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어제 박가분 아저씨님의 서재에 올리신 시중에 나온 단어이다. 언뜻 야생화 이름 같은 이 단어가 저녁에 떠오르는 금성이라고 한다. 새벽녘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금성이 [ 샛별 ]이고, 저녁 무렵 떠오르는 금성이 [ 개밥바라기] 라고 한다.


여기 박가분 아저씨님의 서재에 올라온 [ 개밥바라기 ]시를 하나 올린다.

[개밥바라기 추억]-장하빈

겨울 금호강가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 어귀에서
모닥불 지펴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齊(제)를 올렸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초저녁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나와 개에게 밥을 줄때쯤에 금성이 떠오르기에 [ 개밥바라기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단어의 어감이나 의미가 참 재미있다. 해라바기와 어감이 비슷한것 같기도 한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개밥바라기의 의미로 너무 아름답다.

우리가 기억하는 밤하늘의 별자리들은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명칭이 많은 것 같다. 오리온, 카이오페이아, 페르세우스....등등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관이 되거나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은 기껏해야 견우성, 직녀성 정도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목동이 아가씨에게 소근소근 말해주던 별자리의 이야기처렴 우리의 옛날 이야기 한 자락 품고 있는 별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견우별과 직녀별 : 여름철의 은하수 길을 사이에 두고 뜨는 거문고자리와 독수리 자리. 견우직녀의 옛날이야기로 한국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베틀의 북 : 일반적으로 알려진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년에 한번 칠월칠석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붙어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견우에게 궁궐 생활은 따분했고, 놀기만 하던 견우에게 직녀가 슬슬 실망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런 견우에게 화가난 직녀가 베틀을 돌리다 창밖에서 놀고 있는 견우에게 화가 나서 베틀의 북을 집어던졌고 그것이 견우의 머리를 맞고 튕겨나간 것이 베틀의 북이란 별자리다. 견우별 옆의 돌고래 자리의 마름모꼴이 바로 그것이다.

선녀별 : 견우별의 또 다른 명칭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로 알려져 있다. 견우별 옆의 작은 두별이 선녀가 안고 하늘로 올라간 두 아이들이다. 나무꾼들이 눈물지으며 바라볼만한 별이다.

짚신할배와 할매 : 견우별과 바로 옆의 두별 , 직녀별과 바로 옆의 두 별이다. 이 두 별무리를 짚신을 짜는 다정한 할배와 할매의 모습으로 부른다.

닻별 : 일반적으로 카시오페이아로 알려진 별자리이다. " W " 의 모양에서 가운데를 위로 쭉 잡아당기면 영락없는 배의 닻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주로 언급되어지는 것은 무더운 여름날 한밤중 모깃불 피우고 바라보는 은하수길을 사이에 두고 환하게 반짝이는 그 별이 가장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여름의 밤하늘은 바로 은하수와 견우성, 직녀성의 잔치판이다. 우리의 옛이야기와 관련된 별자리 좀더 애정을 가지고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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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8-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틀의 북'에 얽힌 사연이 재밌네요. 견우는 직녀에게 완전히 잡혀 살았던 모양입니다^^

호밀밭 2004-08-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 이름도 잘 모르고 별과 관련된 추억도 없는 듯해요. 저는 제가 별 이름을 알아볼 생각은 안 하고 별 이야기를 들려 줄 목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나라 별들 이름도 예쁘네요. 알았던 별 이름보다 몰랐던 게 더 많아요. 나무꾼이 눈물 흘리며 바라보았을 선녀별 이야기는 참 슬프네요.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4-08-2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자리. 자꾸만 설 자리를 잃는 소중한 기억중 하나죠. 우리나라 별자리 관련 전설을 좀 알아봐야겠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는 더 정감이 가는것 같아요.
그리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기에 좋은곳 중의 하나가 진고개 넘어가는 길입니다. 차도 별로 안 다니는 길인데 전 가끔 지나가다 차 세우고 바라보곤 해요. 천체 망원경도 필요없고 신이 저에게 부여한 거리, 오직 시력으로만 바라봅니다. 그것이 더 넓게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진주 2004-08-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고개-
어릴적(중1?)에 읽었던 현진건의 작품 희생화에 진고개가 나왔다고 불현듯 생각나요.
그 진고개에 별이 쏟아진다니 괜히 반갑네요^^
아는 척 하고 갑니다^^;;;

미네르바 2004-08-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별이름이 참 곱고 예쁘네요. 저도 처음 '개밥바라기'라는 이름만 듣고는 야생화 이름인 줄 알았어요. 가을날, 진고개에서 바라보는 별들은 더 순수하고, 더 총총할 것 같고, 더 많이 반짝일 것 같아요. 이번에 진고개 가면서 너무나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어요. 님은 좋겠어요. 가끔씩이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으니^^

