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아가씨 - 근현대 여성 공간의 탄생
김미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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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우연찮게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된 '명동 이야기'를 관람하면서 새삼 한동안 빠져 지냈던 <명동백작>이 떠올랐다. 2004년 EBS에서 방영된 <명동백작>은 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를 비롯해 박인환, 김수영, 전혜린 등등 당시 명동에서 교류하던 문인들의 이야기였는데, 당시 꼬꼬마 국문학도였던 나는 <명동백작> 덕분에 한국현대문학에 관심이 생겨 이 책 저 책 뒤적여보기도 했었다. 전시회를 본 뒤 <명동백작>이나 다시보기로 볼까 하다가 여느 때처럼 밍기적거리다가 잊어버렸는데, 얼마 전 명동에 대한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바로 <명동 아가씨>. '명동'이라는 키워드에 쇼윈도를 바라보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라는 서두처럼 이 책은 <명동백작>과는 다른 관점에서 명동을 바라본다. <명동백작>에서의 명동은 다방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공간이었다면 <명동 아가씨>에서의 명동은 양장점, 미장원 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소비공간이었다. 저자는 당시 명동을 기반으로 생활한 이들의 구술 채록과 신문, 잡지 자료 등을 통해 명동이 "여성들에게 소비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이었음을 드러내고 나아가 명동을 매개로 "한국의 소비문화사를 이해하는 단초"(14쪽)를 제공한다. 


  명동이 소비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남산골 진고개에 공사관을 세우고 이 일대를 독점적인 거류지로 정한다. 이후 이곳에 통감부,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며 이 일대는 "일본과 서양에서 들어온 낯설고 신기한 외래문화의 집합지"이자 "일종의 기호품이자 취미와 유행이 반영된 소비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환락과 허영의 거리"로 거듭난다. 심지어 신문기사에서 "빠리의 번화가 샹제리제 거리, 뉴욕의 5번가, 동경의 긴자 한다면 서울은 명동 거리"라고 소개할 만큼 명동은 일제시대 이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이 유행의 공간 명동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생활한 것일까? 백화점을 비롯해, 100곳이 넘는 양장점과 미용실이 명동에 있었다. 하지만 명동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에 양장과 미용을 비롯해 타이핑, 편물, 기계자수 등 여성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고등기술학교가 자리해 "전후 여성들이 기술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하거나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다방, 제과점, 식당 등에서는 친구나 애인과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었고, 극장 등에서 문화도 향유했다. 요컨대 명동은 점차적으로 여성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공간이자,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장소이자 자신의 세계를 정립해가고 자립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해갔다. 


  하나의 공간 속에서 근대 여성의 이미지가 정립되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역시 그 당시의 기록이다. 특히 여성들의 거리 패션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여학생의 모습으로 걸음걸이가 낙제"라는 둥, "완전히 품위를 잊어버린 옷이다. 지나칠 정도의 노출도 자기의 체격을 봐서 해야 할 텐데, 이 옷의 노출은 체격의 결점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식으로 거침없이 날리는 독설에 나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이런 기사 외에도 당시 명동을 경험한 이들의 녹취도 옛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선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불과 백 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나 급변해버린 명동의 과거 모습을 살피는 것도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새삼스러웠다. 다만 논문을 토대로 단행본 체제에 맞게 새롭게 작업한 책이라 그런지 조금 쉽게 풀어 쓴 논문을 읽는 듯 딱딱한 부분이 있었고, 수록된 몇몇 사진의 망점이 심하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다소간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 나아가 한국이라는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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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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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선정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스터리로 꼽히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런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기껏 해야 일본어 중역판이나 요약본 정도가 나왔던 터라 '유명한 작품이라니 읽기는 읽는데 이거 어쩐지 손에 안 붙는데…' 하며 내가 작품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것인지 원래 그냥 그런 작품인 건지 영 헷갈렸었다. 그러던 차에 엘릭시르에서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를 론칭하면서 『환상의 여인』을 새롭게 번역해 선보여 이번에는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구나 기대를 안고 다시 읽었다. 엘릭시르판 『환상의 여인』을 읽기 전만 해도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환상의 여인』 하면 '오렌지색 모자'만 떠올랐을 뿐 딱히 어떤 인상이 남지 않았고, 수작이라는데 왜 그런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새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어느샌가 점점 이야기에 몰입해 '그 여자'를 찾기 위한 피 말리는 조사에 합류하게 됐다.  


