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 경종.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탕평의 깃발 아래'라는 부제처럼 경종과 영조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탕평'이다. 시종일관 동궁 보호를 외쳤던 소론 덕분에 어쨌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경종도, 온통 소론 일색인 상황에서 노론 임금으로 왕위에 오른 영조도 소론과 노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임금에 명을 따르기보다는 당론을 따르는 한 임금은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 수 없기도 했지만, 임금의 권위 또한 이룰 수 없었다. 그렇기에 경종도, 영조도 신하들보다 한 수 앞을 보고 탕평의 기치를 높여야 했다. (물론 그럼에도 두 임금 모두 제대로 된 탕평은 이룰 수 없었지만.)

  다른 왕들에 비해 비교적 조명이 덜 되는 왕 중에 하나가 경종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에서도 영조에 비해서는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무기력하고, 배짱도 없고, 신하들이 올린 서류에는 결제를 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무기력한 왕. 물론 생모 장희빈이 죽은 뒤 19년이나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그의 소심함(?)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노론의 뜻을 따르는 척하면서도 소론 인사들을 발탁 승진시켜 요직에 배치하고, 그들의 역량을 확인해 조금씩 임금의 위엄을 찾아가는 구나 싶은 순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만약 경종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것은 그의 뒤를 이은 영조가 만만치 않은 정치적 왕이었기 때문일 듯 싶다. 역모에 개입되고도 살아남아 무사히 보위를 잇고, 젊지만 영민함을 갖춘 영조. 당장 눈 앞의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탕평을 위한 일 보 후퇴와 제대로 된 자기 신원을 위한 십 보 후퇴도 결단 있게 감행하는 모습은 보통의 역량이 아니었다. 눈물이 많고 다혈질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그런 자신의 성격마저도 치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영조의 모습은 신하들을 제 손 위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영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사도세자의 비극이다. 한쪽의 눈에서만보면 비정한 아버지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여기에 얽힌 사연은 꽤 복잡하다. 한순간의 불찰 혹은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에 쌓인 수많은 불화를 알아야 이 사건에 얽힌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다루려 노력한다. 혜경궁 홍씨의 눈으로 바라본 <한중록>이나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유추한다. 물론 남은 기록이 많지 않아 100% 사실은 알 수 없겠지만, 아버지의 아들의 갈등의 골이 깊었고 그것이 결국 사도세자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랫만에 나온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언제나처럼 쉽고 재미있게 역사 속으로 이끌어줬다. 최근 드라마로 방영중인 <동이> 때문에 영조의 생모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천한 무수리의 자식' 같은 표현으로 스치듯 등장하고만 있었다. 시리즈 초반에 비해서는 유머보다는 팩트를 전달하는 데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중간중간 패러디한 부분들 때문에 빵 터졌다. ("아! 씨~ 성질 뻗쳐서" 같은 대사나 빅뱅 태양의 '나만 바라봐' 가사를 개사해 '내가 너를 죽여도 넌 나를 원망 마~'라고 군신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이었다.) 다음 권에는 그 어느 권보다 관심이 몰리지 않을까 싶은 <정조 실록>이다. 다음 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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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4-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었군요! 부지런한 이매지님! 저는 꽂아만 두고 쳐다도 보질 못했어요.(>_<)

이매지 2010-04-12 0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미루면 하염없이 미룰 것 같아서 낼름 읽었어요 :)
마노아님, 다시 한 번 감사!

후애(厚愛) 2010-04-13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시리즈가 많아서 포기했어요.ㅜ.ㅜ
하지만 나중에 조카들이 원하면 선물로 사 줄까해요.^^

이매지 2010-04-13 09:49   좋아요 0 | URL
중고생 이상이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띄엄띄엄 읽다보니까 나중에 완간되면 쭉 한 번 봐야겠다 싶어지더라구요~

카스피 2010-04-1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히 읽기에는 이런책이 좋지요.기 번역된 조선왕조 실록은 넘 방대해서 읽기가 좀 곤란하지요(뭐 인터넷에서 실록을 번역한 웹사이트가 있어요)

이매지 2010-04-13 09:50   좋아요 0 | URL
그쵸. 아무래도 원전을 읽자니 정말 방대한 양이 압박;
하지만 언젠가는 도전해볼 생각이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