잉크냄새 2004-08-3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진고개 정상에서 찍은 사진 보았어요. 저도 이번주에 진고개를 넘어서 고향에 갔다왔는데 올 가을에는 밤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더 순수하고 더 반짝이고 더 총총한 별을 보러 가고 싶네요.

ceylontea 2004-08-3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예쁜 사진과 별 이야기... 추처언~~!! ^^

잉크냄새 2004-08-3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도 야생화와 같아서 애정을 가지고 오래 보아주어야 합니다.^^
 


이 영화를 본것은 91년도이다. 당시 인천 부평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를 조조할인시간에 들어가서 상영시간 224분의 대작을 무려 세번을 보고 나왔다. 두번째부터는 한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무언가에 흘린듯 보았다. 그때도 이 영화의 OST <존덴버의 테마>가 머릿속에 가득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도 머릿속은 온통 이 음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OST는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OST이다.

인디언을 다룬 영화는 몇편 있었다.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아파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라스트 모히칸> 그러나 그 영화속의 인디언은 전사였다. 그들은 목적의 정당성을 떠나서 일단은 도끼와 총을 둘러멘 전사였다.<늑대와 춤을>의 수우족들의 삶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는 아니었다.이 영화는 나름대로 인디언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던것 같다. 잔인한 전사나 무식한 야만인이 아닌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다. 인디언의 삶처럼 남북전쟁의 영웅 존 덴버 중위가 수우족 인디언 "늑대와 춤을"로 점차 동화되어 가는 순간 그 넓은 평원 어디에도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늑대와 춤을"만이 있을뿐...

케빈 코스트너는 이 영화를 본 이후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디가드> <JFK> <로빈훗>등의 영화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워터월드> <포스트맨>의 참패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특히  <3000마일>속의 그의 모습은 왠지 그의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진것 같아 아쉬웠다.

Dances with wolves, Kicking Bird, Wind in his head, Ten bears, Stand with a fist....문득 이런 류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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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2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디언들이 한 겨울에 백인들의 추격을 피하여 거주지 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을 보면서 서부의 역사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백인들의 인디언 침략사는 이런 영화를 낳았지만 인디언들의 서러운 패전사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 이지요.

stella.K 2004-08-2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본 것 같은데, 왜 기억이 없을까요? 음악 정말 좋으네요.^^

잉크냄새 2004-08-2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케빈 코스트너가 마지막 장면에서 파란여우님이 이야기한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백인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늑대와 춤을"이 수우족에게 구출되어 결국은 백인도 수우족도 아닌 곳으로 떠나는 것이 서로 동화되지 못하고 결국은 백인의 침략으로 마무리짓는 잔혹한 침략사를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미네르바 2004-08-2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영화 생각나요. 아주 오래 되었지만 그 분위기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인디언 얘기 나오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책이 생각나요. 인디언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 자연을 대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을 적시는 것 같아요. 저도 인디언식 이름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오늘 밤 멋진 이름 하나 더 지어야겠네요.^^

호밀밭 2004-08-2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늑대와 춤을 전 대한극장에서 보았어요. 그 당시에는 화면이 가장 큰 극장이었어요. 중간 고사 끝나던 날 친구들과 가서 보았던 생각이 나요. 보고 나서 마음이 참 막막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후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적이 없네요. 저도 이 음악 좋아해요.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CD를 사서 자주 듣고요. 음악, 화면 모두가 잘 조화된 영화였는데 그립네요.

잉크냄새 2004-08-2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버팔로가 달려갈때는 극장 전체가 떠날갈것 같았던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상영시간이 너무 길어 다시 보는 것이 쉽지는 않을것 같아요. 그래도 하루 날잡아서 봐도 그 감동은 여전할것 같네요.

