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 검은숲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살의의 쐐기>로 87분서 시리즈를 처음 접한 뒤 <아이스> 출간 소식을 듣고 이 매력 터지는 형사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 했다. <살의의 쐐기>가 짧고 굵게 87분서 형사들에게 빠지게 해줬다면 <아이스>는 그보다는 더 긴 호흡으로 이들의 매력을 곱씹게 한다. <살의의 쐐기> 같은 긴장감과 스릴감을 원한다면 <아이스>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소설로 읽기에, 87분서 형사들을 만나기에 <아이스>는 최적화된 이야기다.

 

  인기 뮤지컬에 출연중인 여자 무용수가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다 총에 맞아 죽는다. 조사 결과 같은 총으로 마약판매상이 죽은 사건이 수사중임이 밝혀진다. 생활 반경도,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다른 두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던 중 또 한 명(보석상)이 같은 총으로 살해당한다. 면식범의 소행인지, 미치광이 살인범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고, 살해당한 세 사람의 연관성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 속에서 87분서 형사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려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시리즈가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해야 독자가 매력을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읽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 때문은 아니다. 사건이 시리즈가 아닌 단독적인 다른 책보다 조금 재미가 덜하다고 해도 그 사건을 구성해가는 캐릭터 때문에라도 시리즈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한 명의 주인공을 원톱으로 내세워 그를 중심으로 주변 캐릭터를 정리해가는 방식이라면 87분서 시리즈는 반대다.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 분량이나 비중이 작품마다 다르다. 마이어나 카렐라의 경우에는 <살의의 쐐기>와 마찬가지로 <아이스>에서도 어느 정도 비중이 있지만, <살의의 쐐기> 때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클링과 브라운이 <아이스>에서는 조명된다. 원톱이 아니라 팀웍을 보여주는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깨알같은 유머다. <살의의 쐐기> 때도 그랬지만 <아이스>를 읽으면서 이들의 유머에 좀더 빠져들었는데, 초반에 그려지는 임신한 매춘부와 잡범들의 에피소드나 밸런타인데이 관련한 에피소드 등을 읽으며 정말 한참 키득거렸다.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뭘 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살인 사건"이라고 답하는 시크함이라니.) 책 속에서 경찰 업무에 대해서 사람을 닳게 만드는 겨울처럼 "눈이나 얼음, 진눈깨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비 같은 것들이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표시할 때까지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이라 묘사한 부분이 있었다. "봄이 찾아와 얼음을 녹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면 다음 겨울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라는 식으로 이어졌는데, 그 말처럼 경찰 업무의 추위를 녹이는 것은 결국 유머와 동료애가 아닐까 싶었다. 이들이 함께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샌가 나도 한자리 끼어들게 되는 것이 87분서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반전이나 범인의 의외성 등을 고려하면 사건의 진상은 어떻게 보면 시작은 거대했으나 끝은 평범했더라 싶었다. 잘 나가다가 끝에서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랄까. 하지만 어쨌거나 거기까지 꼼꼼히 수사과정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좋았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클링과 여형사 아일린이 조금씩 부농부농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사건 외의 재미 중 하나였다. 느긋하게 87분서 형사들을 만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 또 다시 87분서 형사들을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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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3-0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유혹이네요
저도 보고파요

이매지 2013-03-01 12:41   좋아요 0 | URL
시리즈마다 집중 조명되는 인물이 다른 게 재밌더라구요. ㅎㅎㅎ
좀 길어서 그렇긴 하지만 시간 되시면 한번 읽어보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