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임희구-

흰눈이 팡 팡 팡 쏟아지는 밤
양철 깔대기에
능글능글한 돼지창자를 까뒤집어 놓고
썩은 똥찌꺼기를 훑어낸다
돼지똥을 만진다
라디오에선 주의 탄일을 축하 축하하고
고무통 속 찬물에 담긴 돼지창자에선
죽어 나자빠진 똥냄새기 퍼진다
모락모락 퍼진다
진동한다
손가락이 얼어터져
손가락이 똥이 될 것만 같다
찜통 속 펄 펄 펄 끓는 물이
똥 뺀 창자를 기다린다
얼어터지다 불속으로 들어가는
기가 막힌 돼지창자의
싯누런 똥냄새 울려퍼지는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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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십이 넘은 시인은 곱창을 먹을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시인에게 곱창이 돼지똥내라면 나에게 창란은 창자속내인것 같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겨울밤길, 명태덕장 한쪽 구석 장작불 옆 어머니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쭈빗쭈빗 몇번을 망설이다 들어가 밤늦도록 명태상덕을 하거나, 코다리를 하거나, 명태배를 가르거나, 창란속 창자를 후벼빼곤 하였다. 명태 비린내는 익숙하기도 했거니와 그 당시 친구들 모두의 냄새였기에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유독 창란 창자의 냄새는 나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냄새라는 자의식이 들곤했다. 수업시간, 손톱밑이나 소매끝, 바지가랭이 한쪽 끝에서 비누냄새를 기어코 뚫고 올라오던 창자 냄새는 때론 창피했고 때론 서글펐다. 그 냄새가 괜시리 서글픈 날도 어머니 옆으로 훌쩍 뛰어가 다시 명태와 창자를 후빈 것은 냄새가 주는 수치심보다는 어머니와 부끄러운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시인, 당신 곱창을 먹는지요. 전 요즘 창란을 잘 먹습니다. 십년을 넘게 코끝을, 입속을 떠돌던 냄새였지만 지금은 을메나 맛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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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4-0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주문진 명태를 누가 줘서 손질하다가 당신 생각이 잠시 났어요.
난, 곱창도 잘 먹고, 순대도 잘 먹고, 창란젖도 잘 먹어요.
하지만 여전히 홍합은 맨 목구멍으로는 잘 못먹겠더라고...
그렇게 가는거지 뭐.

춤추는인생. 2008-04-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경필대회던가요? 서글펐던 꼬마아이가 언덕위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그냥 말없이 돌아섰다는... 그꼬마는 잘 지내는지, 안부전해주세요^^

전 명태아주 좋아해요. 전으로도 잘먹고 조려주면 그것도 맛있게 잘먹어요. 뿐만이던가요. 창란젖도 잘 먹고. 명란젖도 잘 먹고. 오징어도 잘먹어요^^
서정적인 페이퍼에 먹는이야기만 잔뜩하고 가서 죄송해요(실은 방금집에 들어왔는데, 뭘 더 챙겨먹을까 고민하던차에 안먹기로 했는데, 요거쓰고
냉장고문을 열어볼 작정이예요^^)

하얀마녀 2008-04-0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 뜬금없이 돼지족발이 먹고 싶은 건지...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 한 번 먹어줘야 할까봐요.

잉크냄새 2008-04-0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여우님께는 홍합이었군요. 명태를 가르다 생각난 것이 저라니, 영광이네요. 언제 창란젖 한통 보내드릴께요. 아, 그리고 곱창은 독쟁이에서 언제 한번 같이 드시죠.^^

춤인생님 / 그 꼬마를 다시 보려고 페이퍼를 뒤적였는데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옛추억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고 그냥 지금의 저에게 안부를 전해주었답니다. 창란,명란,명태젖을 드셨으면 동해안 명물 젖갈을 다 드셨군요.
혹시, 냉장고에 고등어가 보여서 구워드신건 아닌지...

마녀님 / 그럼 혹시 마녀님은 돼지 발톱을 다듬던 기억을 넘어, 이제 족발계의 신화가 된것은 아닌지요.

파란여우 2008-04-02 20:14   좋아요 0 | URL
독쟁이는 쓰레빠 질질 끌고 걸어 나가는 동넵니다.
곱창모임 좋죠. 인경호에서 막걸리도 한잔 캬아~

잉크냄새 2008-04-03 12:43   좋아요 0 | URL
독쟁이 곱창이 갑자기 아른아른 거리기 시작하네요.
요즘도 학생들이 인경호에서 막걸리 마실까요? 부랑아처럼 떠돌던 학생때 참 잘 마시고 잘 자고 그러던 곳인데,,,ㅎㅎ

가시장미 2008-04-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회사에서 계속 달달한 것들을 먹었더니, 이 글 보는 순간 양념곱창이 확~ 땡기는데요. ㅋㅋㅋ 곱창이랑 막창을 먹을 때 즐겨가는 곳이 있는데..내일 친구들을 만나서 그곳에 갈까해요. 잉크님 덕분에 오랜만에 쇠주에 곱창을~!! ㅋㅋ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 한동안 감기도 앓았고, 날씨고 꾸물꾸물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오늘은 좀 기분이 좋아요.

잉크님도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시죠? 으흐 (지가 기분이 좋으면 남도 좋을거라 생각하는 단순한 가시장미ㅋㅋ)

잉크냄새 2008-04-03 18:35   좋아요 0 | URL
이거 독쟁이 곱창파가 결성될것 같은 조짐이 보이네요.
여성분들이 은근히 곱창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털짱 2008-04-0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재에 들어오니 갑자기 속이 쓰릴 만큼 곱창이 먹고 싶어지는군요.^^

잉크냄새 2008-04-11 15:14   좋아요 0 | URL
털짱님, 뜨끈한 곱창전골 드시면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나실듯 싶네요.

털짱 2008-05-1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라 바람나신 것을 이해합니다. 다들 그러니까요.^^

파란여우 2008-06-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른대로 불어봐요! 곱창 먹으면서 누구하고 눈 맞았다해도 서재가 이게 뭡니까.

잉크냄새 2008-07-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털짱님,파란여우님 / 이렇게 안부물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