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 김재진 -

문득 눈앞의 세월 다 지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수첩 속에 빽빽하던 이름들 하나같이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세파에 치어 각양각색인
남루 또한 지나간 상처 마냥 눈물겹고
서있는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이유없이 그냥 아름다울 때 있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을 감고 도는
한 자락 커피 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몸놀림이 아름다울 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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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알라덴 폐인의 병이 점점 심해지는 듯.... 문득.. 시인의 이름을 보니.. 수니나라님의 아들이 생각이 나네요... ^^

사람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좋은 시귀이네요... 가슴을 적시는...

호밀밭 2004-07-1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이 시를 매일경제인가요. 거기에서 보고 좋은 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네요. 서있는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이유없이 그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좋네요. 마음이 착해지면서도 여유로워지는 시에요. 아침과 자기 전에 같은 시를 읽을 수 있다니 더 좋네요.

Laika 2004-07-1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낮에 한번 읽은거라...지금 읽는거라 느낌이 다르네요...빗속을 뚫고 집에 돌아와 심한 카페인 기운에 읽으니 더 마음에 와 닿아요..^^

잉크냄새 2004-07-1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들켰네요. 저도 오늘 경제일보에서 읽은 시인데, 가슴에 와 닿길래 옮긴겁니다. 역시나 주인장님들은 예리하십니다요~~~

박가분아저씨 2004-07-1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보고 읽기만 할 뿐 답글을 못올려 미안한 맘으로 지내왔는데 오늘은 옛 지인의 반가운 시 한 편 읽고 갑니다.
김재진 시인은 대구 출신으로 대학에선 첼로를 전공했으며 저와는 더불어 한 때 진지했던 순간들도 있었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며 자유롭게(?)살기도 하죠. 한 때는 불교방송국의 음악담당 피디였다가...하지만 그 모든 사족을 떨치고도 아름다운 시 한 편 자아알~읽고 갑니다.

미네르바 2004-07-1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첩 속에 빽빽하던 이름들 하나같이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시의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저는 이 글귀가 가슴에 와 닿네요. 해마다 수첩을 새로 적으면서(전 아직까지 그렇게 수첩을 적는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은 지워지고, 어떤 사람은 새로 추가되기도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제 수첩에서 지워져간 사람들... 저 역시 누군가의 기억속에서(혹은 수첩 속에서) 지워졌겠지요.

잉크냄새 2004-07-1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가분님의 글 자체가 시적인 이유가 있었네요. 전 가끔 시인이 친구라면..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런 친구분이 있다는 것이 부럽네요. 저도 [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 라는 구절이 참 가슴에 와 닿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