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어 / 안희연

 


 

​진짜라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단 하나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태도 같은 것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 같은 건 없다

식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 한 봉지가 놓여 있을 뿐

 

저 감자는 정확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싹이 아니라 독이지만

저것도 성장은 성장이라고,

 

초록 앞에선 겸허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싹은 쉽게 도려내지는 것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흐린 것은 흐리고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

 

아직일 수도 결국일 수도 있다

숨겨 놓은 조커일 수도

이미 잊혀진 카드일 수도 있다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 2020)



---------------------------



눈물은 그러다가 흐른다-황성희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이소호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유계영

다른 시간, 다른 배열-이성미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최문자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안미린

생활이라는 생각-이현승

트렁크-김언희

지옥에서 보낸 한 철-랭보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장석남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오주석

폴 세잔-캐롤라인 랜츠너

작은 것이 아름답다-유종호

제유-구모룡

 

-다시-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임승유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1-12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월 에는 이누아님이 포스팅 해주신 시집들 천천히 읽어 봐야 겠네요 오늘 꽤 쌀쌀 합니다 12월 초 날씨 이누아님 11월 건강하게 따숩게 ^ㅅ^

이누아 2021-11-12 21:25   좋아요 2 | URL
님이 포스팅하는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평소에 들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고급 음악 잡지에서 노래가 나오는 느낌. 고마운 마음입니다. 님도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시길.

그레이스 2021-11-15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주석, 랭보!

이누아 2021-11-23 10:23   좋아요 0 | URL
알라딘 마을 사람들은 읽은 책이 많아서 이렇게 읽은 책이 겹치기도 하는데 저는 영 그런 책이 없더라고요. 오주석은 2권도 읽어야지!^^

청공 2021-11-22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11월에는 어떤 시 읽으셨나요?^^

이누아 2021-11-23 10:21   좋아요 1 | URL
이 질문에 안희연의 스페어가 떠오르네요. 11월에 읽은 시도 아닌데.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책상에 앉아 있어요. 감자처럼. 시는 댓글에 달려다가 페이퍼에 올려 둡니다. 같이 읽자고요.^^ 청공 님 덕에 다시 이 시를 읽게 되네요.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