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구판절판


시차 증후군의 첫번째 증상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아일랜드 사람이 술에 취하거나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이 냉철하게 생각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중략)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시차 증후군의 증상을 기억하려 애를 썼다. 지나친 감상주의, 청각 장애, 피로. (중략) 다른 증상은 뭐였더라? 엉뚱한 말이나 행동, 굼뜬 대답, 침침한 시력. -23쪽

"거의 40년 전에 멸종한 생물을 보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이 끝을 좀 잡아 봐." 돌로 만든 홈통의 끝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모든 것'이 다 놀라워요. 사실 여기에 '있다'는 자체가 놀라움의 시작이죠."
"아니면 그 종말이거나." 나는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30쪽

"만약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빠르게 잘 돌아갈 거야." 공작 부인이 거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루이스 캐럴 -35쪽

"그저께만 되었더라도 저는 행운이란 건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풀밭을 걸어가며 테렌스가 말했다. "하지만 어제 오후부터 저는 행운을 믿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요. 페딕 교수님이 기차를 혼동하셨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여기에 계시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당신이 강이 아닌 다른 곳에 가려고 했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보트를 빌릴 만한 돈이 없을 수도 있었으며, 아예 역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 저와 시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운명은 실을 쥐고 인간은 운명의 조정하는 대로 움직일 뿐, 성공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114쪽

"'운명아 마음대로 하려무나. 숙명이란 어쩔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려무나.' 운명이여, 우리가 왔다." -114쪽

우리가 가려던 곳은 분기점 근처였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곳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증폭, 파급되며 사소한 일 하나, 예를 들어 잘못 걸려 온 전화 한 통이나 등화관제 아래에서 켜진 성냥불 하나, 서류 한 장, 또는 찰나의 순간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버릴 만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의 운전사가 잘못해서 프란츠 요세프 가로 접어드는 바람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에이브러험 링컨의 경호원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사이 평화가 파괴되었다. 편두통에 시달리던 히틀러는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때문에 연합군 측의 D-데이 공격에 대한 보고를 18시간이나 늦게 받았다. 중위가 전보에 '긴급'이라는 단어를 빼먹고 보냈기 때문에 킴멜 장군은 일본군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제때 받지 못했다. '못 하나를 원하다가 신발을 잃고, 신발을 원하다가 말을 잃고, 말을 원하다가 기수를 잃은' 꼴이었다. -186쪽

오버포스 교수가 주장하는 맹목적인 힘, 즉 날씨, 질병, 기후의 변화, 지각의 변동 같은 사건들은 페딕 교수가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역사를 이루는 요소였다.
문제는 물론, 수많은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오버포스 교수와 페딕 교수의 이견 모두가 옳다는 점이었다. 이 둘은 단지 혼돈 이론이 알려지기 1세기 전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둘의 생각을 결합할 수 없을 뿐이었다. 역사는 개개인의 특성과 용기와 배신과 사랑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도 조종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고와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도. 그리고 유탄(流彈)과 전보와 팁에 의해서도. 그리고 고양이도.-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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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2-2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재미있는 책이죠.

개인적으로는 둠즈데이 북이 더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읽은지도 오래되었네요. 한번 다시 읽고 싶네요. 어떤 박스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지만.(이럴때는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보는게 속편하죠...--;;)

이매지 2012-02-27 13:52   좋아요 0 | URL
어떤 박스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지만...이라는 말이 왜 남의 얘기 같지 않은 걸까요.
저도 사실 그래서 못 읽고 있는 책이 몇 권 있어요. ㅠㅠ
추천받아서 읽고 있는데 수면부족으로 시달릴 때 읽기 시작해서인지 시차 증후군에 심한 몰입을 하고 있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