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ㅣ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라는 제목을 보곤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이상한 그림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이 표지는 대체 뭔가, 대략 이런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졌더랬다. "일본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기발한 단편집"이라는 카피에 끌려 일단 집어 들어서 저자 소개를 살펴보니 이 작가 굉장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자신의 이름의 글자 순서를 뒤섞어 만든 필명으로 활동했는데, 원래 직업은 옷에 가문을 그리는 장인인 문장사였으나 이 책에 수록된 단편 <DL 2호기 사건>을 통해 <환영성>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외에도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마술사였다고. 어쨌거나 이런 독특한 저자 약력과 '아 아이이치로'라는 정체불명의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 거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은 셈이었는데, 단편 하나하나 읽으면서 정말 감탄 또 감탄을 하며 읽었다.
일단 첫 단편을 읽으면 제목에 언급된 '아 아이이치로'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다. 설마 사람 이름일까라고 생각했는데, 그 설마가 사실로 판명. 게다가 이렇게 요상한 이름을 가진 이 양반(혹시나 일본탐정 인명사전이 발간되면 ABC 순으로 하든, 50음도로 하든 맨 먼저 등장하게 하려고 지은 이름이라고),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탓에 책 속에서 여성들의 무한 호감을 살 뻔 했으나, 절망적인 운동신경과 얼빵함 때문에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파팍 환상이 깨져버리는 사진가다. 하는 행동은 영 미덥지 못하지만, 빼어난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이해, 추리력 등을 갖춰 진실이란 결코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온 지 30년 즈음 된 책이라 그런지 배경 자체는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져서 좋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해도 뭔가 피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듯한 잔인한 느낌보다는 어쩐지 개구쟁이가 죽은 척하고 있는 것 같은 익살스러움이 느껴졌다랄까. 인간 심리의 맹점을 파고드는 <DL 2호기 사건>이나 <G선상의 족제비> 같은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마술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손바닥 위의 황금가면도>도 만족. <호로보의 신>이나 <검은 안개>는 어쩐지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가장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싶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어를 좀 더 잘 알았더라면 <발굴된 동화>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정도랄까. 전체적으로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던 단편집. 초절정 꽃미남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스러운 순간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 속에서 또 어떤 트릭과 어떤 유머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