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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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의 저력을 찾는 글들로 엮여 있다. 조선인들의 삶의 양식, 생각, 제도 중에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주제를 다루어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에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부만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조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명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목표나 결과에 어찌 실패와 성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길 가다 강도를 만나 상해를 당하면 그 사람에게 운이 없다고 하지, 그 사람이 실패했다고는 하지 않는다.-5~6쪽

이왕의 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이나 해석에 동의하지 못하는 데가 꽤 있기 때문에, 즉 조선 역사에 깨진 데가 많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기 때문에, 독자가 읽다보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해석과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독자들이 내가 '범凡식민주의'라고 부르는 '식민주의'와 '근대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할지도 모른다. 흔히 "진실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에 기대어 나의 견해를 합리화할 생각은 없다. 그건 오해이기 때문이다. "정작 불편한 것은 편견이다."-13쪽

치자인 국왕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기능인이나 전문가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 잘하기를 바라지 말라(無求備於一人)'는 점에서 보면, 관리는 기능인이자 전문가여야 한다. 그러나 '군자는 한 방면에만 치우치는 전문가여서는 안 된다(君子不器)'는 관점에서 보면, 치자는 '다 잘해야 한다(不器)'. 그런데 '다 잘해야 한다'니! 어떻게 영어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고 100미터도 잘뛰나? 어떻게 국방도 잘하고 외교도 잘하고 교육도 잘하나? 이게 다기多器(다재다능)지, 어떻게 불기不器가 되나?
그러나 옳은 말이다. 달리 말하면, '군자란 전문성으로 평가될 수 있는 차원의 인격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두 측면이 있다. 여러 방면에서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내공이 그 하나이다. 상황과 조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감각과 몸의 훈련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는, 그 내공이 갖는 보편적인 지향이다. 그리고 둘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것이 군자이다. 대개 소인은, 보편적 지향이 결여된 내공만 있는 경우가 많다.-39~40쪽

성군이란 호칭은 임금이 성인이란 뜻인데,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가. 아니다. '내성외왕內聖外王', 곧 유가에서 왕은 성인이어야 했다. 그것은 훈련, 공부를 통해서 달성된다. 지금은 성인이 아니라도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군주의 덕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사회는 이런 군주가 가져야 할 이상적 인격을 경연이란 제도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41쪽

실록의 묘미는 아무나 볼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국왕은 물론이고, 사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기록이었다. 조선 양반 관료제가 자정성自淨性을 유지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바로 이 실록에 있었다. 역사라는 심판관이 쥔 판결문을 아무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61쪽

방납은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대신 내주고, 그 대가를 받아 이득을 취하는 행위이다. '생산되지 않는 공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방납도 있지만, 이득을 노리고 농간을 부려 민폐를 끼치는 방납도 있다. 종래에는 방납이 으레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운운하면서 조선 후기의 '봉건제 해체기 양상'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물론, 방납이 '상품화폐경제'를 발달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방납은 공납제라는 부세제도의 부산물(이었다가 구조가 된 현상)로 보는 것이 옳다. -143쪽

700년 가까우누 긴 시간 동안 동아시아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탓인지, 주자에서 집대성된 성리학에 대해 사람들은 선입견이 있는 듯하다. 마치 주자의 시대에 이미 성리학이 주도 이념이었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그리고 이 오해에는 좀 생각해보여야 할 데가 있다.
우선 오랜 기간 주도 이념이었다는 것이 이런 오해의 직접적인 이유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성리학이 주도 이념이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언짢음에서 나오는 오해처럼 보인다. 여기에도 근대주의적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망국에 이르게 한 사상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발생사적 접근이나 이해를 미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꺼풀을 벗어던져야 한다. -164쪽

조선문명의 성격은 분명히 평화적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하면 "당하고만 사는 게 무슨 평화주의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만,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역사상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부'와 '강'일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만족하는가 하는 질문과 같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부'와 '강'으로 사회의 평안과 행복의 척도를 삼으려고 했다면, 그건 줄을 잘못 서도 한참 잘못 선 셈이다. 그것은 단지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조건, 그것도 '조절되어야 할 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218~9쪽

그런데 역사 연구에서 조심해야 할 두 가지 병폐가 있다. 하나는 천박한 역사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쓰는 글이다. 천박한 역사의식이란 자신의 인간 이해에 상응하는 사료를 편한 대로 주워 모아서 역사상을 구성하는 일이다. 특히 인물의 이해에서 이런 식의 서술이 많지만, 꼭 인물 연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흔히 인물은 그가 활동하는 역사무대가 있고 거기서 사건이 펼쳐지기 때문에 곧장 역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개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몇 가지 이유를 이리저리 고민,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차츰 마음 놓고 보여줄 수 있는 역사상에 도달하는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에 간단명료하다. 그래서 쉽다. 더욱이 이런 결론이나 관점이 기존 대중들의 관점과 부합하는 데가 있으면 한층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 역사학의 포퓰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하다. 이는 역사상을 구성하는 사건이나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검토를 거치지 않는 단순화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248~9쪽

한편 포퓰리즘은 역으로 필자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강화한다. 대중의 호의가 그에게는 이제 독이 된다. 아니, 어쩌면 알게 모르게 필자는 독자의 달콤한 독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필자에 대한 독자의 호의는 언제나 경계할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긴장이 사라지는 순간이 쇠락의 시작일지니.
아무튼 현상적인 인과성 또는 연관성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 사료의 선택과, 그에 따른 역사상의 구성이 습관화되면서 필자는 미다스의 손을 갖게 된다. 단장취의나 견강부회라는 말이 어울리는 글이 되고, 그래서 결국 이제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내가 경계 삼아 가진 지론이 있다. 역사상을 완벽하게 재구성해주는 사료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원하는 역사상을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사료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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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3-1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재미있네요^^

이매지 2010-03-16 09:2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
그렇게 무겁지 않고 괜찮네요~