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덩이가 넓은 나라를 여행하는 하나의 묘미는 야간 버스에 구겨져 밤을 보내는 일이다. 땅이 넓다 보니 야간 버스가 나라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잘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 숙박비 절약에 이국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야간 버스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 차장이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처럼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밤새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졸다 깨어나면 밤새 지켜보고 있다 달려왔는지 바로 눈앞에서 멋드러진 콧수염 아래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소 과장된 큰 미소를 지으며 쟁반에 담긴 과자류와 달짝지근한 홍차를 권한다. 홍차를 다 마시면 손을 펼치게 하고 손바닥에 레몬수를 분무기로 가볍게 뿌려준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결에 맡던 레몬향은 얼마나 상큼하던지. 잠의 요정이 아직 떠나지 못한 자리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레몬향은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갈라타 타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가는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였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불 끄고 잠 든 도심과 달리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버스 뒷편의 넓은 공간은 듬성듬성 놓인 드럼통에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로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허리를 들썩이며 위아래로 파도타기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마를 탄 몇몇 청년들은 국기를 흔들며 분위기가 애국가인 듯한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흡사 소요 사태가 발생한 듯 싶어 몸을 구부리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커튼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다. 어리둥절한 소란은 버스 차장이 출발 시간을 알리며 독촉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청년들이 하나 둘 버스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다소 떨어져 지켜보던 히잡을 둘러 쓴 중년의 여성들이 버스 주위로 서둘러 모여들었다. 청년들과 가볍게 포옹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녀들은 다시 창 주위로 몰려와 창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며 차창 속 청년들을 다시 애타게 바라봤다. 아, 저 눈빛, 낯설지 않다 싶었다. 어머니의 눈빛, 자식을 군대로 떠나 보내던 그 눈빛을 이 곳 타국에서 다시 마주치다니. 참 환송회 한 번 거창하다 싶던 마음이 그 마주침에는 다소 울컥하였다.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의 눈물은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터질 듯 했다.


<블루 모스크>


입영 전야를 거창하게 보낸 청년들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선 것은 이스탄불을 막 벗어난 어느 벌판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십여 명의 청년들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들을 따라 오르니 중간 즈음에 일렬횡대로 도열하여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결에 그들 옆에 일렬횡대로 줄을 맞춰 노상방뇨를 하였다. 바지춤을 올리다 왠지 묘한 느낌에 옆을 보니 일렬횡대를 삐죽이 빠져 나온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얼른 언덕을 내려오니 몇몇 청년이 따라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 다소 흥분한 듯 했다. 튀르키예어로 침 튀기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 있으니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었다. 말인 즉 "왜 남의 나라에서 노상방뇨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니들 따라 한건데...." 라는 논리정연한 반론에도 몇몇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앞으로 쏴!를 한거라고..." 음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신성한 의례에, 신성한 땅에 오줌을 갈겼으니 화가 날만 하겠다 싶었다.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니들 따라 한건데...."라는 막강한 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스트레스에 묘한 애국심이 들러붙은 상황이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묘하게 이어지던 대치 상황은 나의 어설픈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다. "I was a soldier, too(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여행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이 딱 이만큼이다)" 뭔가 어색한 영어로 군인이라는 동질감에 호소하고자 특히 "too"에 침 튀기며 방점을 찍었다. 다소 당황한 그들을 뒤로 하고 냉큼 버스에 오르니 통역이 다시 통역해주는 듯 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하고 있으니 soldier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훈련병의 입장이랄까. 새벽 한기만큼 낯선 군대라는 두려움을 경험한 이에 대한 경외일까. 역시 입장의 동질감은 어떤 분쟁도 막을 내리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와 막 군인이 될 청년들을 태운 버스는 다시 밤을 달려 여명이 밝을 때쯤 목적지인 샤프란볼루에 도착했다. 나 혼자 내리는 걸 보니 저들의 목적지는 아직 더 새벽을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내리며 곤히 잠든 그들의 영혼에 무훈을 빌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뺑이 까라~~~.'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가 투르크 전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었으리라


<아야소피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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