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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라인 2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다른 사람들이 "그 책 재미있어!"라고 말해줘서 읽게 되는 경우에는 일단 어지간하면 실망하지 않는다. 대개는 그런 효율적(?)인 독서를 지향하는 편인데, 가끔씩은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그냥 책을 골라들 때도 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적인 지식없이. 아무런 편견없이. 그렇게 책을 접했을 때 그 책이 재미가 있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책에 푹 빠져든다. 바로 이 책 <퍼플라인>이 내게 그러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반납 도서 사이에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끼어져있던 이 책은 단지 신간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만으로 집어들고 빠져들었다.
책의 표지에는 뭔가 야릇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유두를 손으로 잡고 있는 그림. 그리고 그 뒤에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얼핏 보인다. 그림에 쓰여진 글씨로 볼 때, 앙리 4세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동생이라고 추정되는 인물들. 그들은 왜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과연 저 자세가 의미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더불어 왕과의 결혼식 1주일 전에 묘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데스트레는 대체 왜 죽은 것인가? 바로 이런 궁금증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책을 넘겨보면 컬러로 인쇄된 그림이 연달아 나온다.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약간씩은 다른 그림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다보면 독자와 마찬가지로 그 그림이 갖는 의미를 궁금해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여기저기에 그 그림(표지의 그림)에 대해서 묻고 다닌 덕분에 우연히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관련이 있어보이는 자료를 손에 넣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위에서 제기된 궁금증들을 해결해간다.
이야기는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진행된다. 자매의 손, 신의 손, 화가의 손. 그렇게 세분화하여 나눴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림에 관심이 있는 남자의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다가 그가 지인으로 받은 원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독자는 마치 자신이 그 문제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좀 더 책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는 듯도 싶다.
몇 군데의 오타에 흐름이 깨지기도 했고 번역이 약간 매끄럽지 못한 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책 자체는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데스트레와 앙리 4세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음모를 지켜보면서 궁금증은 더해가는데, 다만 아쉬운 것은 데스트레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내리고 있으나, 초상자의 주문자나 그 목적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듯 싶다. 그림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마련해준다는 점이나, 뒤에 부록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밝혀주는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다빈치코드>나 <진주 귀걸이 소녀>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 책은 또 이 책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퍼플 라인>의 의미는 책을 통해서 깨달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