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살인사건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골프장에서 살인이 벌어졌다기보다는 골프장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것 뿐이다. 포와로에게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낸 한 남자가 비행기 단도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그리고 그의 옷 안에서 발견된 벨라라는 미지의 여성에게 온 연애편지. 또, 골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도브뢰이 부인에게 큰 돈을 지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살해당한 남자를 둘러싼 아들과 부인, 정부로 추정되는 인물들. 사건은 그 실체를 알기도 힘들 것 같은데. 거기다가 같은 수법으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시체가 발견된다. 과연 어떻게 된 사건일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장르를 꼽자면 로맨스색채가 느껴지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는 사건과 연류된 인물들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드러났다면 이 책에서는 포와로의 친구인 헤이스팅스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한 여인(자신을 신데렐라라고 소개하는)과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하지만, 다른 때에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교묘하기도 하고 과거와도 연관이 있는 살인사건이 그려진다.
이전에 포와로를 만나본 독자라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회색 뇌세포'를 자랑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색 뇌세포'를 쓸 줄 모르는 헤이스팅스에 대해서 힌트랍시고 이것저것 던져주곤 그가 제대로 추리를 못하자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프랑스 형사인 지로가 열심히 단서를 찾아 사건 현장을 뒤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사냥개'라고 비꼬기나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포와로는 자신의 그 잘난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서 잔뜩 꼬여진 사건 뒤에 숨어있는 범인의 실체를 밝혀내고야 만다.
개인적으로 포와로의 거만함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책에서만큼은 오만한 인간사냥개 지로보다는 포와로가 좀 더 인간적이게 느껴졌다랄까? 이번만큼은 포와로의 활약상에 박수를! 그리고 그의 회색 뇌세포에게도 박수를! 겉으로 보이기엔 간단해보이는 사건이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이 숨겨져있었던 이야기. 제법 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