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올 여름 쏟아진 수많은 추리소설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작품은 역시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었다. 2010년 주간문춘 걸작 미스터리 1위, 2011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1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 등 기시 유스케라는 네임 벨류에 걸맞는 각종 수상 내역은 기대감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1, 2권 합치면 800페이지 이상의 두툼한 작품이지만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주저 없이 읽기 시작했다.

  마치다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하스미 세이지. 그를 따르는 학생들로 이뤄진 친위대가 있고, 교감 선생님이나 동료 교사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마냥 좋은 선생님처럼 보이는 하스미의 삶은 모두 그가 치밀한 계산하에 만들어낸 '가짜' 삶이다.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 그 속에서 하스미는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르며 자신의 앞을 방해하는 사람을 '적절히' 처리하며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의 정체에 의심을 품은 몇몇 학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하스미가 구축한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발생하자 하스미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동안 사이코패스를 다룬 다른 작품을 생각해볼 때 <악의 교전> 속의 하스미는 그 누구와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이 정도라면 <검은 집>의 사이코패스는 맛보기 정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기시 유스케는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어린 시절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감정을 지니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어 감정을 '학습'해 자신 앞에 놓이는 방해물을 서슴없이 없애가며 살아온 하스미. 그런 하스미에게 살인이란 그저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에 불과하다. 문제가 될 만하다 싶으면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식으로 살인을 행하는 하스미에게 죄책감이나 윤리 등은 공허한 메시지에 불과하다. 감정이 없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한 심리학 등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조종해가는 하스미의 모습은 섬뜩하다. 그리고 마침내 하스미가 최후의 범행을 행동에 옮길 때 시체는 하나씩 쌓여가고 그의 악행은 정점을 찍는다.

  자연스럽게 하스미에게 초점이 맞춰지긴 하지만 마치다 고등학교는 평범한 학교가 아니다. 왕따나 체벌 같은 문제야 여느 고등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하고 학생과 교사가 동성애를 하는 모습 등 곪을 대로 곪아 있는 모습이다. 하스미만을 타깃으로 한 "우리 학교에는 괴물이 있다"라는 말이 어느샌가 "우리 사회에는 괴물이 있다"로 읽혀진다. 무엇이 하스미 같은 감정이 없는 괴물을 만들어냈는가라는 안타까움이 아닌, 인간이 과연 선하기만 한 것인가, 우리 모두 다소간은 악한 면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하는 듯했다. 교차시점을 통해 긴장감을 더해가 페이지는 술술 넘어갔고 마치다 고등학교의 어두운 이면이나 하스미의 과거사 등을 통해 점점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후반부에 악이 절정에 다다라 하스미가 살육을 자행하는 장면에 이르러 되려 긴장이 풀어져버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무의미한 서술을 읽어야 하나, 그저 작가 스스로 죽이고 싶은 만큼 죽여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맥이 풀려버렸다. 어떤 문제의식을 제기한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재미만을 위한 이야기가 되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역시 기시 유스케다, 하면서 읽었지만 마지막에는 다소 실망을 감출 수 없었던 작품.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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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9-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읽다보니 정말 시간이 휙휙 가는 것같아요.
파주 생각하면 님 생각이 나네요 저도 집이 가까우면 파주를 꿈꿀텐데 넘 멀어서리

이매지 2011-09-06 00:25   좋아요 0 | URL
심리적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사실 강북-강남 오가는 거 생각하면 파주도 그리 멀지 않더라구요 ㅎㅎ
시간 되시면 한 번 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