  『환상의 여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내와 다툰 스콧 헨더슨이란 남자가 무작정 거리로 나와 아내에게 홧김에 얘기한 것처럼  바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아내와 예약해둔 데이트 코스를 즐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고, 그는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저녁시간을 함께 보낸 여자뿐. 하지만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심지어는 신체적 특징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녀가 쓴 오렌지색 모자만이 떠오를 뿐이다. 경찰과 변호사 등은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나 그를 봤다는 사람들은 있으나 그와 그녀가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증언은 나오지 않는다. 아내를 살해했다는 무고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을 선도받은 스콧 헨더슨. 그는 담당 형사의 조언을 듣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절친에게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생사가 오직 한 여자의 손에 걸려 있는 상황. 하지만 헨더슨의 절친 존 롬바드와 헨더슨의 애인 캐럴 리치먼이 '환상의 여인'의 흔적을 더듬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결정적 증언을 해줄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잇달아 일어나는 사건은 살인일까 단순한 사고일까? 사형 집행 전까지 과연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자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환상의 여인』은 본격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많이 허술하다. 그래도 몇 시간이나 함께 있었던 여자에 대해 오렌지색 모자를 썼다는 사실 말고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야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주요 증인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것이나 사형선고 받아놓고 한참 손놓고 있다가 날짜가 임박해져서야 해외에 파견근무 나간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도 '읭?!'스럽다. 하지만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환상의 여인』은 매력적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허점 때문에 매력적인 건지도 모른다. '환상'의 여인이라는 제목답게 어딘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여자의 존재도 그렇지만 주인공 헨더슨도 도무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사는 인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 사랑에 대한 환영을 쫓을 뿐 도무지 현실감각이 없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답답한 인물인데, 그 점이 이 책에서는 되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현실감이 있는 것은 헨더슨의 죽은 아내의 웃음 소리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건 자체도,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도 이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긴가 싶지만 그러면서도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고, 어느샌가 이야기에 빠져버린다. "초심자를 위한 추리소설 No.1"이라는 띠지문구처럼 『환상의 여인』은 단순한 '누가 범인인가'라는 데 초점을 맞추는 소설이 아니라 사랑, 질투, 배신 같은 통속드라마 같은 내용에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라 누가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반전이 주는 충격은 없지만 그 분위기와 매력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한 책. 세계3대 미스터리라는 과장된 수식어가 아니어도 한번쯤 읽어봄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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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절판


피아노 연주를 계속한다는 건 글렌보다 더 잘해야 된다는 걸 의미했는데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난 피아노를 포기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4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난 스스로에게 말했다, 피아노는 이제 그만. 그러고는 더 이상 악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12쪽

글렌은 베르트하이머를 친애하는 몰락자라는 말로 맞이했다. 북미인답게 냉정했던 그는 베르트하이머를 늘 몰락하는 자라고 불렀고 나한테는 아주 무미건조하게 철학자라고만 했는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베르트하이머는 늘 몰락의 와중에 있었는가 하면, 나는 철학자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글렌의 눈에는 우리가 몰락하는 자와 철학자로 보였을 거야, 난 여관에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19쪽

모차르테움은 형편없는 학교지만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줬다는 점에서는 가장 좋은 학교였어, 여관에 들어서면서 난 생각했다. 대학이란 무조건 나쁜 곳이긴 하지만 우리의 눈을 열어주지 못하는 학교는 가장 나쁜 학교다. 얼마나 형편없는 선생들을 겪어내야 하며 그들은 또 우리 머리를 얼마나 망쳐놓았는가. 그들은 하나같이 예술을 쫓아내는 자들이었고 예술 파괴자이며 정신의 살해자, 대학생들을 파멸시키는 자들이었다. 호로비츠는 예외였고 마르케비치와 베그도 예외였어, 난 생각했다. 하지만 호로비츠 한 사람이 일류 아카데미를 만드는 건 아니다. -20~1쪽

