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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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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장난 삼아 받아본 검사에서 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떨까? 어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누군가는 절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삶을 부여잡으려 치료를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할 것이다. 삶이란 그 시작은 선택할 수 없지만, 마지막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기에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우리 앞에 주어진 많은 선택의 순간 속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후지야마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남자 후지야마.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던 그가 어느 날 폐암 말기에 6개월 선고를 받는다. 믿을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도 잠시. 그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이 살면서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유서를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연명 치료를 단호히 거부한다. 중학교 시절 첫사랑에서부터 시작해 30년 째 말한마디 섞지 않았던 고등학교 때 절친, 옛 동료, 의절한 형제 등을 만나 그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름의 방식으로 안녕을 고한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혼자 남는 것을 택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후지야마는 홀로 남는 것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추억을 만들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아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도 해주고,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아내에게 자신의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점점 기력은 쇠해가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후지야마를 채운다.

  방송작가, 영화감독, 극작가, 탤런트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저자의 약력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은 드라마틱하다. 죽음을 앞둔 남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감해간다는 구성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소설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장면이나 수십 년 전 낙태를 종용했던 여자가 자신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결혼 전 사귄 애인과 재회해 느닷없이 호텔로 향하는 모습 등이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평범한 설정을 환기시키는 요소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했기에 담담히 후지야마라는 한 남자가 죽음을 향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집중하게 됐다. 아직은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조금씩 다가올 죽음의 시간. 나는 남은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조용히 가슴 한 켠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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