icaru 2004-08-2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이 고등학교 2학년였죠...음...그랬어요... 애들이랑 "늑대와 춤을 이랑 주먹쥐고 일어서랑...둘이..야한 씬 하나 있어..." 그럼서..보러간다 어쩐다 그럼서..하하하...
그때...모여서 수다떨던 친구들....웅남이 순희 소란이 보연이...경애...효숙이... 그 그리운 이름들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잉크냄새 2004-08-2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늑대와 춤을과 주먹쥐고 일어서의 야한 씬...저도 그 장면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고 보았죠.^^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원규 지음 / 좋은생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시인은 참 많은 길을 걸었습니다. 강원도 황지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를 걷고, 지리산 아랫자락 850리를 도보순례하고, 백두대간 종주 1,500리 길을 걷고, 새만금 삼보일배 800리를 걸었습니다. 욕망의 무한질주가 아닌 사람의 걷는 속도로 천천히 걷는 길 위에서 걷는 목적마저도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 시인은 무릎을 치며 깨닫습니다. 기다림이란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가는 것을. 그 깨달음이 시인을 지리산 자락으로 데려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눕힐만큼의 공간,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 지리산을 닮은 이웃사람들, 저절로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자연.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더군요.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의 봄, 어름나무의 그늘속에서 보내는 여름, 낙엽을 쓸면서 바라보는 낙엽 하나하나의 손금에 얽힌 사연속의 가을, 지붕을 소복히 덮으며 고립무원의 절대고독을 선사하는 겨울, 그곳에 뿌리내린 그에게는 자연이 곧 삶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있는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시민의 삶이 그렇게 쉽게 그 자리를 옮길수는 없을겁니다. 가슴속에 무아지경의 도원경 하나 꿈꾸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뿌리를 들고 이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붙잡지요. 어쩌면 그 두려움이 삶을 이루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휴가철마다 꿈꾸어왔던 도원경으로 짧은 일탈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작은 미련이나 애증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삶의 모습을 가꾸어가지요. 그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요.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가치를 가꾸어가는 삶, 서로의 뿌리가 엉켜 잡아주고 서로의 그늘을 만들어가는 숲과 같은 삶, 전 그 삶 속에서 살기를 오히려 희망합니다.

그래도 올해 가을은 한번 걸어볼까 하고 꿈꾸어 봅니다.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를 따라 걸어간다면 하루 백리길, 해남의 땅끝 마을까지 단풍의 향연속에서 길을 걸을수 있을겁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길에서 만나는 들꽃의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하며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모자라면 미련이 남고 넘치면 애증이 남는 것이라면 딱 그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할까 합니다.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는 여행길을 동행한 나의 그림자속에 미련과 애증의 그림자 또한 품고 돌아오겠지만 나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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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8-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그 자리를 옮길수 없는 소시민의 삶" 이라 우린 여행에 더 목말라하는것 같네요.. 우리 국토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올해라서 이번 가을엔 저도 많이 걸어보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04-08-2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갈수도 있을텐데, 전 이렇게도 못 떠나는군요. 당장 정선에 언니가 살고 있는데도 못가니 말입니다. B형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떠도는 뭔가가 있다는데, 전 그런 점에선 B형이 아닌듯도 하네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잉크님 글은 참 정갈해요. 특히 오늘 글은 더더욱. 두분이나 추천을 받으셨는데 저도하고 가요.^^

미네르바 2004-08-2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여행동안 참 많이 걸어보았어요. 물론 들꽃을 찾아 떠나는 목적있는 발걸음이지만, 한없이 길을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은 사라지고 나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욕망들, 애증들 모두 벗어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참 정갈하게 쓰셨어요. 저도 단풍길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올 가을에는...

비로그인 2004-08-2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겸손하면서도 행간 행간, 말로는 다 풀어 내지 못한 자연과 삶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 나오는 책이죠? ^^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만큼, 욕심 없이 자연에 귀 기울이며 사심 없이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그리하야 길에서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길을 나서는 작가의 맘을 잘 대변해 주는 제목도 없을 듯 해요.
성큼 다가온 가을.. 님이 꿈꾸는 가을, 이루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잉크냄새 2004-08-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삶에 대한 겸손함과 감사함, 그런 가슴을 지닌 시인이 걸어간 길은 분명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삶이었을겁니다. 그런 시인에게 욕심없고 사심없는 삶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저에게는 아직 지금의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나 봅니다. 그래도 올해 가을은 단풍드는 숲으로 길을 나서고 싶네요.
 

학창시절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중 한곳이 다방이었다. 다방은 보통 2층에 위치했다. 좁고 경사가 급한 아두컴컴한 시멘트 계단을 따라 보이던 작은 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기전까지 그 앞을 지나며 흘낏 쳐다보던 그 길은 미지였고 선망이었고 동경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까지. 그 당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란 소설 제목을 떠올리면 정류장옆 2층의 <솔다방>으로 들어가던 그 어두컴컴하던 계단이 떠오르곤 했다.

