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성에서 윈난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꽃이름을 도시명으로 가진 판쯔화攀枝花라는 곳을 거쳐 윈난 리장丽江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험난한 중국 내륙 지형이지만 청두成都-판쯔화 攀枝花사이 기차가 놓여 있어 가장 무난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또 하나의 길은 가장 유명한 길이자 인내와 고난의 길이기도 한 차마고도를 지나는 길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 리탕理塘을 거쳐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넘어가는 버스로만 서른 시간 넘게 걸리는 쉽지 않은 여행길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 하나가 더 있다. 쓰촨과 윈난 중간에 형성된 둘레가 50 킬로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 루구후泸沽湖를 지나는 길이다. 루구후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여 그다지 이용되지 않는 길이었다. 판쯔화를 거치는 너무 상투적인 길에 대한 거부감과 언젠가 라싸로 넘어가는 길로 남겨 두고픈 기대감에 두 길을 제외하고 루구후를 거치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청두에서 기차로 8시간, 그리고 다시 시골 버스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초입에는 자연목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커다란 대문 중간쯤에 '루구후'가 어설프게 양각 처리되어 있었다. 초입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천하, 남성천당' 이란 표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을에서 호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온 곳에 위치한 어느 전통가옥에 숙소를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행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늦은 밤 어느 집 마당에 동네 여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걸터 앉아 한참을 구경하는데 왠지 남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었고 여인들만의 춤판에 홀로 있기 어색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젊은 사내가 운영하는 술집에 머무르니 주인장이 루구후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루구후는 모쒀족이 자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 56개 소수민족중 유일하게 모계 사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그 표어의 의미는 모계 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의미로 쓰여진 듯 했다. 


모쒀족摩梭族은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어머니를 가장으로 하여 가족이 형성된다. 부부는 연을 맺기는 하나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다. 남자는 여인의 집으로 와서 밤을 지새고 아침이 오기 전 떠나간다. 특별한 혼례의 절차가 없다. 마음이 맞으면 남자가 담을 넘어 여자의 방문을 두드리고 여자가 문을 열어 받아들이면 암묵적인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결혼의 형태를 주혼走婚이라고 한다. 결혼의 구속력이 없으니 이혼의 강제력도 없다. 여인은 마음이 떠나면 남자의 가방을 창가에 걸어 놓으며 남자는 이를 인연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돌아선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에 같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 부부금실이 좋으면 모두 같은 아버지를 두게 되지만 금실이 별로면 모두 다른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고 장성한 딸들이 다시 독립하여 또 다른 모계를 이루게 된다. 외삼촌들은 어머니를 이어 장녀가 부양하게 된다. 모쒀족 여인 '양 얼처 나무'의 책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보면 부정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그리움과 눈물겨운 애정을 표현한 것과 달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냥 핏줄에 대한 긍정 외에는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호칭이 없는 듯 그냥 이름만을 건조하게 적을 뿐이었다. 모든 경제 생활이 어머니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남자들은 산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집 건축 수리 등 일부 일에만 관여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주로 차마고도를 따라 마방의 삶을 이어갔다.


모쒀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 작지만 그들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에 대하여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태곳적 하늘이 열리고 신들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일렬로 세워 생명을 부여할 때 개 뒤에 인간이 있었다. 개가 60년의 수명을 얻게 되고 인간이 15년의 수명을 얻게 되었는데 개가 슬퍼하는 인간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지금의 수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춘절에는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여 개에게 인간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음식을 대접하는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있다. 그래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으면 방문을 박차고 나가 돼지나 닭에게 대신 욕을 한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가축에게 "인간 같은 놈"이 최악의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개에게는 욕하지 않는다. 


루구후는 아침 햇살이 특히 인상깊었다. 아침부터 뭔가 저녁처럼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첩첩이 둘러싼 산을 넘어 여명보다 훨씬 늦게 호수에 도착한 햇살이 갈대 여기저기서 조금씩 비집고 들고서야 고즈넉함은 사라져갔다. 뱃사공들도 모두가 여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키보다 훨씬 큰 삿대를 둘러 매고 석양을 거니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다.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는 그녀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은 한낱 나그네의 객창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대숲 사이 사이를 삿대를 저으며 나아가는 그들의 나룻배를 빌려 한나절 호수를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 호수가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저기 아래로 두 대의 나룻배 사이 커다란 목재를 걸친 배가 지나다닌다. 그들 또한 여인들일까. 그들의 거친 생존력이 아직껏 모계 사회을 이어가는 원천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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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8-07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루구후의 여인들은 조선의 여인들처럼 남존여비를 겪으며 살지 않았을듯 하여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모쒀족의 풍습은 처용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처용가를 통해 신라도 어쩌면
폴리가미(polygamy)의 사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하거든요.

어쨋든 루구후의 남녀 문화가 조선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요.
여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는 다는 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음... 사진 잘 찍으시네요~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잉크냄새님.
좋은 하루 되시구요~


잉크냄새 2026-08-07 21:26   좋아요 1 | URL
모쒀족은 폴리가미라기에는 관계 정리에 철저해 보입니다. 여성은 가방을 걸어둠으로써 상대와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버립니다. 남자 또한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 듯 합니다. 오랜 전통이 본성마저 바꿔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사진은..... 하나 잘 얻어 걸렸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