좋아요 1 | URL
저는 자주 체념하고 투덜거리는 편이라 좀 찔립니다. 가끔 투덜거리는 건 괜찮지 않을까요? 투덜거린다는 말을 보니 투덜거림으로 만든 CL의 <그냥 투덜거려 본다>가 생각나네요. 의식의 흐름^^

scott님도 건강하고 편안한 10월 보내시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