1. 개구장이의 시절

국민학교 시절 콩알탄이 있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 건드려도 터지고 밟아도 터지고 던져도 터진다 ]는 글이 포장지에 적혀있었던것 같다. 다방으로 들어가는 그 계단 하나하나에 콩알탄을 두어발씩 놓아두고 누군가 밟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곤 했다.  짧은 비명과 뒤섞인 폭음소리에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며 달아나곤 했다. "요놈들~" 하고 소리치며 뽀족구두 소리를 "따닥따닥" 내며 따라오던 아가씨를 뒤로하고 우리는 학교로 혹은 집으로 달아나곤 했다. 누군가 한번 잡힌 적이 있는데 꿀밤 몇대와 더불어 풍선껌을 받았다. 잠시 나도 잡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도 잡힌적은 없었다. 아마도 고향에 두고온 막내동생을 떠올리고 화를 속으로 죽이며 가벼운 꿀밤 몇대와 풍선껌을 건네주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2. 학창 시절

나이를 좀더 먹으면서부터는 그런 장난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나가다 2층 창문을 흘낏 흘낏 처다보면 창문밖으로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아가씨들이 보이곤 했다. 그리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 학생들! 커피 한잔 하고 가!" 라고 웃으며 소리치곤 했다. "공짜로요?"라는 우리들의 목소리에 서로 그냥 웃을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먼산을 바라보곤 했다. 하교시간 교복을 입고 그들앞을 우루루 지나가던 우리를 자주 쳐다보곤 했다. 아마도 학업을 뒤로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그 곳에서 이제는 자신의 추억이 될수 없는 교복을 참 많이 원망도 하고 부러워도 했던것은 아닌가 싶다. 

3. 졸업후

대학을 들어간후 고향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바로 그 다방에서 약속을 한 적이 몇번 있다. 벽 한켠을 차지한 커다란 그림 몇점,  레코드 판에서 울려퍼지는 지나간 유행가 몇소절, 담배불 자국이 몇개씩 남아있는 소파, 작은 나무 탁자, 둥그런 통성냥, 군데군데 태워진 재떨이, 하얗고 야트마한 크림잔과 각설탕 몇개... 두근거리며 처음 들어간 그곳은 우리의 선망과 동경을 채우기에는 이미 너무 낡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차례 약속을 위해 들리고는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다.

4. 그리고 지금

그때 이후 다방을 간 기억은 없다. 일부러 피한것은 아니지만 다방을 약속장소로 잡거나 커피를 마시러 다닌 경험은 없다. 지금도 고향에 들러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도중 고향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언덕위의 천주교 성당, 6.25당시 지어진 수용소로 칭하여지던 판자집 동네의 골목길,  가장 오래된 하얀 등대, 갑판으로 얼음을 나르고 부수던 옛 얼음파쇄기, 국민학교 운동장에 자리한 백년이 넘은 향나무....그리고 정류장 한켠 2층에 자리한 <솔다방>. 어느새 고향의 한 귀퉁이를 자리한 곳이 되고 말았다. 간판도 창문위에 덧붙인 그림도 낡어버렸지만 기억속 고향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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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4-08-2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간 커피숖.......저는 고3 홍역같은 대입시험을 치룬 후 갔었지요. 그 때가 또 첫 미팅이었구요*^^*;; 처음간 터라 신기해서 친구들과 함께 그 커피숖 메뉴에 있는 커피를 종류대로 다 시켰던 기억이 나요.비엔나커피, 아이스커피,블루마운틴, 카푸치노...... 돌려가며 조금씩 맛 보며 마냥 들떴던 기분~ 지금 생각해도 설레네요^^

갈대 2004-08-2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 도시에서는 이제 찾기 힘든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 점차 사라지겠지요. 다방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다방아가씨입니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두 다리로 보자기에 싼 커피를 고정시킨 채 노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이요. 그네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잉크냄새 2004-08-2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숖, 다방....그 시절 왠지 모를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곳에 졸업후에는 특권이라도 부여받은 양 돌아다녔죠. 그러던 어느날인가 낡은 외투를 벗어던지듯 이제는 의미가 없어진 낡은 호기심과 환상을 벗어버리고 부쩍 커버렸죠.

김여흔 2004-08-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다방뿐만 아니라 장미다방도 있지요. ^^

파란여우 2004-08-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전다방도 있어요..^^ 술집은 안주싼 '인하의 집'이 최고였죠?^^

김여흔 2004-08-2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따라하지 마욧! ^^

호밀밭 2004-08-2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 이름은 참 단순한 것이 많아요. 솔다방도 그렇고 꽃다방도 본 적이 있어요. 다방에 아주 어릴 때에도 엄마와 간 적이 있었고, 놀러 가서도 춘천에서인가 다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다방에서 어항을 본 기억이 나네요. 저는 가끔 다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실내가 어떨지 궁금해서에요. 달력, 어항, 텔레비전, 커피잔 등 다방 특유의 느낌이 왠지 옛스러우면서도 관심이 가서요. 솔다방에 대한 추억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Laika 2004-08-2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방에 가본적이 있는지 애써 기억해보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아요...TV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란 동동 띄워준다는 차는 먹어보건 싶은데...^^