글렌은 몰락하는 자라는 말이나 개념을 아주 좋아했는데, 지그문트 하프너 골목 거리에서 글렌이 그 말을 만들어내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 눈에는 병신밖에 안 보여, 라고 언젠가 글렌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전부 병신이야, 병신 아닌 사람이 없어, 오래 바라볼수록 더 병신으로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그 사람이 얼마나 병신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세상은 병신투성이야, 거리에 나가면 병신들만 만나게 된다고, 집에 누구를 초대하면 병신을 맞이하는 셈이야, 라던 글렌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비슷한 것을 여러 번 눈치챘기 때문에 글렌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베르트하이머와 글렌과 나, 우리 모두가 병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 예술주의라니! 이런 생각을 했다. 맙소사, 얼마나 미친 짓이야!-34쪽

베르트하이머처럼 자기 친척을 지독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묘사만으로 깔아뭉갤 줄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까지 증오했던 그는 자신이 불행한 건 그들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자기가 살아야 하는 건 순전히 가족의 잘못이라고 끊임없이 책망했으며, 가족이 자신을 이처럼 끔찍한 실존이라는 기계 속으로 던져넣고 완전히 망가진 모습으로 다시 기계에서 나오기를 바란다는 거였다. 저항은 소용없어, 라고 그는 늘 말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실존기계 속으로 던져 넣으면 아버지가 아이를 부지런히 토막 내는 그 기계를 평생 가동시켜온 것이라 했다. 부모들은 자기네가 바로 불행이고 그 불행을 자식에게 대물림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면서도 아이를 잔인하게 실존기계 속에 던져 넣지, 라던 베르트하이머의 말을 생각하며 여관 식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45쪽

자살을 못 한 이유는 끊임없는 내 호기심 때문이야, 라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부친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친은 우리를 세상 속에 내던졌기 때문에, 그리고 여동생은 우리가 겪는 불행의 산증인이기 때문에 용서 못 하는 거야. 존재한다는 건 돌려 말하면 이런 거잖아, 우리는 절망한다, 베르트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을 뜨면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앞으로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자려고 누우면 죽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소원밖에 없는데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된 지 벌써 50년이 됐어, 라고 베르트하이머는 말했다. 50년 동안 오직 죽기만을 바랐지만 아직도 살아 있고, 그걸 어떻게든 바꿔볼 수 없는 건 순전히 우리에게 철두철미한 일관성이 없어서라고 생각해보면 말이야, 라고 베르트하이머는 말했다. 그건 우리가 비참함과 비열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야, 라고 그는 말했다. 음악에 재능이 없어서야! 사는 데 소질이 없어서라구! 그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살 능력조차 없으면서, 살아 있을 능력조차 안 되면서 거만이나 떨면서 음악 공부를 하다니! -49쪽

우리는 누군가를 친구라고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잖아, 우리에게는 아무도 없어, 사실이 그렇다고, 라고 그는 말했다. -49~50쪽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공부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난 생각했다. 오로지 생각만 하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세계를 관조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 난 생각했다. -52쪽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베르트하이머가 곧잘 하던 말이다. 친구가 죽으면 우리는 그 친구가 잘 쓰던 표현이나 발언으로 그를 못 박고 친구가 즐겨 사용했던 무기로 그 친구를 죽인다. 살아 있을 때 우리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건넸던 말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친구가 한 말로 그 친구를 죽일 수도 있다. 친구가 했던 말이나 기록과 관련해서 우리는 (그 친구에 대해서!) 아주 가차 없이 굴지, 그리고 만약 기록이 없다면, 그러니까 친구가 예방 조치로 기록을 미리 없애버려서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친구가 했던 말로 그를 파멸시키지, 난 생각했다. -56쪽

베르트하이머는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끌렸는데, 그 사람들에게 끌렸다기보다는 그들의 불행에 이끌렸던 셈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행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는 불행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한테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바로 불행이야, 그 반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야, 라고 베르트하이머가 곧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살아 있는 동안 불행은 지속되고 죽음만이 그걸 그치게 할 수 있어,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불행하다는 얘기는 아니야, 행복도 불행을 전제로 하니까, 불행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야만 행복할 수 있잖아,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65쪽

