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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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실이 아니지요?"
나는 아저씨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절망적인 심정으로 지켜봤다.
"그러니까 전부 다 사실은 아니지요?"
한참 만에 대답을 들었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까 사실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침묵이 가장 정확한 답변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 사이에 흐르던 침묵이 바로 그랬다. 나는 흉벽 안에서 울리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눈자위가 축축하게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아저씨의 눈자위가 붉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24~5쪽

당신 어디서 마시는 거야?
은주가 좋아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두번째로 좋아하는 질문은 "왜 마셨느냐"였다. 현수는 두 질문에 대답한 적이 없었다. 술꾼에게 '어디서, 왜 마셨느냐'고 묻는 건, 공동묘지에 가서 당신들은 왜 죽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세상의 술집은 상시영업중이고 술 마실 이유는 술집만큼이나 많으니까. -77쪽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에는, 안개가 짙고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에는, 인적이 없고 어두운 호숫가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눈을 뜨고 "아빠"라고 속삭여 올 때에는, 자기를 찾는 전화벨이 심장을 두들기는 순간에는, 흔히들 무의식이라 부르는 '혼돈'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좀 보여줄까? -122쪽

만약, 확인하러 내려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예정된 시간에 일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나왔다면? 만약 오늘밤 호수에 오지 않았다면…… '만약'이 불러온 건 후회뿐이었다.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이었다. 보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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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10-22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7년의 밤, 정말 후덜거리며 조이는 가슴 부여잡고 읽었어요.
이매지님의 밑줄은 좀 특별한데요.^^

이매지 2011-10-23 22:5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읽으셨군요.
정말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라 페이지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