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정주의 과오를 덮어주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삶을 들여다보면 그는 누추하고 비겁한 삶을 살았다. 그의 죄는 엄중히 따져 묻되 뛰어난 문재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 잘못된 개인의 역사나 개개인의 과오는 지우고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서정주의 삶을 평가하는 동시에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할 의무도 있다. 한국어의 소슬한 경지에 가닿은 그의 시들을 폐기하는 것으로 우리가 잃을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중략.....) 용서없이 그의 옹졸한 삶을 책망하며 끔찍하고 매혹적인 그의 시들을 마주하자는 것이다.-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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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노망이나 진중권의 열등감에 뒤틀린 변심을 접하고 '분서'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책을 가져다 버린 적이 있다. 침묵속에 책을 읽었던 독자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에 더 이상 읽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작가와 작품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한국말로 이루어진 그의 시를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심정이 이해는 가나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