사람은 그 누가 됐든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난 끊임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남았다. 베르트하이머한테는 그런 정신적 지주가 없었다. 즉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바라볼 생각조차 못 했던 건 그런 조건을 조금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야,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하며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은 유례가 없는 최고의 예술작품이야, 라고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글렌 굴드이기를 원했거나 구스타프 말러나 모차르트 혹은 다른 친구들이기를 원했던 거야, 난 생각했다. 그게 베르트하이머를 계속해서 불행하게 만들었어, 꼭 천재여야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도, 자기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는 언제나 모방자였어, 자기보다 여건이 유리하다 싶은 사람만 보면 무조건 따라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기본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꼭 예술가이길 바랐기 때문에 재앙을 자초한 거야, 난 생각했다. 그의 불안,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걷고 또 걷고, 뛰고 또 뛰었던 것도 전부 그 때문이야, 난 생각했다. -92쪽

글렌은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불행한 사람이고, 라고 그는 곧잘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베르트하이머가 불행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글렌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대꾸했다. 이런저런 사람이 불행하다는 말은 항상 맞는 말이지만, 이런저런 사람이 행복하다는 건 절대 맞는 말이 아니야, 난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트하이머의 눈에는 글렌 굴드가 항상 행복한 인간으로 보였고 나도 그렇게 보였다는 건 그에게서 여러 차례 들어 알고 있지, 난 생각했다. 자기를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던 베르트하이머는 늘 나보고 행복하겠다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베르트하이머는 불행하기 위해, 자기가 말하는 그런 불행한 사람이 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고 난 생각했다. -99쪽

우리는 머리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상대하며 자기 입장에서만 그들을 대하지, 난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 입장에서만 그들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 거야, 사람들을 대할 때, 아무런 선입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못하지, 난 생각했다. -127쪽

사람은 신경 쓰이는 일을 잠깐 피해보겠다고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등 부당하게 행동하지, 불편한 대면을 피하겠다고 말이야, 난 생각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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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ㅣ 그림책이 참 좋아 7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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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와 함께 한 장수탕 나들이. 선녀 할머니도, 덕지도 너무 귀여워요.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 깔깔대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라 아쉬웠어요. 언제 만나도 좋은 백희나표 그림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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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아가씨 - 근현대 여성 공간의 탄생
김미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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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 -7쪽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여성의 소비 공간인 양장점과 미장원이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노동 공간이자 배움의 공간이었음을 알았다. 또한 다양한 여성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들의 일상을 접할 수 있는 창구임을 깨달았다. 일련의 작업은 내게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열어주었다.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소비문화가 해방 이후에 연속되거나 단절되는 '변화성'을 주목해야 하며, 특히 이것을 식민지 근대 도시의 '공간성'과 관계 지으며 조망할 때 한국의 근대성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구술사 방법론을 통해 식민지 주선의 중심지였던 본정이 한국전쟁 이후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명동으로 바뀌는 과정과 그 결과의 의미를 논의한 배경은 여기에 있다. -10~11쪽

명동은 식민지 시기 일본인에 의해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무대로 등장하였다.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남산 기슭이었다. 이 일대는 원래 '남촌'이라 불렸는데, 가난한 양반이나 하급 관료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인들은 남산골 진고개에 일본 공사관을 세우고 이 일대를 독점적인 거류지로 정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진고개 일대를 일본 또는 본국을 의미하는 본정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이곳에 통감부를 세웠는데, 조선이 강점당한 이후 이름이 조선총독부로 바뀌어 1926년까지 있었다. 일본은 서울역과 가깝고 조선 정치의 중심지인 경복궁과 마주한 본정통과 그 일대를 거점으로 새로운 상권을 개발하고 조선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39쪽

