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진 살인사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여름이 되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기다리게 된다. 처음엔 소년탐정 김전일이 맨날 팔아먹는 그 할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지만, 여름마다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나면서 어느샌가 '여름=긴다이치 코스케'라는 공식이 나도 모르게 성립되버린 것 같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출간될까 기대했지만 더위가 꺾이도록 책이 나오지 않아 올해는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 긴다이치 코스케가 돌아왔다. 이번에 소개된 <혼진 살인사건>은 일전에 동서판으로 한번 읽은 적이 있지만 망각의 짐승답게 내용이니 트릭이니 전혀 기억나지 않아 새로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에도시대부터 명망 높은 여관 '혼진'을 이어온 이치야나기 가. 이치야나기 가의 장남 겐조는 마흔이 넘어 집안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옛 소작농의 딸 가쓰코와 결혼을 강행한다. 어려움을 딛고 식을 올리지만 첫날밤 신방에서는 깨소금 볶는 분위기가 아닌, 비명과 섬뜩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다. 밀실인 신방에서 신랑신부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된다. 방에 남은 흔적과 결혼식 전날 마을을 지나간 수상한 사내가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이 세 손가락의 사내는 좀체 찾을 수 없다. 이에 가쓰코의 숙부는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첫 등장. 그리고 대활약이 이어진다. 

  오래전 <혼징 살인사건>(동서판은 '혼징'이었다)을 읽고 남긴 평을 다시 읽어보니 "혼징 살인사건은 전통적인 일본의 가옥구조를 이해하지 않고는 좀 난해한 작품이긴 하다"라고 평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전혀 그런 불편함이 없었다. 아마도 번역이 더 매끄럽고 지도 등을 통해 밀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것은 초반부터 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데 그게 너무 심한 나머지 거부감마저 들게 한다는 것이다"라고도 평했었는데, 다시 읽으면서도 이 점은 같았다. <혼진 살인사건>보다 이어지는 <도르레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혼진 살인사건>은 세 손가락의 사내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오히려 조금은 맥이 빠졌다. 

  표제작인 <혼진 살인사건> 외에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어 요코미조 세이시의 역량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도르레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의 경우에는 서간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편지를 직접 받아보듯이 생생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누가미 일족>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는 평답게 한 집안의 어두운 단면이 강렬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흑묘정 사건>의 경우에는 '머리 없는 시체'와 '1인 2역'이라는 고전적인 트릭을 내세운다. 애초에 시작부터 이런 트릭입니다 하고 암시하고 시작해 자칫 맥이 빠질 수도 있지만 요코미조 세이시는 오히려 보란 듯이 독자를 홀린다.

  이러쿵 저러쿵 얘기했지만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를 고려해볼 때 긴다이치 코스케가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손자나 할아버지나 나타났다 하면 사람이 죽어나는 것도, 죽을 사람 다 죽은 다음에야 사건을 척 하니 해결하는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더벅머리 총각이, 그가 접하는 사건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리라. 긴다이치 코스케를 다시 만나길 바라며 내년 여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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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진 살인사건은 벌써 3번째로 번역되네요.첫번째는 70년대 후반 하서출판사에서 나왔고 두번째는 2003년도에 동서에서 다시 나왔죠.아마 동서에서 나온것은 정황상 하서 출판사것을 그대로 다시 출판했을것 같더군요.아마 시공사 번역이 현재 나왔으니 지금 시각에 맞게 좀더 매끄럽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그나저나 하서와 동서판 혼진 살인사건이 있는데 시공사판 코스케를 모우고 있으니 이 책도 사야 되는데 그놈의 던이 문제군요ㅜ.ㅜ

이매지 2011-10-05 23:57   좋아요 0 | URL
동서판이 나오기 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군요.
DMB에 소개된 책이 참 괜찮은 작품들이 많은데 번역이 참 아쉬워요. ㅠㅠ
시공판 코스케가 꽂아만 놔도 좀 간지나지 않습니까. 어여 사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