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교토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몇 대째 이어가는 가게가 지척이라는 것이었다. 100년 정도 된 식당은 노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오래된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가업을 잇는 일에 대해서 한국과 인식이 다르고, 전쟁 등 외부적인 상황 또한 우리와 달랐으니 단순하게 비교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다. 사대문 안에서 옛 자취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기껏해야 'ㅇㅇ터' 같은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옛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피맛골만 해도 그렇다. 재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그 자체로 문화사적 의미가 있는 피맛골은 부서지고 멋대가리 없이 높게 솟기만 한 고층 빌딩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수많은 전통이 사라졌고, 또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흔적을 기억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키고 싶었다. 그랬기에 <백년식당>으로 박찬일 셰프와 함께 노포 기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전에 읽었던 <어쨌든, 잇태리>와 <노포기행>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본인의 체험담 위주의 글쓰기와 취재를 통한 글쓰기라는 태생적인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음식에 대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은 여전했다.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즉 노포를 찾아 국내 방방곡곡을 찾아나서지만 30년만 되어도 노포 축에 들 정도로 우리나라에 노포는 드물다. <백년식당>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노포들은 50년을 너나드는 식당들로 선정되었다.

  <백년식당>에 소개된 노포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식당뿐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대목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맛있다. 맛이 없는데 오랫동안 살아남을 식당은 없을 것이다. 즉, 기본에 충실하다는 이야기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한다. 노포의 주인들은 고령에도 새벽같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도 '한결같은' 맛을 지키기 위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애쓴다. 셋째, 직원들이 오래 일한다. 50년 넘게 근속한 직원이 있을 정도로 노포는 '평생 직장'처럼 직원과 함께 세월을 뚫고 나아간다. 우래옥이나 청진옥처럼 내가 가본 식당이 아니고서야 글만 읽고 그 맛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노포의 활기찬 분위기만큼은, 그리고 그곳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고집에 가까운 의지만큼은 강하게 전해졌다.

  노포에 대한 책이지만, 민중들의 배를 채워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육개장이 보신탕의 이미테이션으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원래 저렴했던 갈비가 올림픽 이후 '가든' 열풍과 과소비가 시작되면서 고급 부위로 변모하는 것이나 어묵과 오뎅의 관계 등에 대해 읽어가노라면 우리가 익숙하게 먹던 음식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지 그 미시사를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다. 국밥의 밥이 단순히 따순 밥을 말아주는 것이 아니라 토렴, 즉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헹궈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토렴을 하면 밥알 속까지 따뜻해지면서 국밥의 온도가 먹기 적당하게 변한다고 한다. 온도도 알맞을 뿐만 아니라 밥 알갱이의 씹히는 맛도 살아 있어 맛에도 좋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결국 오랜만에 청진옥에 들러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먹었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단단해진 맛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집에서 쉬이 다리를 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역사 앞에서는 다들 공손해져야 하는 법이니까"라는 박찬일의 말처럼, 나 또한 공손히, 그리고 감사히 앞으로도 살아남은 노포에서 역사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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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1-1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래옥으로 달려갔어요! ㅋ

이매지 2015-01-13 15:24   좋아요 0 | URL
으헝. 우래옥도 가고 싶네여.
저는 열차집이 막 땡기더라구요. ㅎㅎㅎ

유부만두 2015-01-1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가요!!! 백년식객 합시다 ^^

이매지 2015-01-14 09:00   좋아요 0 | URL
백년식객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