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곳에서 약간 기이하고, 토론을 좋아하고, 수줍어하는 사람으로 이미지를 심으리라. 하지만 보도를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리기 따위의 사랑스러운 버릇 한두 가지는 가지리라. 좀 낡은 버릇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날 이미 낡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낡기는 했어도 그의 시대에는 충성스러운 사람인 것이다. 결국 일정한 시기가 되면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설 것인가? 현대풍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모든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명예로운 것이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붙들고 딱 버티는 것, 그 시대의 참나무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46쪽
"그걸 이제야 알았네. 하지만 1년 전에는 몰랐어. 부하를 믿어 주고 또 믿지 말아야 하는 타이밍을 잡기란 쉽지 않지. 자네는 다소 다른 기준에 따라 생활하고 있지. 또 그렇게 해야 하고. 나는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네. 난 결코 그것을 판단하려는 건 아닐세. 우리의 방법은 다를지라도 목적은 같지." 그가 작은 도랑을 건너뛰었다. "누군가 도덕도 결국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 자네 그런 견해에 동의하나? 자넨 아마 동의하지 않겠지. 도덕은 당연히 목적 속에 들어 있는 거라고 할 테지.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그 목적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하는 거야. 특히 영국인의 경우에는 복잡하거든. 우리는 자네 같은 조직 속의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정책을 만들어 내라고 할 수가 없어. 자네들에게 그 정책을 충실히 수행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이지. 그렇지 않나? 이건 정말 까다로운 문제야." -108쪽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에게는 늘 열 가지 이상의 핑계가 갖추어져 있지요." 앤은 즐겨 말했다. 실제로 그녀가 자신의 무수한 외도를 변명할 때 즐겨 쓰는 말이기도 했다. "어떤 것을 하는 데 필요한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에요. 그건 자기가 원하기 때문이에요." 아니면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인가? 앤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은 강하게 부인할 것이다.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게 뭔지 아세요. 그건 강요라는 말이에요. 물론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지 않는 데에도 그 말이 필요하겠지만."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