빠리의 번화가 샹제리제 거리, 뉴욕의 5번가, 동경의 긴자 한다면 서울은 명동 거리. 서울에서 으뜸가는 번화가인 명동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로운 지대이기도 하다. (…) 이 땅의 냉한지대와는 아랑곳없이 명동의 하루는 낮이면은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온갖 사치와 유행과 오락과 술과 여자로 그칠 사이 없는 소란 속에 그래도 한국 최고의 호사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오백 환, 천 환짜리 지폐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마구 난무하는 곳, 명동 거리. 넓이 약 2평방키로의 이 유흥 지대는 어느 일면으론 바로 서울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60쪽

명동에 즐비하게 차려놓은 양품점, 양복점, 양장점은 도합 50개소가 넘으며, 모두가 최신의 첨단을 걷는 것으로 자처하여 이 점으로 해서 일반 상점의 그것보다 약 이 할 이상이 비싼 것도 특징. 하긴 대지 한 평에 이십만 환서부터 삼십만 환이니 우리나라 판도 안에서 가장 비싼 땅이 바로 명동 일대. -61쪽

'명동 족속'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간에 겉보기에 일목요연하다. 최신, 최고…… 무엇이든 이 두 가지 요건이 구비된 것만을 몸에 붙이고 또 가까이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신조인데 여하간에 한국의 유행은 서울에서 퍼지고 서울의 유행은 명동에서 시작된다. 모던 여성의 복장 스타일을 좌우한 A라인, H라인, 후레야, 타이트, 헵번 스타일, 복스 타잎, 맘보 스타일…… 가지가지 유행이 파리에서 뉴욕에서 동경에서 뒤늦게 수입되어 항상 그 쌤플을 보여주는 것이 명동 거리…… 또 쌤플 노릇을 한다는 것이 명동 뽀이나 껄들의 자랑. -61~2쪽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양재와 미용 기술 관련 학원과 학교는 전쟁으로 문을 닫았다가 전후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명동에 양장점과 미장원이 증가하면서 양재사와 미용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시설이 필요해졌다. 이렇게 명동은 여성들의 공간, 즉 성별화한 소비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이처럼 전후 명동을 중심으로 여성과 관련된 소비 공간이 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한국전쟁 기간에 피난민이 대거 몰린 부산을 비롯한 대구에서 소비문화가 번성했던 요인이 있다. 여성들은 전쟁 중에도 양재와 미용 기술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벌었다. 그 경험은 전후 여성들이 기술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하거나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81~3쪽

미용이란 다시 말하면 화단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가지를 추리고 의지를 만들어주는 가꿈이라 하겠읍니다. 소박한 미를 정리된, 그리고 조화되고 세련된 미로 이끌어올리는 길이 아니겠읍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에의 역행이 아니라 자연을 정리하고 보조하며 살리는 길이요 방법이라 하겠읍니다. 젊은 여성이 미용(미장원 출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에나 악세사리에 관심이 없다면 그 인생은 오히려 어딘지 부자연하고 병적이고, 기형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읍니다. 인생에 패배하고 절망한 약자가 남을 증오하고 남과 싸울 기력도 없이 그 채찍을 자신에게 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읍니다. 몸을 가꾼다거나, 장식한다는 일은 여성에게 있어선 산다는 열의와 근면을 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117~8쪽

당시를 살아가던 여성에게 명동은 소비 공간과 노동 공간인 동시에,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자신들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곳이었으며, 심정적으로 더욱 유착된 공간이었다. 이들은 명동의 양장점에서 새로 옷을 맞춰 입고 미용실에서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178쪽

명동에는 양재사와 미용사와 같은 직업여성, 이곳을 드나들며 소비하는 여성들, 성적 서비스를 하는 여성들 등 다양한 부류의 여성들이 공존하였다. 이 다양한 여성들은 명동을 여성의 공간으로, 즉 소비 공간, 노동 공간,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으며, 국극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명동은 여성들에게 해방 공간과도 같았다. 여성들은 명동이라는 공간을 드나들면서, 서로 달랐음에도 용광로처럼 하나의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냈다. -202쪽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조건에 처한 여성들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명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이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허무'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성들은 부딪쳐 싸웠고 도전하였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명동에 모여들어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였다. 동시에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그 간극을 알아가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1950년대와 1960년의 명동처럼 다양한 연령대와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보이는 여성들이 직간접적으로 한데 만날 수 있던 공간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연령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공간적 분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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