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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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해 다양한 작가군으로 이어져온 일본 소설계에서 최근 돋보이는 작가는 단연 미치오 슈스케가 아닐까 싶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달과 게』를 비롯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외눈박이 원숭이』 『솔로몬의 개』 등 제법 많은 작품이 소개됐다. 다양한 작품이 나온 터라 첫 만남으로는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처음 보기에는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가 무난하다는 추천을 받아 얼마 전 처음 미치오 슈스케를 만났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이야기였지만 나쁘지 않네, 하고 좀 더 알아볼 마음이 들었던 차에 『까마귀의 엄지』를 만났다. "사기는 신사의 범죄다"라는 띠지 문구만 봐도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것이 느껴졌기에 더 기대감을 안고 읽어나갔다.

  사채 때문에 가족도 잃고 인생이 꼬여버린 중년의 두 남자, 다케자와와 데쓰. 생김새도 삶과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사기'라는 기술 하나만 가지고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소소한 사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사람 앞에 소매치기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소녀 마히로가 나타난다. 꾼은 꾼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다케자와와 데쓰는 자기들처럼 남을 속이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히로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나게 된 마히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하지만 마히로는 자신의 언니 야히로와 언니의 애인 간타로라는 덤까지 데리고 다케자와의 집에 들어온다. 나이도, 개성도, 생김새도 다른 다섯 사람이지만 그럭저럭 한 지붕 아래서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평화도 잠시. 7년 전 다케자와가 와해시킨 사채 조직의 추적과 위협은 날로 심해진다. 그저 상대의 공격을 피해 도망다니기에 바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섯 사람은 결연히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일대 반격을 하기 위해 '앨버트로스 작전'을 계획한다.   

  '사채' 때문에 인생이 말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얼핏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디까지는 이는 주인공들을 하나로 묶는 소재로 등장할 뿐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이 책은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그동안 사채업자들의 괴롭힘에 피하기만 한 주인공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사채업자들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소매치기, 열쇠공, 마술사, 미녀 등 따로 행동했다면 감히 어깨 형님들에게 덤비지 못했을 이들이 하나로 뭉쳐 저마다의 장기를 살려 일대 사기극을 벌인다는 내용은 한 편의 익살극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야기가 단순히 앨버트로스 작전의 수행으로만 끝났다면 『까마귀의 엄지』는 고만고만한 사기극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앞의 사기극은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소극(笑劇)이라고 할 정도로 마지막 반전이 이 책의 압권이다.

  우타노 쇼고는 이 책을 두고 "일급 엔터테인먼트"라고 평했다고 하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마치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 박진감 넘치는 전개, 그리고 반전. 뭐 하나 뒤지지 않는 일급 엔터테인먼트 소설! 미치오 슈스케에 대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치오 슈스케를 잘 모르는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그의 작품에 거부감을 느꼈던 독자라도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과연 다음 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팔색조 같은 미치오 슈스케의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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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2011-08-17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읽고 욕을 하면서 책을 집어던지시든지, 감탄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매지 2011-08-17 22:34   좋아요 0 | URL
해바라기가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인 것 같더라구요. ㅎㅎ
조만간 집어 던지든 감탄하든 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