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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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홀수가 싫었다. 무리를 굳이 둘씩 나누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놀이기구에서, 관계는 '둘'로 정의되었고, 전체가 홀수였다면 한 명은 꼭 남았다. 3-2=1, 5-2-2=1, 7-2-2-2=1, 이런 계산법으로 인해 외톨이가 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정원이 48명인 반에서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47명인 반에서 마음이 불안했다. 48명인 반에서 일어나는 전학이나 결석, 조퇴와 같은 일들도 역시 불안했다.
어릴 때 운동장이나 교실 안에서 겪었던 홀로됨의 어색함은 결국 교문 안에서만 유효할 뿐, 그 당시에는 중요했던 그 문제가 사실 미니어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정말 비극이 시작된다. 교문 밖에서 울타리도 없이 벌어지는 홀로됨의 비극은 더 이상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한다. 그냥 무관심 속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서 오래 머물면 처음에 그 무관심의 주체가 타인이었는지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혼란스러워진다. -25쪽

식탁 위의 혁명이었지만 그 여파는 단지 식탁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나를 에워싼 수많은 행성들 속에서 나는 절대 '껴' 있는 게 아니라 '주목'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깃집에서도 결혼식 뷔페에서도 무리 없이 혼자 떨어진 내가 외로운 게 아니라 돋보이는 것처럼, 나는 지하철의 중심, 지구의 중심, 우주의 핵, 세상의 봉이라는 생각으로 충만했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 인파 속에 휩쓸리면서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단지 내 궤도를 이탈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37쪽

1:1 상담 시간에 담임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세상에 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그리 큰 문제가 되나. 열한 살짜리에게는 꿈을 말할 기회가 쓸데없이 많다. 그러나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꾸 물어보는 것도 실례다. 주관식은 스트레스다. (중략)
담임은 대통령이 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에게서 다른 무언가라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유행대로라면 CEO나 실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연예인이라고도 말해야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정말 꿈이 없었다. 단지 그뿐인데 어른들은 꿈이 없는 어린이를 생각이 없는 어린이와 비슷하게 취급했다. -3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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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5-1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인용식탁....이라는 공포영화가 있었더랬는데요. 뜬금없는 댓글 죄송합니다. - -;;

이매지 2010-05-11 23:4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저도 그 영화를 생각했더랬죠 ㅎㅎㅎ
1인용 식탁의 주인공 이름은 오인용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