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절판


사진이 보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 다른 서류도 마찬가지였다. 출신지는 남쪽으로는 오키나와에서 북쪽으로는 훗카이도까지 다양하다. 타이나 대만 출신의 여자도 있다. 꿈을 품고 도쿄로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쿄에 집이 있으면서도 혼자 방을 얻어 살던 사람도 있다. 학생, 회사원, 여행 가이드, 가수 지망생, 호스티스, 포르노 여배우,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 실종 신고 서류에는 다양한 생활, 수많은 인생이 들어 있다. 사진으로만 바선 갑자기 사회에서 사라질 만한 어두운 그림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더욱 슬픈 일은, 대부분의 여자가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신고되었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자유로움의 이면에는 갑자기 이 사회에서 모습을 감추어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황량한 어둠이 깔려 있다. -19~20쪽

세상 사람들은 모든 사건을 그녀와 비슷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세계 각국의 내전도,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활약도, 탤런트의 이혼도, 젊은 여성의 감금살인사건도…… 똑같은 즐거움, 똑같은 슬픔과 회한을 가져다주는 일상적인 사건일 따름이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아무리 비참한 살인사건도 내일 보도될 야구선수의 활약만큼 관심을 끌지 못한다. -21~2쪽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하자, 이제야 나를 되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과 사회의 과보호에서 벗어나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해해가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에는 많은 대가가 따랐다.
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셨다. 문명사회가 편리함을 대가로 깨끗한 물을 포기한 것처럼, 혼자만의 자유로운 생활도, 특히 여자의 경우는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56~7쪽

회사에 파견되어 나갈 때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절차와도 같았다. 이것이 사회란 곳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들은 그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다. 그의 재산과 혈연관계, 이혼력, 함께 생활하는 데 무슨 지장이 있을지 없을지, 즉 자신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 데 지나지 않는다. 남자사원이 술자리에 초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거나 일에 대한 부만을 바깥 사람에게 털어놓기 위해서일 따름이다. 진실한 인간관계, 이를테면 서로의 영혼이 통하는 관계가 성립할 가능성은 없다. 이것이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회의 모습디라니…… 그는 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77쪽

모든 게 사랑이야, 굳게 맺어진 두 사람…… 서로를 믿고, 힘차게, 두 주먹 불끈 쥐고 노래하자. 그는 옛날부터 이런 노래를 좋아했다. 사랑이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모든 게 사랑이야, 아무 말 마, 너를 안고 내 길을 걸어갈 거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란 그렇게 태어나 강한 신뢰로 맺어져 손을 마주 잡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의 이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내마저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주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다. 똑같은 사랑을 노래한 곡들도 모두 히트했다. 그가 바라는 강렬한 가족 사랑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도 히트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전 세계 사람들은 노래나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지고한 사랑과 강한 결속을 갈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에고이즘이 넘치고 있었다. 오해와 질시가 가득하고, 다들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아,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여자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84쪽

그런 거야. 혼자라는 것은 결코 괴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아……
그러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아무도 나를 몰라. 사람들은 내가 있건 없건 똑같이 취급하고, 필요로 하지도 않고, 내 존재를 존중해주지도 않아. 나는 혼자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아…… 주위에는 나와 똑같은 혼자들이 전혀 없어…… 그럴 때, 혼자 있는 것은 공포가 된다. -156쪽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 지금도, 아버지에게는 나의 개인적인 비밀을 말할 생각이 없다. 아니, 어머니에게도, 같이 생활하던 그때부터 마음속의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
나도, 어머니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다. 듣는 것 자체가 두렵다.
서로 비밀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은 가족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가족만큼 비밀이 많은 집단도 없고, 그렇게 비밀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가족과 슬픔이나 한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데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보다, 개개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는 차가운 허무 같은 것을 더 좋아한다. 혼자서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상처입는 것은 ㅏ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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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10-06-15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 전에 이 책을 읽었었는데 제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봐도 내용이 아예 떠오르지를 않네요. 완전 증발되어버렸어요. 얼마전에 읽은 달의바다, 다 읽고 리뷰쓰려고 보니 옛날에 썼었더라구요. 오마이갓. 뇌세포가 점점 죽어가는건지ㅋㅋㅋㅋ

이매지 2010-06-15 17:37   좋아요 0 | URL
저 안그래도 미미달님의 리뷰도 봤지요 ㅎㅎㅎㅎ
이 책 올해 아무도 리뷰를 안 썼더라구요 ㅋㅋ
아무리 나온 지 오래 됐어도 꾸준히 팔리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저도 예전에 리뷰 썼던 책 까먹고 또 쓴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