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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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내적인 문제를 외적인 부분에서 찾고자 한다. 자기 가슴속에서 솟아나오는 길로 나아갈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좌절한다. 설령 다른 부분에서 가시적인 답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또 다시 자기 내면의 문제로 방향전환하는 문제의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자기 내면의 길로 나아가는 것 또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삶속으로 녹아드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자기성찰과 동반되는 고독과 방황의 오랜 시간속에서 쟁취되는 것이다.

싱클레어가 부모라는 안정된 세상속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불안한 세상으로의 첫 나아감은 프란츠 크리머를 통해서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내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존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느끼는 불안이 그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그런 시기에 그에게 모습을 드러낸 데미안은 때론 구원자의 모습으로 때론 유혹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결국 데미안은 그가 나아간 길에서 만나게 된 완성된 자기 내면의 길과 동일시되지만 기존의 삶의 틀을 벗어나려는 부분에서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그에 동반되는 안정된 틀에의 불안함에는 세상의 유혹자로 그려지고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날아가는 방향에 존재하는 신, [압락사스]는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선과 악, 카인과 아벨 등으로 묘사되는 우리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이중적인 모습의 상징이다. 그러나 [압락사스]는 이중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자아의 삶속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직면하게 되는 인정하고 받아들여 삶속으로 고스란히 녹여들여야할 사고의 한 단면이다.

싱클레어가 최초로 접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데미안을 만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또 다른 삶에 대한 열망과 현재의 안정된 삶으로의 복귀, 홀로 맞이하게 되는 처절한 방황과 고독의 시간, 그런 과정을 거친후 결국 바라보게 되는 자기 내면의 길. 자기 가슴속에 솟아나오는 길을 따라 사는 것이 그토록 처절하고 어려운 과정에 있음을 데미안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자기 내면의 길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말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은 기존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번역과는 다르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신이 그토록 추구하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에바부인을 사랑할때 그녀는 [당신에게 다가가지는 않겠습니다. 쟁취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새가 알을 깨는 행위, 새로운 세계로의 나아감은 당연한 수순처럼 지나게 되는 그런 과정은 아니다. 투쟁과 쟁취라는 표현처럼 현재의 자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버리고 미래의 자신을 받아들인 준비가 된 자에게만 그 길은 열리는 것이다. 이 구절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한 마리의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버릴 수 있을만큼 날기를 원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데미안>은 10대에 선생님의 권유로 한번, 20대에 먼지 폴폴나던 세로줄의 낡고 두꺼운 책으로 한번, 그리고 30대에 다시 집어들었다. 전쟁에서 부상한 싱클레어에게 가벼운 입맞춤으로 떠난 데미안과 그의 모습과 사상이 이제는 남이 아닌 내안의 완전한 그가 되었음을 말하는 마지막 장면처럼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데미안과 하나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 10대,20대,30대에 느끼는 데미안은 모습을 달리하며 내 속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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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장기에 읽었던 고전을 현재에 다시 읽는 일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 만큼이나...쉽지 않은 일이지요... 잉크 냄새 님은 내면 성찰을 끊임없이 하시는 듯 합니다...저도 예전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볼까...예적지부터..별렀는데...안되누만요....ㅋ

꼬마요정 2004-06-3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많아요... 하지만 선뜻 손이 안 가는 이유는 뭘까요...

잉크냄새 2004-07-0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깨고 나오는 알이 시지프스의 바위와 동일한 것인지도 모르죠. 알을 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알에 의해 겹겹히 쌓여있어서 항상 그렇게 보일뿐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