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 한가지가 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혼자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아마 그때의 선생님들도 그 추억을 떠올리며 슬며시 웃음짓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1학년 스승의 날. 스승의 날 행사이후 선생님들은 체육대회를 하고 우리들은 교실에서 자습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 그리도 젊음을 유혹하는지 봄의 마지막을 흐느적 흐느적 걸어가고 있었다. 자습하던 도중 한 녀석이 칠판으로 걸어가 무엇인가를 끄적였다. < 우리에게도 체육대회를 > 장난삼아 쓴 그 글에 한명 두명 릴레이로 토를 달기 시작하면서 우리반에서 시작된 작은 반란은 학교 전체로 번져가고 있었다.  모두들 창문으로 달려가 주전자며 책상을 두드리며 <우리에게 자유를> < 우리도 운동하고 싶다> 등등을 외치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처음 우리를 진압하러 오신 분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신 꼬망딸레뷰 선생님 (불어선생님)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직감하신 여선생님이 칠판지우개, 플라스틱 컵등을 집어던지시는 것을 우리는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다 잡아내었고 급기야 여선생님이 울며 교실을 나가셨다. 어색한 분위기로 소강 상태를 보인 것도 잠시 우리들은 다시 창문에 매달려 외쳐대기 시작했다.

두번째의 진압대장으로 임명되신 분은 신숭생숭 선생님 (수학선생님)과 자세 선생님 (교련선생님)이었고, 무자비한(?) 진압에 한반 한반이  나가떨어졌다. 드디어 우리 반, 선생님들이 오기전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뜻을 관철시키자는 담합을 했건만, 평소의 수업시간에 길들여진 습성때문인지 고양이앞의 쥐처럼 조용해졌다. 그 순간 누군가 다시 <우리에게도 체육대회를>을 외쳤고 모두들 다시 책상을 두드리며 동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신나게(?) 얻어터진후 결국은 대가리 박기로 마무리되었다. 자세 선생님의 감시 아래 체육대회가 끝날때까지 대가리 박기를 하면서도 서로 쳐다보며 키득키득 되던 기억들. 

매년 스승의 날이면 떠오른다. 언젠가 선생님들과 자리를 마련하여 그때의 주동자들과 작은 반란을 다시 한번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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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망딸레뷰, 신숭생숭, 자세....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엔, 어쩌면 그리도 선생님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뽑아내어 별명도 잘 지어 불렀던지..^^ 그래서일까요..지난 선생님들의 성함은 가물가물해도 별명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잉크 냄새 님의 , 아니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보게하는, 따뜻한 글이네요.
아! 그리고 반드시, 작은 반란을 일으키실 그 날이 오길 바랍니다...^^

불량 2004-05-1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체로 야간 자율 학습 도망갔다가.. 호되게 당한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들도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한 학년 교실이 텅 비었으니..ㅋㅋ

미네르바 2004-05-15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너무 범생이었나? 그런 기억이 없으니?
즐거운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날이 되었군요.

잉크냄새 2004-05-1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그 당시의 선생님들의 별명은 가히 수준급이었죠. 나중에 별명에 대한 글 한번 써야겠네요.
야간 자율 학습의 기억은 모두가 비슷한 점이 많은것 같네요.

icaru 2004-05-1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별명들 한번 재밌네요....꼬망딸레뷰 샘..ㅋㅋ..

이 별명을 듣는데...저의 강아지 복순이가 생각나는 건 뭐죠...정말 동문서답이네요.. 복순이는 갓12개월이 지난 때부터 우리랑 살게 되었고...원 주인은 이민가신 친척 가족이에요.. 그 때는 당시 복순이 이름이..복순이가 아니고......불어로...모였다는데 기억이 안 나요... "꼬망딸레미나"였나 "카탈리나"였나....

아무튼..지금의 이름과는 냄새부터 달랐더랬는데.. 아...무신얘기야... 미안해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