잉크냄새 2004-08-21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 출근길에 호박다방도 보여요.^^
호밀밭님의 글을 보니 저도 어항 생각이 나네요. 다방에서 절대 빠질수 없는 소품이죠. 라이카님이 드시는 커피는 아마 다방에는 없다죠.^^

미네르바 2004-08-2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이라는 말에는 촌스러움이 느껴지지만 거기에는 왠지 낭만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때 언니 따라 다방에 처음 가 보았지요. 그 곳에서 본 어항이 아직도 기억에 나네요. 다방 이름이 '초원다방'이었지?

겨울 2004-08-2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두어 번인가 가 본 다방에서 누군가 우유를 시켜줘서 마신 기억이. 맛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열심히 바라보았었죠. 다방하면 그립고 서글픈 느낌이 묻어나요. 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친 다방아가씨가 내가 알던 누군가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했을 때의 놀라움. 쫓아가 확인은 못했지만 쿵쿵 뛰는 가슴이라니.

잉크냄새 2004-08-2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립고 서글프고 왠지 낭만 한자락 남아있을것 같은 공간...그래서 고향 한켠에 남아있는 옛다방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게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통사론(統辭論)

- 박상천 -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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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직원이 올린 회의록을 보며 "결론이 뭔데?" 라고 묻곤 했지요. 각 팀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노력이 묻어있는 그 회의록의 결론이 뭔가 부족한듯하여 그렇게 묻곤 했지요. 보고서 문화에 어느덧 물들어버린 사고구조가 과정이 아닌 결론에 집착하게 만들어가나 봅니다.

인간시대와 같은 인간의 따스함에 관한 장면을 봅니다. 처음과 끝, 그들의 모습은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소녀가장의 모습은 그대로 소녀 가장이고 바보스러울만치 착한 그들은 계속 그렇게 비춰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모습은 그 모습속에 담긴 진실이 아닐까요. 어려워도 따스함과 순수함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그들 속에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어진 부사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삶이 세상살이 속에서 오롯이 솟아나는 시를 닮아가는 삶이 아닐런지요.

지금 아테네 올림픽의 양궁에서 윤미진 선수가 8강에서 탈락했더군요. 흔들리지 않으려는듯 쓴 검은 썬글라스 뒤로 작은 눈물 한방울 흘릴지도 모르겠네요. 성적이 아닌 숨이 턱턱 막히던 여름을 달려온 그녀의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열정을 바라봐주어야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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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8-1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는 말 기억하고 싶네요. 윤미진 선수가 떨어진 지 이제 시간이 좀 지났지만 다시 그 활을 잡았던 순간으로 가고 싶을 것 같아요. 우리 나라 선수들끼리의 금은 대결이기는 하지만 윤미진 선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아프네요.
시 속에 담긴 세상이 더 인간적이고, 올림픽 때 사람들은 더 애국자가 되고, 아침보다 밤에 더 세상이 또렷하게 보이는 듯해요.

Laika 2004-08-1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그런데, 올림픽에 관심이 없어서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올림픽때 조차 애국자가 되지 못하는 인간이군요...

icaru 2004-08-1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지요^^* 오늘....근...삼일만에 들어와봤는데...페이퍼 제목이 통사론이라...어인 통사론인가...하고...들어와 봤답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를 가진 시네요...우리삶의 통사론은 부사어라는...
저도 요즘...조금은....바로 이 부사.."지친듯"...일을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하네요...

그리고 윤미진이요...정말...아깝지요...어제는...몸이 안좋아서...모처럼 휴가를 내고...집에 있으면서....종일.....
사격에 양궁에...죄다 봤거든요....
침착하게 하는 모습...참...이뻤는데....

대만의 그 선수한테...졌던...예전 기억이...작용을 한듯.....아쉽고...안타깝고...하데요...

잉크냄새 2004-08-1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 이의 삶을 시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 속에 포함된 부사어구를 보게되는 이유인것 같아요.
시 속에 삶이 있는 건지, 삶 속에 시가 있는 건지.. 어느 세상이 더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복순이 언니님, "지친 듯"..이라는 부사어구는 이제 헐헐 떨쳐버리길 바랄께요.^^

미네르바 2004-08-2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미네르바의 말: 우리의 삶은 부사어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부사어를 사랑한다.

잉크냄새 2004-08-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사어를 사랑합니다. 아마 삶이 더 풍요로워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