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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오만과 편견>에 대한 신문의 소개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어느 소년이 동네에서 친해진 친구를 어머니에게 소개하려고 했다. 어머니와 같이 친구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자전거를 탄 친구가 멀리서 보인다. 어머니의 저 흑인 아이가 친구니? 라고 묻는 물음에 소년이 아니! 저기 자전거 탄 아이야! 라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인간이 가진 편견에 대하여 말한 글이 있었다. 세상을 자신의 입장으로만 바라보고, 세상의 가치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타성에 젖어 스스로의 사고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상태 그것이 편견일 것이다.
1930년대 남부 알라배마주의 메이콤 군을 배경으로 한 하퍼 리 여사의 이 소설은 1930년대의 경제적 공황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남부 알라배마주라는 노예 제도의 잔재가 의식속에 박혀있는 공간적 배경속에서 자연스럽게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단순히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룬듯이 보이지만 스카웃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핀치 변호사의 딸을 통하여 편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소녀의 눈으로 인종차별보다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의 관점에서 부 래들리는 성장의 과정에 거치는 통과의례적인 인물이다. 스카웃의 눈에 부 래들리는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하나의 의미로 자리잡는다. 우리의 사춘기를 관통한 그런 의식의 순차적인 전환 그것이 부 래들리로 상징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스카웃이 그 동안 자신의 집에서만 바라보던 동네를 부 래들리의 집에서 바라보며 '나도 나이가 부쩍 든것 같다' 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으로 서게 된 소녀의 내면적 성숙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속에서 앵무새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남과 다르다는 세상의 편견속에 소외되고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상징이다. 부 래들리는 성장기의 상처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로 소외되고 고통받으며 톰 로빈슨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의 편견속에 목숨을 잃는다.
이 소설이 반세기 동안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켜온 것은 우리 사회속에 아직 앵무새 죽이기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고정관념,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의 부재, 지독한 타성에 젖은 사고가 존재하는 한 세상의 앵무새 죽이기는 서글프게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