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는 백권에 육박하는 작품을 출간한 온다 리쿠.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그녀의 소설은 많이 소개된 편이 아니다. 국내에 출간된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굽이치는 강가에서>를 읽게 됐는데 기존에 읽은 <밤의 피크닉>이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야기는 제한된 시간 속에 있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밤의 피크닉>과 유사하다. 밤새 80킬로미터를 걷는 야간보행제와 연극에 쓸 배경을 그리기 위해 9일동안 이뤄지는 합숙은 제한된 시간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또, 두 작품 모두 어떤 '비밀'을 안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다보면 <밤의 피크닉>은 소소하고 따뜻한 느낌을,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좀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특하게도 각 장에서 화자가 바뀐다. 1장에서는 평소 선망하던 선배 가스미로부터 함께 연극제에 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합숙하자는 초대받아 기뻐하는 마리코가 화자가 된다. 그리고 합숙을 시작하기 전 한 소년(쓰키히코)에게 가스미랑 얽히는 걸 관두라는 경고도 받기도 하고, 여자같이 예쁜 남자아이인 아키오미를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작된 합숙에서는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2장에서는 가스미와 늘 함께 다니는 요시노가 화자가 되고 3장에서는 마리코의 친한 친구인 마오코가 화자가 되고, 4장에서는 가스미가 사건에 대해 마무리를 짓는다.

  단순하게 고교생들이 합숙을 통해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일단 이 소설은 실망감이다. 합숙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이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이야기, 이미 잊혀진 이야기, 빛바랜 과거의 이야기, 평범하고 지루했던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우리의 사랑, 우리가 저지른 죄, 우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장소설의 가면을 쓴 추리소설이라고 할까? 그들이 비밀로 묵혀뒀던 것은 한 번의 망치질에도 부서져버릴 일기장의 자물쇠처럼 약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공범이 된 것처럼 그 사건에 대해 암묵적으로 피함으로 그 자물쇠를 가까스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호기심때문도, 누구의 요청도 아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스르륵 열린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앞에 독자는 그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그들의 비밀을 지켜주려고 한다.

  단순한 성장소설도, 그렇다고 본격적인 미스터리도 아니지만 이 책은 그 어느쪽으로 읽히더라도 재미있다. 한 권 한 권 온다 리쿠의 책을 읽을 때마다 살짝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도 다른 분위기에 매번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나올 온다 리쿠의 책에서 또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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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10-0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백권이나 출간했나염? -ㅅ-

이매지 2006-10-0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거 아니겠소?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