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냥 쓰다듬을 뿐입니다. 말을 해도 고작 입속말로 웅얼웅얼하는 것입니다. 밥상 둘레에 앉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가난한 아버지의 손길 같은 것. 강보에 아이를 받은 어머니의 반갑고 촉촉한 눈길 같은 것.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데려가는 예닐곱 살 누이의 마음 같은 것.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조그맣고 작은 넓이로 둘러싸는 것. 차마 잘라 말할 수 없는 것. 그런 일을 쓰다듬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느림보 마음> p103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서도 이별을 의심합니다. 이별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서도 이별을 했다는 사실을 거듭 더 확인하려 합니다. 영영 이별이었기를 바랍니다.


<느림보 마음>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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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

중략...

...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끌림> #009 탱고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끌림> #46 고양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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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만 - 아카바행 버스 안에서 , 와디럼 사막 어느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2009년 3월>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경우 풍경이 나를 주박하여 내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되곤 하지만 반대로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감정의 일부로 자리 잡기도 하고 때론 서로 스미어 번지기도 한다. 암만에서 아카바로 향하는 그 길의 풍경이 그러하였다. 암만 도심을 벗어난 낡은 버스가 황량한 사막 지역으로 접어들 무렵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눈꺼풀에 맺히는 햇살의 낯선 아른거림에 눈을 뜨니 버스는 희뿌연 모래 바람 속을 지나고 있었다. 쓸쓸함마저 모래 바람 속에 휘말린 듯한 황무지, 모래 먼지와 잿빛 구름에 휩싸여 무채색의 아련함을 간직한 태양, 오랜 세월 한번도 길을 떠나지 못한 사막의 바위... 순간 그들이 먼지 낀 차창을 통하여 내 안으로 들어와 길 떠남 이후 내 가슴속 어딘가를 줄곧 떠돌던 감정 하나를 오래도록 어루만졌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며 울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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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걸작 입니다!

잉크냄새 2021-07-11 17: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좋네요~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나랑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일체감이 너무 좋은데 찰나라.. 다시 또 그 풍경을 찾아가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잉크냄새 2022-03-24 14:44   좋아요 0 | URL
다시 또 그 풍경을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그러고 싶은데, 생은, 삶은 그리 녹녹치 않은가 봅니다. 저도...
 

  나는 희망을 생각하게 되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요구할 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나는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한시도 잊지 않고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 역시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른 점이라면 그의 희망은 절박한 것인데 비해 나의 희망은 막연하고 아득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눈앞에는 해변의 푸르른 모래밭이 떠올랐다. 짙은 남색 하늘에 바퀴처럼 둥근 황금의 보름달이 떠 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아Q정전. 광인일기>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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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요

<지구별 여행자> p.93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까지 다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들은 다음 생을 위해 남겨둬야 할 길들이었다. 

<지구별 여행자>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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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2-3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잉크냄새 2021-01-02 15:4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